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놀다 보면 읽게 된다

미안하지만, 책방으로 사람을 이끌겠다는 저자의 바람은 빗나간다. 이 책은 이미 책과 놀고 있는 사람을 향하기 때문이다. 읽지 않아도 서가에 꽂아두고 싶게 만들겠다는 의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을 집어 드는 독자라면 이미 그 즐거움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10년 넘게 헌책방을 지켜온 경험을 바탕으로 책과 노는 스무 가지 방법을 건넨다. 책을 읽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필사를 하려면 읽어야 하고, 서평을 쓰려면 더더욱 읽어야 한다. 몇몇은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결국 읽는 행위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이 책의 제안은 어딘가 모순처럼 보인다.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 다시 읽는 쪽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 모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이다.
책 냄새를 맡고, 책갈피를 모으고, 서점을 찾아다니는 일. 이 책이 나열하는 스무 가지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거나, 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목록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시선에 있다. 책을 ‘읽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놀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독서는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는 일도 그렇다. 당장 펼쳐보고 싶어지는 책을 골라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엉뚱한 책을 고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서가에 꽂힌 책은 언젠가 그를 위로할 수 있다. 책을 건넨다는 것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시간을 건네는 일에 가깝다.
조금 다른 방식의 책 선물 재미도 있다. 더럽게 미운 놈에게 더럽게 어려운 책을 선물하는 일이다. “정말 좋은 책이야”라는 말을 덧붙이고, 책을 받아 든 그의 얼굴을 상상한다. 가끔 전화 걸어 “읽어봤니? 괜찮지.” 하고 확인한다. “그 책 다 읽었으면 다른 책 한 권 보내줄까?”라는 말을 덧붙이면 재미가 쏠쏠하다. 더럽게 미운 놈의 반응을 상상하는 일까지 포함해 하나의 놀이가 된다. 이 역시 책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이 책은 독서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책과 더 오래 함께 있는 방법을 말한다. 끝까지 읽지 못해도 괜찮고,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책 곁에 머무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책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책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목적을 숨기지 않는다. 사람을 책방으로 이끌어 책을 사게 만드는 것. 다소 노골적으로 들리지만 오히려 솔직하다. 읽지 않아도 사고 싶게 만드는 책. 그것은 소비를 권하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라는 제안에 가깝다.
책을 다 읽지 못해 쌓아둔 사람에게 이 책은 작은 변명을 허락한다.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건넨다. 읽지 못한 책은 실패가 아니라, 아직 다른 방식으로 만날 여지가 남아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라는.
결국 책을 가지고 놀다 보면, 놀다가 지치면 읽게 된다. 계속 관계를 맺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은 펼쳐진다. 느슨하지만 오래가는 연결. 저자의 바람은 어쩌면 정면이 아니라, 돌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읽는 재미를 잠시 내려놓고, 책과 놀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때 비로소, 책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책, 읽는 재미 말고 (솔직히 다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