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은 왜 늘 랜드마크를 꿈꾸는가
사람은 변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질문은 변해야 한다.
곰탕도 아니고 같은 말을 20년 동안 반복한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신념이 확고한 사람일까, 아니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사람일까. 오세훈 서울시장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20년 전에도 랜드마크, 지금도 랜드마크다. 한결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멈춰 있다고 해야 할까.
2000년대 중반 한국 도시행정은 ‘상징’에 매혹돼 있었다. 청계천 복원 이후,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로 기억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고, 많은 정치인은 도시를 삶의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로 보기 시작했다. 오세훈 시장의 2006년 취임사는 그 시대의 욕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뉴욕과 같이 경제가 활기찬 도시, 파리와 같은 문화의 도시, 런던과 같은 품격 있는 도시, 밀라노와 같은 패션의 도시, 시드니와 같은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있는 도시…”
당시에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처럼 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오세훈 시장이 꿈꾸는 서울은 끝내 서울로 설명되지 않는다. 언제나 다른 도시의 조합으로만 설명된다. 뉴욕처럼, 파리처럼, 런던처럼.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랜드마크가 등장한다.
마치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 거대한 구조물 하나라는 듯이.

놀라운 점은 이 언어가 지금까지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25년 기사에서도 오세훈 시장이 말하는 서울의 미래는 여전히 “대표 랜드마크”로 요약된다.
“대관람차가 서울의 대표 랜드마크로 조성될 수 있도록…”
20년이 지났는데도 도시를 바라보는 언어는 그대로다. 그러나 그 사이 서울은 완전히 달라졌다. 청년은 더 불안정해졌고, 집은 더 비싸고 좁아졌으며, 기후위기는 도시정책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 사람의 삶은 달라졌는데 오세훈 시장의 도시 언어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상징”, “브랜드”, “랜드마크”.
이 단어들은 도시를 상품처럼 다루던 시대의 언어다. 물론 도시에는 상징이 필요하다. 에펠탑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결국 도시의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좋은 도시가 먼저 있고, 랜드마크는 나중에 생긴다. 삶이 도시를 만들고, 그 결과물이 상징이 되는 것이다. 상징이 도시를 대신할 수는 없다.
도시는 구조물이 아니라 삶이다.
그래서 지금 서울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랜드마크가 아니라 새로운 질문이다.
“무엇을 세울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랜드마크가 있는 도시를 꿈꾸는 오세훈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을 '디자인도시,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제가 꿈꾸고 희망하는 서울은, 뉴욕과 같이 경제가 활기찬 도시, 파리와 같은 문화의 도시, 런던과 같은 품격있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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