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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마광수의 뇌구조>라는 책을 보았다. 책을 보다가 '왜 세상은 마광수를 싫어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단하지도 않고 위대하지도 않다.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한 것 뿐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행行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 속에만 담고 평생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신념에 목숨을 건다. 누구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또 다른 이는 몸으로 행하기 힘들면 자신의 의지를 글로 나타낸다. 그들이 글쟁이다. 내가 생각하는 마광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그냥 글로 표현한 사람이다. 왜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면 싫어할까? 섹스에 갈망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단지 500년 성리학 이념하에 있는 백성들의 뇌리에는 감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광수는 시대적 상황을 넘어 그냥 말하고 싶을뿐이다. 누구나 상상하는 물론 자신도 상상하고 행하고 싶은 일들을 글로 쓴 것 뿐이다. 단지 다른 이와 다른 것은 글로 표현했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마광수 교수가 지금 그런 글을 썼다면 이슈가 되었을까? 아니다. 그냥 특이한 대학교수일 뿐이었을 것이다.
마광수는 그냥 마광수일 뿐이다. 그가 세상을 변혁하거나 바꾸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른 이는 마음 속으로만 꿈꾸던 일탈이다. 당시 사회는 일탈을 인정하지 못한다. 일탈을 꿈꾸지 못하는 세상은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성공하려면 성욕을 충족시켜라. 섹스는 만병통치약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카타르시스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얘기한 바 있다. 성욕이 충족되면 온몸에 활력이 생겨 매사 적극적, 진취적 자세로 임하게 된다. 마구마구 섹스하라. 실제적 섹스가 어렵다면 상상적 섹스라도 하라.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색스는 우리가 바라는 쾌락, 즉 행복의 정점에 있다. 그러므로 일체의 죄의식 같은 것 없이 섹스를 즐길 수 있으면 지극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은 섹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섹스는 만날 소외되어 있을 때만 하나? 즐거울 때도 하지. 나는 다만 섹스는 즐겁다 이거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는 늘 솔직하다. 정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이 세상은 섹스로 이루어져 있다 “섹스 없이는 먹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동식물이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여 생산해놓은 씨앗, 열매,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식욕 이전에 성욕이고 성에 고프지 않을 때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광수의 뇌구조 마광수 지음/오늘의책 |
다음은 그의 <감사感謝>라는 시詩이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니 호불호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詩가 아니라 시작노트에 주목한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또 다른 자기검열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뭐 보고 놀란 놈이 솥두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이 생각은 내가 너무 앞서 갔다는 느낌도 있다. 시작노트를 읽으면 상황이 연상된다. 그런 점에서는 약간의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작품은 자기를 떠나면 평가는 독자가 한다. 자신의 의도와 다른 의도와 느낌으로 받아드려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제발 이 시작노트가 또 다른 이름으로 마광수에게 다가오는 통제가 아니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늘 일탈을 꿈꾸는 그가 한없이 부럽다.
감사(感謝) - 마광수
너는 내가 첫 데이트 때부터 네 초미니스커트 아래로 희게 드러나 있는 너의 허벅지 사이에 내 손을 다짜고짜 찔러 넣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너무 길이가 짧은 치마라 앉을 때는 다리를 꼬고 있을 수밖에 없어 내 차가운 손바닥은 네 사타구니 사이에 포근하게 갇혔다. 내 손에 전달돼 오는 맨살의 따스한 온기와 ‘노 팬티’로 인한 음모의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나는 너무나 너무나 행복했다. 너는 또 내 더러운 혓바닥이 네 얼굴을 개처럼 핥아대도 조용히 있어 주었고, 내 이빨이 네 귓불을 질겅질겅 씹어대도 가만히 있어 주었다. 너처럼 첫 만남에서부터 나를 편안하게 해준 여자는 없다. 다들 조금씩은 폼을 잡거나 생색을 냈다,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네 사타구니 사이에 손을 찔러 넣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네가 잠자코 내 응석을 받아 주었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1995, 시집 <사랑의 슬픔>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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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 노트>
윗 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네 사타구니 사이에 손을 찔러 넣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네가 잠자코 내 응석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구절에는 사실 약간의 거짓말이 섞여 있다. 이 시는 1994 년 초에 내가 XX 대학교 불문학과에 다니던 S 라는 젊고 싱싱한 여자애를 처음 만나고 나서 쓴 시다. 그녀 쪽에서 내게 계속 전화를 걸어 접근해와서 만나게 된 여자였다.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외모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학생 티가 전혀 안 날만큼 화장을 짙고 세련되게 하고, 또 거기다 손톱도 길게 기르고,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쁜 여자애였다. 그래서 당시 몹시도 외롭던 나는 곧바로 그녀와 모텔로 직행했고, 그 이후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S 가 내 응석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S 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 외모나 치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약간의 ‘능청’을 떤 것은, 시에서든 산문에서든 거기 나오는 여자가 너무너무 예쁘다고 (또는 너무너무 섹시하다고) 표현하면 질투심을 느끼는 독자들 (아무래도 못생긴 여자들이 주가 될 것이다) 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로서는 이 시의 ‘발표’를 의식하여, 독자들한테 적당히 ‘아부’를 한 셈이었다. 얼마 후 나는 이 작품을 어느 문학잡지에 발표하였다.
따져서 생각해 보면, 내가 S 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하게 됐다는 말 자체에도 어폐가 있다. ‘사랑’이라기 보다는 ‘관능적 흥분’이나 ‘기분좋은 발기(勃起)’라는 말이 더 적당할 것이다.
나는 참된 에로티시즘은 ‘사정(射精)’이 아니라 ‘발기(勃起)’에 있다고 늘 생각해왔다. 순진하게 농염한 얼굴과 길디긴 손톱이 그로테스크하게 조화를 이룬 S 의 모습은, 나의 ‘상상적 발기’를 최대한도로 가능하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서 오르가슴의 순간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대하게 하는 시간을 한없이 연장시켜 주었다.
이것은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정(射精)’이란 말을 ‘수정(受精)’이란 말로 바꾸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발기’는 여자나 남자나 같다. 여자는 ‘페니스’대신 ‘클리토리스’가 발기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보지 같은 것은 성기축에도 들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아이 나오는 ‘구멍’에 불과하다). 다시 풀어서 설명하자면, 여자에게 있어 참된 에로시티시즘은 ‘수정’이 아니라 ‘발기’에 있다.
덧붙임_
이미지는 다른생각님의 비상구이다.
덧붙임_둘 2011. 12. 05 추가
새로운 책에서 보다. <진화의 선물, 사랑의 작동 원리> (샤론 모알렘, 상상의숲)을 보다. 결론은 "진화의 위대한 선물(섹스)을 즐기라"고 말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섹스는 비용이 많이 드는 행위다. 파트너를 찾고, 원하는 파트너를 차지하려 경쟁하고,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또 직접 섹스를 하느라 사용하는 에너지를 고려해보라. 그런데도 왜 섹스, 유성생식을 하는 것일까.
의사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진화와 섹스는 일심동체’라고 말한다.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유전자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게 된 이유를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저자는 “수많은 성적 욕망의 배후에는 자신에게 잘 맞는 짝을 찾아 번식을 하려는 진화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며 “진화의 가장 위대한 선물을 즐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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