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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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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이 법정도 알고 도 알지만 정작 를 읽어 본 이가 얼마나 될까? 문고판으로 몇십만 부가 팔렸다고 하지만 지금은 팔지도 않으니 읽을 방도가 없다. 얼마 만에 다시 읽는지 그 햇수를 셀 수도 없이 오래되었다. 어쩌면 지금 처음 읽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말처럼 나도 를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읽다' 앞에 붙은 '다시'라는 말은 그는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의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고 했다. 소유는 이해와 정비례한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법정은 무소유를 말하고 그 실천으로 책을 걷어갔다. 이문열의 의 고죽이 젊은 날 치기 어린 작품을 걷어 태워버린 것이 떠오르면 법정..
잡소리 법정스님의 유언을 보다보니 불현듯 이문열의 의 고죽이 생각났다. 지금은 기억이 아련하지만 당시에는 꼭 그러해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아마도 치기어린 고등학교 시절에 그 작품을 처음 대하여서 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이문열의 단편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시절 읽은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대학시절 나온 작품들도 많지만 나는 그의 중단편을 좋아하기에 대부분 그시절에 읽은 기억뿐이다. 온라인서점에서 이문열의 책을 찾아보니 대부분이 절판이다. 독자가 찾지않으니 절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소한 독자들에게 읽은 기회를 남겨두는 것이 출판사와 저자들의 최소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절판되었겠지만 아쉽고 어이(? 아마도 이 어이라는 말이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없는 일이라 말하..
법정스님의 유언을 보고 고죽을 떠올리다 금시조 법정스님이 열반에 드시고 그의 유언장으로 더 이상 스님의 책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집에 스님의 책은 몇 권 있지만 그리 자주 읽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스님의 는 제목이 주는 감동으로 읽어보고자 하였으나 아직도 위시리스트에만 있다. 스님의 를 5만원이상 팔려고 하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중고책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것이고, 그 가격에 원하는 이가 있다면 적정한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구매하는 이가 없다면 가격을 다운시킬 것이니 별다르게 비난하거나 토를 달 필요가 없다. 법정스님 유언장을 보면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라 하였다. 이 말을 보니 불현듯 이문열의 에 나오는 고죽이 떠오른다. 소설 속의 고죽과 스님을 비교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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