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어는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간다

2012.05.15 07:30 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어는 "진지한 고민이나 내면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社會, 個人, 近代, 美, 戀愛, 存在, 自然, 權利, 自由, 그, 그녀 등을 한자어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어휘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새롭게 개념화된 개념어이다. 우리에게는 단지 이러한 한자어는 "번역어가 아닌 그저 한자로 된 일본어였을 따름"일 뿐이다. 따라서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에게는 번역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한자로 된 일본어'에 대한 "어떤 진지한 고민이나 내면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어는 또다시 '한국적'으로 왜곡과 변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번역의 시발점은 네덜란드어로 된 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난학蘭學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네덜란드 책뿐 아니라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유럽의 여러 나라 책을 번역하면서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다. 네덜란드와 교역을 하면서 난학을 받아들이고 난서蘭書를 번역함으로써 서구의 실용 학문을 적극 받아들인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새로운 개념어는 난학과 양학洋學의 번역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하멜 일행에 대한 조선의 태도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갖게 한다. 강준식은 <다시 읽는 하멜표류기>에서 "숭명배청의 기치를 들고 북벌 계획을 진행하고 있던 효종이 하멜 일행을 받아들이는 것을 계기로 서구 세계에 대한 정보와 그들의 과학 기술을 축적하고 개항에까지 나아갔더라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바뀌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만약 하멜 일행이 본국으로 돌아가 조선에 동인도회사를 세우려는 네덜란드의 계획이 무리 없이 진행되고 조선 왕실이 허용했다면 일본이 본격적인 서구 근대화로 가기 이전에 착실히 닦았던 난학의 기회를 우리도 가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하고 나서 2세기가 지난 뒤, 조선의 역사는 일제에 의한 치욕적인 식민통치라는 파국을 맞는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5>)

"어떤 진지한 고민이나 내면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상황이 일본 강점기를 가져왔음은 물론이고 좀 더 확대하자면 우리가 준비도 못 하고 해방이 되는 바람에 우리는 임시정부나 건국준비위원회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생소한 개념과 전문용어를 어떻게 번역하여 보급할 것인가 하는 것은 당시의 지식인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였다. 문제는 단순히 단어의 번역이 아니었다. 번역하고자 하는 개념이나 현상 자체가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룬 개념어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 번역자가 고군분투하며 만들어낸 것이며,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것이다. (역자)



사회社會

오늘날 우리가 society를 사회로 번역할 때는 그 뜻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쓸 수 있다. 즉 번역가는 단어의 뜻을 사회라는 번역어에 떠맡기고는 그 뜻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물론 단어를 쓰는 사람이 반드시 자신이 쓰는 단어의 뜻을 깊이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는 society에 해당하는 고유어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사회라는 번역어가 생겨나자, 사람들은 그 단어에 담긴 뜻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기라도 한 것처럼 society와 기계적인 치환이 가능한 단어로서 사회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미美

美는 서구 관념론 미학에 뿌리를 둔 번역어. '아름다운 花'는 있다. 화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은 없다. '꽃의 아름다움'과 같은 말이나 사고를 일본인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서구에서 들어온 단어였으며, 그에 대한 번역이었다.
'미'라는 단어에는 오늘날의 교양 있는 사람도 어딘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미'가 일본어로서 쓰이기 이전에 먼저 번역어로서 존재했다는 데 있다.

존재存在

존재는 '存 + 在'가 아니다. 존재라는 두 글자의 신조어를 만든 이상, 의미 분석은 거의 불필요하다. 사회와 회사의 의미가 '사'나 '회'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연自然

<노자>와 같은 오래된 한문 서적과 일본에서도 불교 용어로 쓰였으니, 역사가 오래된 말이다. 번역어 자연에는 원어(서구어)의 뜻과 모국어(일본어)의 뜻이 혼재한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자연의 용법 세 가지. 자연법이라는 법률상의 용법, 자연과학과 같은 과학분야, 자연주의와 같은 문학 분야.

자연도태自然淘汰는 natural selection의 번역어로, 다윈 진화론의 키워드이다. 여기서 자연은 번역어 자연이 아니라 고유의 자연, 저절로 이루어지는 도태의 뜻이다. 자연에 의한 도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도태를 의미한다.


일본어에서 한자어가 갖는 이런 효과를 나는 '카세트 효과'라고 부른다. 카세트란 작은 보석상자를 의미한다. 내용물이 뭔지 모르는 사람까지도 매혹하고 끌어당기는 물건이다. '사회'도 그리고 '개인'도 일찍이 이런 카세트 효과를 발휘한 단어였으며, 그 효과는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오늘날의 일본인들에게도 여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9쪽)

이 책은 번역에 관한 책이 아니다. 번역이라는 작업이 단순히 외래어를 자국어로 바꾸는 행위를 넘어서는 작업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것을 '카세트 효과'라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번역 작업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단어 하나하나가 갖은 의미를 진지한 고민 없이 사용한다면 조선 말기에 겪었던 상황이 또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헛된 기대감이고 막연한 희망 사항일 뿐이다.


일단 단어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그 단어의 뜻이 명확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모든 말에는 당연히 명확한 뜻이 담겨 있을 거로 생각한다. 사용하는 당사자는 잘 모르더라도 단어 자체에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고 믿게 마련이다. 어쩌면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남용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단어는 문맥상 다른 단어와의 구체적인 연관성이 부족하더라도 막연히 있을 거라는 믿음에 의해 사용된다. (36쪽)

저자의 말은 번역이 왜 중요하며 당대의 지식인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이름만 걸고 있는 감수자, 돈 안 된다고 번역은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고 있는 대학교수, 번역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쓰레기 같은 번역을 양산하는 출판계가 잘못된 개념을 전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아닐는지. 이런 기우는 말 그대로 쓸데없는 걱정이었으면 한다. 그러한 잘못된 개념이 잘못된 책 하나로만 끝나지 않는다.

양일모 교수는 번역이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과 담론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일본 근대화 시기 번역어에 대한 고민과 사회적 담론에 충실했던 일본 지식인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그들의 진지한 노력으로 우리는 좀 더 쉽게 서구의 이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우리의 담론이 부족했던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하기에 현재의 번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기초가 될 것이다.

(번역된 토착어) 속에는 번역하는 주체의 의도가 스며 있다. 나아가 번역어는 번역되는 지역 안에서 출발어의 경계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실천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간다. 이러한 사회적 실천과 담론 속에서 번역어는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양일모)


번역어의 성립
야나부 아키라 지음, 김옥희 옮김/마음산책



신고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