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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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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어떻게 잘 조절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더불어 자신의 자녀에게 그러한 것을 가르치려한다. 어떻게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이 그들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라고 늘 고민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답은 간단하다.

부모가 늘 그들에게 알려주려는대로 행동하고 사고하라. 책을 읽히고 싶다면 먼저 책을 읽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으면 먼저 남에게 배려하고 관계를 맺으면 된다. 하지만 부모 자신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는 늘 좋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늘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이 책은 이러한 늘 자녀에게 말하지만 별다른 효과(? 효과라고 말하는 자체가 주입하려는 생각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바꾸기가 싶지 않다..)가 없다면 자신을 먼저 변하게 하고 자녀들에게 몸으로 실천하게 하라. 이 책은 그러한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여져 있다. 항상(대부분) 주어진 조건이나 항목에서 선택하여야 한다.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입을 막을 의도가 아니라면 결코 양자택일형 질문은 하지말아야한다. 또한 '왜?'라는 질문에 인색하고 허용하지않는 문화가 더 문제이다. 왜?라는 질문은 어떠한 결과에 대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결과를 얻기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원래 사고력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5쪽)

관계적 사고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입 달린 먹물들은 모두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다 제각각의 의견을 내고 있다. 무슨 일이든 행동으로 잘하고 싶은데 머릿속 생각이 받쳐주지 못하면 해내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은 창의적으로 행동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내 머리가 창의적이지 못한 것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와 세상과의 관계를 잘하려면, 관계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관계를 못하는 것은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생각이 모자라기 떄문이다. (135쪽)

사람들은 대부분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상대방에는 엄격하다. 내가 상대방에게 해준 것에 대해서는 모두 그것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하여 노여워 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면 배신 - 앞에 이야기 한 것을 배신이라 한다면 - 은 사람들이 자기합리화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 저자는 말한다. (125쪽) 공감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당사자가 되었을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아무도 멊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남의 일이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라(126쪽) 생각해 봐야 한다. 나 또한 거기에 자유롭지 못하다.


덧붙임_
알라딘서평단에서 받은 책.

덧붙임_둘
나는 TV에서 하는 강의를 보지 못했지만 집에서 본 마눌님 曰.
강의하는 중 하던 농담이나 모든 것이 책에 똑같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좀 반감이 된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강의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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