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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밥 먹여주는 경제경영

피임약 여권신장의 첨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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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임신은 여성에겐 권리이자 의무였다.

하지만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피임약의 개발과 여러 가지 피임법의 보급으로 여성들은 '임신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됐다. 피임약의 발명이 '여권신장'에 큰 기여를 하였다.

미시간대학의 마사 베일리의 <피임약의 추가적 힘(More Power of the Pill)>라는 논문에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피임약이 개발되기 전 미국 여성의 절반이 21세에 결혼했으며 그 나이에 임신을 했거나 아이엄마가 되어있는 경우는 40%에 달했다.

1960년 5월 9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세계 최초로 경구 피임약 에노비드(Enovid)의 판매를 승인했다.
피임약이 도래한 뒤 결혼과 첫 임신시기가 급속히 늦어지기 시작했다. 즉 피임약 덕분에 늦게까지 사회생활이 가능해진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하에 사회활동에 나가게 되었다.

21세 이하 미혼 여성에게 피임약이 허용 시점은 1960년에서 1974년까지 다양하다. 일례로 1961년 예일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코네티컷에서 여성에게 피임약을 처방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야했다.

1965년이 되어서야 미헌법재판소는 성인 연령의 기혼여성에 한해서만 피임약 금지법을 폐지했다. 그러니, 21세 이하의 미혼여성이 어디서나 피임약을 구할 수 있기까지는 그 이후로도 오랜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피임약이 결혼 연령과 임신시기를 늦추었으며 '여권신장'에 큰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타자를 잘치는 여성의 가치와 법률을 공부한 여성의 가치가 비슷했다.

산드라 오코너(Sandra Day O'Conner)라는 여성에게는 변호사가 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1952년 스탠포드대학의 그해 졸업생 중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럼에도 어떤 법무법인도 그녀를 채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맥을 이용해 법무법인 비서자리를 하나 얻었다. 반대로 그녀의 남성학우들은 그녀보다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법무법인에 취업했다.

오코너는 결국 검사가 되었고 승진을 거듭했다. 1981년, 레이건대통령은 미 대법원 최초의 여성판사로 그녀를 임명했다.


김영란 대법관과 미국의 산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오코너 전 대법관은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임명됐는데, 2005년 1월 “병에 걸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며 은퇴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 대법관은 2004년 취임해 현재 대법원 내에서 서열 4위를 기록 중이다.

덧붙임_
참조 : 이코노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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