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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부고를 하려면…
부고를 하려면…자식이라면 누구나 부모상을 당했을 때 주위 사람에게 기별을 한다. 그런데 사적으로 기별하지 않고 부음을 광고로 알리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명망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보통사람 집안에서는 그렇게 널리 알릴 만한 명성도 없거니와 무척 비싸게 먹히는 부고 광고료를 감당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윤씨상가(윤치호)의 부고 광고(매일신보 1911년 9월 26일)에서 요즘 부고광고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남작(男爵) 웅렬 씨가 숙환으로 본월 22일 하오 8시에 별세하셨기로 자이(玆以·이에) 부고함. 명치 44년 9월 22일. 사자(嗣子) 윤치호 (중략)” “재고(再告) 본월 29일 상오 8시에 신문 내 예배당에셔 장례를 거행하고 동일 상오 10시 남문역 열차로 온양읍 묘지로 발향(發向·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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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 - 마광수 교수를 다시 기억하며
마광수(馬光洙), 1951년 4월 14일~2017년 9월 5일 벌써 8년입니다. 2017년 9월 5일, 세상을 향해 가장 도발적이고 솔직한 질문을 던졌던 마광수 교수(1951-2017)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외설과 순수, 위선과 본능의 경계에서 평생 고독하게 투쟁했던 그의 삶을 오늘,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기리고 추모합니다.시대의 금기를 해방시킨 ‘야한’ 언어마광수 교수의 문학적 의의는 단연 억압된 욕망의 해방에 있습니다. 유교적 엄숙주의와 경직된 도덕관념이 지배하던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에서, 그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부분인 성(性)을 문학의 중심에 놓았습니다.『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즐거운 사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들은, 당시 문단과 지식인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감추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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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냉전시대 간첩이 된 천재 이방인, 정수일 교수 별세에 부쳐
정수일(鄭守一), 1934년 11월 12일 ~ 2025년 2월 24일 (향년 90세) 의 ‘처용’은 아랍 사람?서라벌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처용가‘처용가’는 신라 헌강왕 때(879년) 처용(處容)이 지은 팔구체 향가이다. 처용이 자신의 아내가 역신(疫神)과 동침하는 것을 보고, 이 노래를 부르자 역신이 사죄하며 물러갔다고 한다. 국문학 연구자들은 ‘처용가’를 흔히 관용정신을 통해 축신(逐神)을 이뤄낸 주술적 무가로 해석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주해(註解)가 있다. ‘처용무’를 출 때 쓰는 처용의 가면이 서역(西域) 사람과 닮아 있는 점과 당시 신라가 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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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한국식 죽음과 한국식 실종자
타인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하는가부고는 한 인간의 마지막 기록이다. 그의 이름, 생전의 직업, 남겨진 가족. 신문의 한 칸짜리 짧은 알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 사회가 누구의 죽음을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조선일보의 부고기사에서 이 태도의 방향을 드러냈다. 박순찬 조선일보 기자와 김영욱·정재민 카이스트 교수는 《한국언론정보학보》에 실린 논문에서, 2020년 상반기 동안 조선일보에 실린 단신 부고기사 939건과 2023년 하반기 부고 의뢰 경로를 분석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조선일보의 부고는 ‘고인’보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쓰인다.고인의 생전 직함이나 이력을 담은 경우는 전체의 24.4%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부고는 “누구누구의 부친상, 모친상”으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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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어요
『부고의 사회학』(이완수 지음, 시간의 물레)은 일간지 부고 기사에 담긴 가치관과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를 짚어낸다. 짧게는 몇 줄, 길어야 원고지 몇 장 안에 한 사람의 생을 압축해 넣는 일. 이 좁은 공간 안에서 기자가 고인의 삶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만약 고인이 저승에서 메일을 보낼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어요.”이 장면은 영화 클로저에서도 스쳐 지나간다. 부고 기사를 쓰는 댄(주드 로)이 앨리스(내털리 포트먼)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털어놓는 대사. 부장이 사망자를 알려주면, 다음 날 교정지를 보며 마지막 손질을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완곡어법’이라는 묘한 기술. 