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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학살자 전두환 사망... 끝내 사과 안해

한방블르스 2025. 10. 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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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全斗煥), 1931년 1월 18일~2021년 11월 23일

 

 

광주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하도록 명령한 주범 전두환 씨가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전 씨는 이날 오전 8시 45분께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졌고, 부인 이순자 씨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오전 9시 12분쯤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 자택에서 사망 후 서울 신촌연세대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전두환은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었다.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브리핑을 열고 “전 전대통령이 남긴 유언은 ‘북녘 땅이 바라다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는 내용이었다”라고 전했다.

민 전비서관은 “전 전 대통령이 평소에도 가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뿌려달라’고 말했다”며 “가족들은 유언에 따라 그대로 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례는 세브란스 평원에서 가족장으로 치를 것이고 유해는 화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달 26일 12·12 군사 쿠데타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데 이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두환도 세상을 떠났다.

전두환은 이날 사망할 때까지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과 희생자 유족에 대해 끝내 사과하지 않는 파렴치를 숨기지 않았다.

대선후보들 조문예정 엇갈리다가...

이와 관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측은 그에게 조문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중대 범죄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은 점을 참으로 아쉽게 생각한다”며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 국가권력을 찬탈했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민께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역사의 깊은 상처는 오로지 광주시민들과 국민의 몫이 됐다”며 “전두환 씨는 떠났지만 전두환의 시대가 정말 끝났는지 이 무거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으며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전두환 씨의 죽음은 죽음조차 유죄”라고 말했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조문 의향을 보였다. 윤 후보는 “유족과 돌아가신 분에 대해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장례)준비 일정을 좀 봐서,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3시간여 만에 윤 후보도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전직 대통령 조문과 관련하여 윤 후보는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광주 희생자들에게 끝내 사과 안해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전두환은 대구에 정착해 1951년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1952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학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기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전두환은 4 공화국 시절이던 1964년 3월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해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전두환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후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고 무력을 동원해 광주 민주화 운동을 탄압, 수백 명 이상의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 거쳐 신군부 권력을 장악하고 1980년 9월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투표로 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장군의 진급신고를 받고 악수하는 모습



이어 한 달 뒤에 대통령 임기 7년 단임과 간선제 선출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공포, 1981년 3월 3일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통해 12대 대통령에 다시 당선됐다.

그러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폭력적 탄압으로 대응하던 중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6월 항쟁’이 일어나면서 ‘호헌 철폐, 전두환 퇴진’를 요구하는 민주세력에 몰리게 됐다. 이어 후계자로 지명했던 노 전 대통령이 1987년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한 후 13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5공 세력 청산’ 정책에 따라 그는 백담사로 들어갔다.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때 12·12 군사 쿠데타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탄압 이유로 1995년 구속기소 됐다.

1996년 8월 26일 1심 재판에서 반란·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상관살해미수죄·뇌물죄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7년 12월 22일 그를 사면 복권했다.

수백명 이상이 희생된 광주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해 전두환은 책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유언장에 책임인정이나 사과를 남기지 않아 죽음에까지 비난을 안고 가게 됐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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