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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 바다의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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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책은 처음이다. 먼저 사놓았던 <밥벌이의 지겨움>을 드문드문 읽은 것이 전부이다. 두 권으로 그의 글의 변화를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다의 기별>과 같은 투가 더 좋다.

아버지와의 화해, 30년 김훈의 글을 보면 김훈의 글을 좀 더 이해하기 쉽다. 이런 설명보다도 자신의 느끼는 바가 중요하지만 늘 부족한 나로서는 다른 이의 도움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마도 사놓은 그의 소설을 읽을 것이다. 오래 묵혀 더 이상 미물 수 없는 상황이고, 소설이 눈에 안들어 온다는 핑계는 더이상 하지말자. 벽초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10권이라 부담스럽고 책도 없다.

"칠장사 기행"은 에세이 그중에서 기행문을 어떻게 전개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적어도 나에게는) 모범을 보여준다. 칠장사는 임꺽정의 절이다. 최소한 벽초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알고있다. 칠장사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임꺽정과 칠장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임꺽정과 해소국사를 느낀다.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고 가다가 벽초에 대한 공경(?)을 빼놓지 않는다. "벽초는 이 먼곳의 골짜기와 마을들과 길과 지리를 어찌 다 알아서 소설안에 들여 앉힌 것인가..."

이 책은 '에세이'다. 에세이는 우리말로 수필이다. 인터넷(네이버)에서 검색하면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견문이나 체험, 또는 의견이나 감상을 적은 글"이라 설명한다. 이 설명대로 이 책은 견문, 체험, 의견, 감상 등이 나열되어 있다. 수필에 대하여 인터넷의 내용을 좀 더 본다면 다음과 같다.
흔히 수필을 essay의 역어로 생각하나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써왔다. 중국 남송(南宋) 때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隨筆)》(74권 5집)의 서문에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 두었으므로 수필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보이고, 한국에서는 박지원(朴趾源)의 연경(燕京)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일신수필(日新隨筆)〉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보인다.
박경리 선생의 기억을 적은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를 보면서 그의 됨됨이를 엿본다. (연장자의 됨됨이를 논하는 것의 외람됨에 대한 용서를 구하려 한다.) 김지하가 풀려나는 영등포교도소에 나온 박경리 선생에 대한 회상이다. 지하와 백기완 선생, 박경리 선생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전달하지 않은 김훈, 그날 그 추운 그날에 일어난 일이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김훈의 아내가 울면서 말한 "아기가 추웠겠네요"라는 이 말이 추웠던 그 날, 그 시절을 대변하는 것 같다. 박경리 선생의 추위에 떠는 동동걸음이 떠 올라 안스러움을 더 할길없다.

"회상"은 <칼의 노래>에 대한 회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칼의 노래>부분은 몽상의 우리말 딴죽 - '칼의 노래'에서 먼저 보았다.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생각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중요하다. '꽃은 피었다. 꽃이 피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당췌...

그의 글을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부분에 대하여는 좀 더 알 기회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보다는 그의 치열함을 배우고 익히고 싶다. 한 점에 기대어 높이 솟구치는 장대 높이뛰기 선수처럼.
글이 써지지 않는 새벽에 나는 때때로 장대높이뛰기 선수를 생각했다. 그는 솟구치기 위하여, 오직 지상의 단 한 점 위에 장대를 박는다. 그는 그 점위에 선다. 그는 솟구치기 위하여 장대를 버린다. 지상의 그 한 점과 장대마저 버린후 그는 이름답고 외롭게 솟구쳐 오른다. 보아라, 저 치솟는 도약의 자유를 보아라. 사바의 예토 위에 썩는 검불처럼 내팽개치는 저 장대의 최후를. <문학기행> 서문
덧붙임_
생각의 나무, 2008년 11월 - 초판 1쇄

덧붙임_둘
"밀과 사물"에서 언급한 한국어에 관한 문제는 좀 더 고민중인 복거일의 '영어공용론'와 더불어 생각해야할 것 같다. 그의 말처럼 모국어를 폄하하거나 영어를 지나치게 숭배하거나 하지않다. 단지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고자 함이다. 김훈은 (단순히) 말과 사물을 설명하기 위하여 말한 것은 나 혼자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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