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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드러머 Jack DeJohnette 별세

한방블르스 2025. 11. 1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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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드조넷(Jack DeJohnette), 1942년 8월 9일 ~ 2025년 10월 26일

 


재즈의 가장 위대한 거장과 함께 연주한 스릴 넘치는 미국 재즈 드러머,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나 신성한 악보의 통제를 벗어난 즉흥음악에서, 연주자의 직감에 따라 방향이 돌연 바뀌곤 하는 그 세계에서 드러머는 종종 ‘직관적 항해자’로 불린다. 그런 재즈의 본질을 가장 창의적이고 본능적으로 구현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잭 드조넷(Jack DeJohnette)이다. 드러머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이자 밴드리더였던 그는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조넷의 이력은 20세기 후반 재즈의 가장 위대한 이름들로 빛난다. 시카고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R&B부터 프리재즈까지 폭넓게 연주했다. 시카고 창조적 음악가협회(AACM)의 혁신적인 창립 멤버들과 함께했고, 때로는 선 라(Sun Ra)의 아크스트라(Arkestra)에서도 연주했다. 이후 그는 색소포니스트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가 이끈 초창기 재즈 록 퓨전 밴드에 합류했고, 그곳에서 당시 무명이던 젊은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Keith Jarrett)을 만났다.

그는 1970년대 초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전자 밴드에 참여해 혁신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데이비스는 그의 드럼을 ‘딥 그루브(deep groove)’라고 불렀는데, 이는 리듬의 정교함과 예측 불가능함이 공존하는 경계를 의미했다. 그러나 드조넷의 정교하고 섬세한 연주는 강렬한 일렉트릭 밴드 속에서도 결코 빛을 잃지 않았다.

그의 음악적 깊이는 두 명의 거장 피아니스트 — 빌 에반스(Bill Evans, 196869)와 키스 재럿(19832014, 스탠더즈 트리오) — 과의 협연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는 또한 1980년대 초부터 뉴 디렉션스(New Directions)와 스페셜 에디션(Special Edition) 등의 밴드를 이끌며 자신의 작곡적 색깔을 드러냈다. 색소포니스트 데이비드 머리(David Murray)와 아서 블라이스(Arthur Blythe) 등이 참여한 음반들은 그의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능력과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증명했다. 후기에는 솔로 피아니스트로서도 활동했다.

드조넷의 공연은 언제나 전율을 일으켰지만, 그는 자신의 카리스마를 결코 음악보다 앞세우지 않았다. 그의 드럼은 단순한 타악기가 아니라, 조율과 음색에 대한 섬세한 감각으로 빚어진 하나의 ‘화음’이었다.

그의 드럼은 단순한 비트가 아니라 이야기였다. 빠른 블루스 연주 속에서도 그는 리듬을 점점 느리게 끌어내리며 애도의 템포로 바꾸곤 했다. 때로는 불규칙한 멈춤과 스네어의 폭발적인 타격을 섞어, 마치 넓어지는 돌 사이를 건너는 사람처럼 긴장감 있는 흐름을 만들었다. 빠른 템포의 스윙에서는 관객이 숨을 죽이고 다음 순간을 기다리게 만들 만큼 강력한 몰입을 이끌어냈다.

그는 육체적이면서도 세련된 드러머였다. 드럼 세트를 마치 복싱하듯 전신으로 다루었고, 때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Live Evil(1970), Live at the Fillmore East 같은 어두운 세션에서 펑크와 록이 뒤섞인 묵직한 리듬을 긴 시간 유지했다. 그러나 재럿의 서정적인 어쿠스틱 트리오 안에서는 색채감과 리듬감,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피아니스트로서의 음악적 감수성을 함께 발휘했다.

시카고 남부에서 태어난 그는 외아들로, 어릴 때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네 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삼촌 로이 우드(Roy Wood, 라디오 DJ)가 그에게 듀크 엘링턴과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들려주며 음악적 감각을 길러주었다. 십대 때는 두왑과 팻츠 도미노(Fats Domino) 스타일의 록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피아니스트 아마드 자말(Ahmad Jamal)과 그의 드러머 버넬 푸르니어(Vernel Fournier)의 연주에 매료되며 재즈로 돌아왔다.

그는 맥스 로치(Max Roach),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 필리 조 존스(Philly Joe Jones) 등의 연주를 들으며 독학으로 드럼을 익혔다. 1960년대 초에는 이미 선 라, 색소포니스트 에디 해리스(Eddie Harris), 심지어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무대에도 서며 이름을 알렸다.

AACM의 공동창립자 무할 리처드 에이브럼스(Muhal Richard Abrams)는 그에게 뉴욕으로 가라고 조언했고, 그곳에서 드조넷은 색소포니스트 조 헨더슨(Joe Henderson), 피아니스트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찰스 로이드의 퓨전 밴드로 이름을 알린 그는, 1968년 빌 에반스 트리오의 유럽 투어에 참여하며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실황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그 투어에서 그는 재즈의 거장조차 안락한 구역 밖으로 끌어내는 젊은 도전정신을 보여주었다. 이후 런던의 재즈 클럽 ‘로니 스콧의 올드 플레이스(Ronnie Scott’s Old Place)’에서 존 서먼(John Surman)을 만나 오랜 음악적 동반자가 되었다.

1972년 유럽 투어 중 그는 ECM 레코드의 창립자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를 만나 장기적인 협업을 시작했다. ECM을 통해 그는 재럿, 게리 피콕(Gary Peacock)과 함께 역사적인 스탠더즈 트리오(Standards Trio)를 결성했고, 기타리스트 존 애버크롬비(John Abercrombie), 베이시스트 데이브 홀랜드(Dave Holland)와 함께 게이트웨이(Gateway) 트리오로도 활동했다.

1979년에서 1984년 사이 그는 ECM에서 Special Edition, Tin Can Alley, Album Album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작곡 세계를 확립했다. 데이비드 머리, 아서 블라이스, 치코 프리먼 등이 참여했다.

1990년대에는 즉흥 중심의 앙상블을 이끌었고, 2000년대에는 명상음악 프로젝트 Music in the Key of OM(2005)과 Peace Time(2006)으로 뉴에이지적 사운드를 탐구했다.

말년에는 시카고 시절의 동료 헨리 스레드길, 로스코 미첼, 무할 리처드 에이브럼스와 함께 한 실황 앨범 Made in Chicago(2014), 그리고 존 스코필드, 존 메데스키, 래리 그레니디어와 함께 한 Hudson(2017)을 통해 여전히 도전적인 연주를 이어갔다. 그는 세미놀과 크로 인디언 혈통을 가졌으며, 그들의 전통 노래를 레퍼토리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2024년에는 미발매 라이브 음원 Forces of Nature: Live at Slugs’(1966)이 공개되었는데, 당시의 젊은 드조넷이 재즈계에 어떤 충격을 주었는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록이었다.

 

 

Jack DeJohnette obituary

Thrilling American jazz drummer, pianist and composer who played with some of the genre’s greatest stars

www.theguardian.com

 

 

Jack DeJohnette with Pat Metheny, guitar, Herbie Hancock, piano, and Dave Holland, bass, playing Shadow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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