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 넘어 생명의 길로! - 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를 추도하며 ⑩
지하형님께서 이승을 떠나신 후 49재 되는 날, 남은 사람들이 형님의 혼령을 편안히 보내드리고자 정성으로 모였습니다.
돌아보니 형님과의 만남인연, 시절인연이 어언 51년이었습니다.
1971년, 노동자 조직 20만 명이라는 큰 뜻을 가운데에 놓고 원주 봉산동 장일순 형님 댁에서 만났습니다.
곧바로 가까운 동네가게로 옮겨가서 소주를 대여섯 병 마셨지요.
그때는 기본이 2병,
노동자 조직보다는 작품구상 얘기가 호기롭고 장쾌하였지요.
세월은 빠르고 세상은 소연한데 마음은 처연합니다.
가뭄과 폭염을 걱정하며 숲을 바라보니, 바람에 나뭇잎만 흔들릴 뿐...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정해진 이치를 왜 모르겠습니까?
인연이 무겁고 정이 쌓여, 이 생각 저 생각에 누구 말대로 ‘한 조각구름이 일어나고, 스러지는 것’이 정녕 우리들 인생의 모습이던가?
그러하면서도 그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여 년 전, 형님이 단학 관련 명상수련 단체를 비판했다고 ‘테러’ 어쩌고저쩌고 했을 때, 형님이 제가 있던 산골 흙벽돌집에 한 50여 일 머물렀을 적이 있었지요.
그곳 춘천 인근에도 있는 ‘부용산’ 자락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형님은 그때 몇 번이나 봉황이라는 큰 새 얘기를 꺼내셨지요. 허나 저에게는 봉황얘기보다 형님이 새벽 기도를 두 세 시간씩 정성되게 하시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형님! 얼마나 몸 고생, 마음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오죽하면 형수님께서 저보고 ‘내가 먼저 죽으면 세상물정 모르는 김시인이 너무 고생할 것이니, 그가 먼저 죽고 자기가 뒤따라가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지요.
형님! 말년에 여러 가지 병이 겹쳐 너무 고생이 크셨습니다.
유신독재 때의 혹독한 감옥살이로 몸과 정신이 엉망이 돼서 정신병원에 드나들고, 온갖 처방을 찾으셨지요. 저도 화병, 교통사고, 암수술 등으로 몇 달 몇 년을 병원을 다니다 보니 몸의 고통을 어느 정도는 압니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아픈 것이고, 마음이 아프면 몸이 더 나빠지는 것...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 무심하게 또는 험한 말을 하지요.
형님!
1980년대 초 형님이 외치고, 쓰고, 조직했던 ‘생명운동’은 여러 갈래로 이름은 다르고 조직 형태나 활동 내용은 달라도 생명의 큰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하긴 생명의 운동양식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님이 광주민중항쟁 이후의 그 암울했던 시절에 벼락 때리듯 ‘생명운동’의 큰 깃발을 올렸을 때 우리는 정말 흠쾌(欽快)하게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가톨릭농민회(가농) 조직부장 시절이었지요.
많은 이들은 ‘생명운동’이라면 원주 장일순 선생을 먼저 생각하는데, 제가 알고 겪은 바로는 ‘생명운동’은 김지하 시인이 길을 열고 뜻있는 이들이 생명체의 특성대로 제 각각 역할을 분담하여 싹을 틔우고 물을 주어 가꾸었지요.
이를테면 이런 큰 인물이 나섰습니다.
• 김지하 - 생명사상, 생명운동의 깃발을 말하고 쓰고 초기 조직하다.
• 장일순 - 쉬운 말로 이를 대중 특히 천주교 대중들에게 전파하다. 그 후 더 많은 이들을 만나다.
• 박재일 - 생명살림 협동체 한살림을 만들다.
• 지학순 주교 - 김지하 장일순 박재일을 후원하고 초기 한살림을 돕다.
• 이건우 - 생명운동이 협동조합운동으로 조직화되도록 생협(생활협동조합)을 교육하고 안내하다.
• 가농 -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생명공동체 운동을 실천하다.
정말 많은 분이 자기 나름대로의 ‘생명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한살림운동, 생명공동체운동, 생명평화운동, 녹색운동 등...
정말 우리 주변의 알게 모르게 뛰어난 선각자들과 중생, 뭇 생명과의 생명운동이었습니다.
형님!
엄청난 파고로 닥쳐올 기후위기,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는 팬데믹 위기, 생명의 위기가 심각하고 심각합니다.
상황은 절박하고 시간은 촉박합니다.
온 마음 온 몸으로 형님의 본뜻을 이어받아 생명의 길로, 생명살림의 대전환으로 가겠습니다.
형님! 편히 쉬소서.
4355년 6월 25일
정성헌 모심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 김지하 별세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의 김지하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 김지하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한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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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를 추도하며] 부용산 넘어 생명의 길로!
지하형님께서 이승을 떠나신 후 49재 되는 날, 남은 사람들이 형님의 혼령을 편안히 보내드리고자 정성으로 모였습니다. 돌아보니 형님과의 만남인연, 시절인연이 어언 51년이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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