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몸을 맡긴 사람, 세상에 불을 남기다 -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며

불에 몸을 맡긴 사람, 세상에 불을 남기다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며
“불에 몸을 맡겨
지금 시커멓게 누워버린 청년은
결코 죽음으로
쫓겨간 것은 아니다.”
— 이성부, 「전태일君」
불타오르는 한 사람의 몸을
그저 ‘죽음’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 불은 세상을 향한 항의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지막 외침이었다.
배운 것을 잊지 않는 청년이었다.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전을 공부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 법은 현실과 너무나 멀리 있었다.
동료 재단사와 함께 ‘바보회’를 만들고
평화시장의 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모두 거절되거나, 중간에서 사라졌다.
11월 7일, 노동청은 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 말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자.”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은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해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한국의 하늘은 잠시 검게 그을렸지만
그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가 태어났다.
그날 밤, 그는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배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결코 죽음으로 쫓겨간 것이 아니다.
“솔방울을 한 줌씩 집어던지면
아름다운 국화송이를 이루며 타오르는 사람,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하늘과 가까워져
이제는 새벽이슬이 내리는 사람.”
— 정호승, 「전태일」
타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벽이슬로 내려왔다.
누군가의 눈물로, 누군가의 기억으로,
그리고 여전히 세상을 지켜보는 양심으로 남았다.
남긴 편지에는
분노보다 따뜻한 부탁이 담겨 있다.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다 굴리지 못한 바위를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다.
그 바위는 지금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굴러가고 있다.
어딘가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손끝으로,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누군가의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55년이 흘렀다.
하지만 불이 남긴 빛은 여전히 우리를 비춘다.
오늘, 우리는 그 불 앞에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조용히 되묻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은 왔는가.
바라던 인간의 얼굴을,
우리는 서로에게서 보고 있는가.
불에 몸을 맡겼지만,
세상에 불을 남기고 갔다.
그 불은 오늘 우리의 심장 속에서,
아직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