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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평생 걸어가고 싶은 거리만큼 책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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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으로 정신에 재료를 공급할 수는 있어도 우리를 대신해서 저자가 사색해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고 말했다. "다독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쉬운 길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색도 나의 개인적인 사색보다는 책을 통해 작가의 사색을 좇는 것을 더 좋아한다. 눈앞에 놓인 가시밭보다 작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평탄한 길을 더욱 사모하는 것이다. 다독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나친 독서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떨어뜨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_<쇼펜하우어 문장론> 中


시인의 말처럼 "나는 책을 읽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다." 또한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책이 넓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나도 "평생 걸어가고 싶은 거리만큼 책을 읽고 싶다".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
_맹문재

冊이란 한자를 찾다보니
부수로 冂이 쓰이는 것을 알았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읍이라 했고
읍의 바깥 지역을 교라 했고
교의 바깥 지역을 야라 했고
야의 바깥 지역을 림이라 했고
림의 바깥 지역을 경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선은
내 시야가 닿기 어려운 거리이다
나는 책을 읽어서는 세상을 볼 수 없다고 믿어왔는데
책의 경계선 안에
산도 강도 들도 짐승도
사람도 시장도 지천인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칸트는 평생 동안 100리 밖을 나가지 않고
서재에서 보냈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시계와 같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벌써 100리 밖을 벗어났고
들쑥날쑥 살아가고
결혼까지 했으므로
나는 책을 읽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다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책이 넓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보이는 데까지만 걸어가야겠다

* 해당 한자는 읍(邑), 교(郊), 야(野), 림(林), 경(冂).

-[현대시학] 2010년 6월호 출처 : 현대시학

+

- 시인의 시작노트

시간을 탓하지 않고 책을 읽고 싶다.
건강을 탓하지 않고 책을 읽고 싶다.
사상을 탓하지 않고 책을 읽고 싶다.

책 안에는 산도 강도 들도 짐승도 지천이다.
시장도 길도 사랑도 지천이다.
철학도 역사도 이데올로기도 지천이다.

평생 걸어간 거리만큼 책을 읽고 싶다.
평생 걸어가고 싶은 거리만큼 책을 읽고 싶다.


+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는 "나무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 한다.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라 한다. 그 나무에는 수많은 사연이 있다. 저마다의 사연이 나무를 더욱 무겁게 한다. 그리하여 책은 무겁다.

나는 책이 무거운 이유라는 같은 질문의 해답을 들은 적이 있다. "글자가 많아서 그래."라고 했다. "많은 것을 담아 무거운 책. 하지만 그곳에서 읽어 낸 내 머리는 깃털처럼 가볍다." 그래서 나는 무거운 책에 비하여 한없이 가벼운 내 머리를 탓했다.

+

책이 무거운 이유
_맹문재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는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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