알코올 의존은 ‘풍류를 즐겼다’로, 성적 지향은 ‘개인 생활에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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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커뮤니티를 위한 斷想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고 있나? - 질문커뮤니티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내가 불행한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지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며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상실감은 통찰로,좌절은 전략으로,스트레스는 성장의 재료로 바뀐다. —윌리엄 더건,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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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분단 체체 관통한 세계적 학자 정수일 교수 별세
정수일(鄭守一), 1934년 11월 12일 ~ 2025년 2월 24일 (향년 90세) 문명교류사 · 실크로드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위장간첩 ‘무함마드 깐수’로도 알려진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 별세했다.고인은 분단과 냉전의 격랑을 온몸으로 관통했던 지식인이다. 1934년 중국 연변에서 태어나 베이징대를 졸업한 고인은 중국 국비유학생 1호로 선발돼 이집트 카이로대학에서 공부했다. 모로코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1963년 4월 고인은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북한행을 선택한다.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촉망받던 인재의 북한행을 극구 만류했으나, 고인은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북한행을 승인받았다.이와 관련해 고인은 2011년 출간한 회고록 『시대인, 소명을 따르다』(창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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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커뮤니티를 위한 斷想
그럼에도, 최초의 질문은 사람이 하니까 - 질문커뮤니티
“생각은 답에서가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세상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며, 새로운 생각을 제안한다.그러나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그럼에도, 최초의 질문은 사람이 한다.AI는 질문에 답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그는 무한한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문장을 이어붙이며, 그럴듯한 논리를 만든다.그러나 그 모든 작동의 시작점에는 하나의 물음이 있다.누군가 묻지 않으면, AI는 결코 말문을 열지 않는다.“왜?”, “무엇을 위해?”, “이건 옳은가?”이런 질문은 단순한 정보 요청이 아니다.그건 세계를 다시 바라보려는 의지의 발화다.질문은 불편함에서 태어나고, 불완전함에서 자란다.완벽하게 만족한 존재는 묻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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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불에 몸을 맡긴 사람, 세상에 불을 남기다 -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며
불에 몸을 맡긴 사람, 세상에 불을 남기다—11월 13일,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며“불에 몸을 맡겨 지금 시커멓게 누워버린 청년은 결코 죽음으로 쫓겨간 것은 아니다.” — 이성부, 「전태일君」불타오르는 한 사람의 몸을 그저 ‘죽음’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 불은 세상을 향한 항의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지막 외침이었다.배운 것을 잊지 않는 청년이었다.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전을 공부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 법은 현실과 너무나 멀리 있었다.동료 재단사와 함께 ‘바보회’를 만들고 평화시장의 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모두 거절되거나, 중간에서 사라졌다.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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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드러머 Jack DeJohnette 별세
잭 드조넷(Jack DeJohnette), 1942년 8월 9일 ~ 2025년 10월 26일 재즈의 가장 위대한 거장과 함께 연주한 스릴 넘치는 미국 재즈 드러머, 피아니스트, 작곡가지휘자나 신성한 악보의 통제를 벗어난 즉흥음악에서, 연주자의 직감에 따라 방향이 돌연 바뀌곤 하는 그 세계에서 드러머는 종종 ‘직관적 항해자’로 불린다. 그런 재즈의 본질을 가장 창의적이고 본능적으로 구현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잭 드조넷(Jack DeJohnette)이다. 드러머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이자 밴드리더였던 그는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드조넷의 이력은 20세기 후반 재즈의 가장 위대한 이름들로 빛난다. 시카고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R&B부터 프리재즈까지 폭넓게 연주했다. 시카고 창조적 음악가협회(AA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