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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삼천궁녀 의자왕 vs. 해동증자 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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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 의자왕은 무능하고 여색을 탐하는 '삼천궁녀'의 왕이다. 이러한 무능함과 여색을 탐해 결국 백제를 망하게 한 장본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왕만이 아니라 몇몇 충신을 제외하고는 사리사욕과 자기부족만을 지키는 백제귀족들도 백제 멸망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반면 계백은 가족까지 버리고 목숨 바쳐 신라의 대군을 막아낸 결사대의 장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의자왕은 중국에서 해동증자(海東曾子)로 평가받은 효성과 우애가 깊은 왕이라는 기록이 있다. 아버지 무왕을 이어 계속적인 공세로 신라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왕이기도 하다.

이에 저자는 삼천궁녀도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무능한 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백제의 멸망은 의자왕의 무능과는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한다.

(상략) 정방(소정방)이 사비성을 포위하니 왕의 둘째 아들 태(泰)가 스스로 왕이 되어 무리를 거느리고 굳게 지켰다. 태자의 아들 문사(文思)가 왕자 융(隆)에게 말하였다.
"왕과 태자가 (성을) 나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만일 당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가면 우리들은 어찌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드디어 측근들을 거느리고 밧줄에 매달려 (성밖으로) 나갔다. 백성들이 모두 그들을 따라 가니 태가 말릴 수 없었다. 정방이 군사로 하여금 성첩에 뛰어 올라가 당나라 깃발을 세우게 하였다. 태는 형세가 어렵고 급박하여 문열고 명령대로 따를 것을 요청하였다.

사비성 함락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저자는 사비성이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함락된 것이 아니라 투항때문에 스스로 붕괴하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투항의 원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한 직접적인 이유는 둘째 아들 태가 제멋대로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건 반역이다. 이후 사비성에 있던 백제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투항을 해 버린다. 투항한 백제인들이 걱정한 것은 당나라 군대의 공격이 아니라 오히려 당나라 군대가 철수한 이후의 사태였다.  방어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당연합군에게 처리될 것이고, 성공해도 정치적 쿠데타에 협조한 혐의로 인해 문책을 당하게 되니 스스로 항복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것은 의자왕이다. 의자왕 자신과 태자가 수도 사비를 버리고 피신하였기에 왕자 태가 왕위에 올라 사비 방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왕자 태에 대한 변명은 구심점이 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을 정도의 책임의식이 있느냐와 상황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그 결과 백제의 멸망으로 나타난 것이다. 의자왕의 진정한 실책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상황 판단의 오류가 있었지만 상황이 비관적이지 않았다. 또한 사비의 함락이 곧 백제의 멸망은 아니었다. 이것은 이후 일어나 백제 부흥 운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의자왕의 입장에서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후일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래서 웅진으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의자왕이 항복이든 아니든 당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는 부흥운동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저자는 의자왕의 웅진 피신이라는 잘못된 판단이 결국 사비성의 함락 그리고 부흥운동까지 무너뜨려버렸다고 말한다. '나비효과'라 말 할 수 있다.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 산물이다. 망함을 당한 쪽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이 부패, 무능 그리고 여자가 원인이다. 의자왕은 여기에 모두 해당한다. 이런 무능한 왕이었기에 백제의 멸망은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에 기록한 것이다. 또한 신라의 백제 정복은 필연적임을 더하여 기록한다.

여기에 하나 더 필요한 것은 무능하고 망해가는 나라에 보기 드문 충신이 필요하다. 그 역할이 계백이다. 무능한 왕과 충신의 대조 멋진 조합이다. 계백의 500 결사대는 애초에 없었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당시 백제의 상황이 결사 항전을 염두에 둘 정도는 아니었다. 자심의 목숨뿐 아니라 가족의 목숨까지 바친 충신 계백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의자왕은 더욱 더 무능해지지않을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모두 믿을 수도 믿어서도 안된다. 그 안에 있는 숨은 뜻을 바라보아야 한다. 저자도 역사학자들에게 실추된 백제의 이미지를 제대로 살펴 올바른 역사를 보자는 것에 의미를 둔다.

덧_
드라마 <계백>을 보면 찌질한 의자왕, 무능한 관료들, 왕을 무시하는 안하무인 계백 그리고 자신의 안위보다는 오직 나라만을 생각하는 계백이 있다. 사극이 점점 재미없어 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자왕을 고백하다
이희진 지음/가람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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