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세상은 우리가 볼 때마다 달라지며, 세상을 보는 순간 우리도 달라진다."이다. 정조 때의 문인 유한준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 와 뜻을 같이한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듯이 "역사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다. 역사가는 "자신이 속한 사회 구성원의 사고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표현 방법에 동의하지 않지만 "역사 기록은 필연적으로 왜곡을 동반"한다. "역사가가 어떤 관점을 갖는 순간 역사적 사건은 왜곡"된다.
고종석의 <사실>에 나오는 글이다. "사실이 말하지 않은 것은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우리 역사학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진실만을 말합니다."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 여기서 고종석은 "그런 그의 모습이 내게는 마치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종교인처럼 보였다"고 했다. "많은 학자가 자기의 말의 객관성을 내세우고 싶을 때 내뱉는 말"이다. 또한, 매번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사실'이 말하고 있다.
사실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실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너무 많은 말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목소리로 듣는다. 그리고 그것이 참된 목소리라고 너무 쉽게 믿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뒤에서 누가 말하고 있는가. 왜 그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 고병권)
이 책의 제목은 《우리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이다. 우리가 컴퓨터는 아니지만, 누군가에 의해 그들의 의도대로 생각하게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그러한 프로그래밍 때문에 그들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그러한 프로그래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상을 보아야한다. 올바르게 보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순간 우리도 달라진다."
이 말은 다의적(多義的)이어서 국민 ·부족 ·종족 등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으며, 또 실제로는 이들과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요인도 있다. 그러므로 민족은 언어, 거주하는 지리적 범위, 경제생활과 문화, 동류로서의 공속의식(共屬意識)을 공통으로 가지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집단이다.
이들 여러 요인이 상호 관련하는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되고, 개개의 요인이 단독으로 민족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들 여러 요인이 복합하여 어떤 민족이 생성 발전하는 과정 중에 그 민족에게 고유한 특징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민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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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民族) 또는 겨레는 하나의 문화 또는 하위문화며, 외부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인종, 국민, 언어 또는 종교적 기원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족의 일원은 일반적으로 문화적 또는 유전적으로 비슷하다고 여겨지나, 사실 이것은 항상 그렇지는 않다. 베너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라는 말로 정의한다.
민족의 일원들은 일반적으로 강력한 역사적 영속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소위 민족 유산이라고 불리는 문화적 특징들의 많은 부분이 근세기에 들어서서 만들어진 것을 발견했다. 또한, 과정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들의 고향에서 중요시되는 문화적 특성들은 혼합되거나 지워지게 된다.
정치학적으로 민족은 국민국가와는 달리 자주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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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은 영어 nation에 해당하는 서양 개념을 번역한 한자이다. 민족이라는 말을 처음 쓴 <황성신문>이 말한 민족의 의미는 '인종'에 더 가까운 단어였다. <황성신문>에서는 동양에 사는 황인종이 다른 민족에 대항해 단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상상의 공동체》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고대로부터 실재하던 실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가 만든 발명품이라 규정한다. 자국어로 된 대중 신문의 등장을 통해 한민족이란 개념이 만들어졌다는 견해이다. 민족은 실체가 아니라 필요로 만들어진 일종의 가상적 믿음이란 것이다.
탁석산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족은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가졌을 때 힘을 규합하기 위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이란 결국 허깨비"라 말했다. 우리에게 민족이란 신채호를 비롯한 "일제 강점기 때 두드러지게 민족의식이 생겨났다." 민족이란 의식이 없던 무지한 조선 백성은 근대화로 말미암은 문자의 보급으로 의식화되었다. 국가라는 개념이 생기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일제 강점기로 근대국가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저자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다시 규정한다. 단군신화를 매개로 동아시아 전체를 민족으로 아우르는 '문화공동체로 규정하고 싶어한다. 이 부분은 또 다른 모양의 민족주의가 되지 않을지 조심스럽다.
나는 동아시아에서 '민족'이라는 단어는 고정되고 협소한 의미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문화 공동체'라는 틀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각 민족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 연대의 틀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초기 민족이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인종이라는 특성에 문화라는 의미를 결합한 것이다. 경직된 민족이라는 단어보다는 넓은 의미의 '연대'로 동아시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은 무엇일까? 핵심은 신화, 즉 이야기이다.
정조가 위대한 왕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정조에게도 공만 있는 게 아니라 과도 존재한다. 그보다도 정조가 근대화를 추진한 개혁적인 왕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왕권 안정을 위하여 봉건적 질서와 성리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왕일 뿐이다. 정조 때 천주교에 대해 許 한 것을 두고 개방적이고 근대적 사상의 소유자라는 근거로 든다. 그러나 천주교에 관대했던 것은 성리학과 비교하면 수준이 낮아 보였기 때문이다. 바른 학문을 공부하면 천주교는 없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정조는 군주제를 극복할 수 없는 필요가 없는 군주였다. 좀 더 비약하자면 그가 힘을 실어준 안동 김씨가 그의 사후 외척에 의한 조선 후반기 정치의 공백을 가져오게 만든 장본인이다. 본디 세도정치란, 道로 世상을 다스리는 좋은 말이다. 이 또한 왕권 강화를 위한 조치였다.
위대한 군주 정조대왕을 기리게 한 것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의 영향이다. 노론에 의한 정조 독살설로 이른바 정조 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인화의 이러한 것은 남인, 또는 노론벽파의 한풀이를 기반으로 한 이인화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이인화는 이러한 정조를 기리고 그를 동정하는 듯하나 사실 박정희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이 점은 진중권도 지적했다. 이이화 선생씨에 따르면, "정조 사후 꾸준히 나돌았던 독살설은 노론 벽파에게 오랫동안 소외되어 울분에 빠져 있었던 영남 남인과 일부 소론이 지어낸 것"이라고 했다.
노론이 인조반정(박정희도 자신의 거사를 인조반정이라 했다)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조선의 유림 사회는 명나라의 황제를 왕으로 모신다. 그럼 조선 왕은? 조선 왕은 사대부와 정치 동지가 되는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대부들이 사대주의로 방향을 확실하게 튼 것이다. 이후 조선의 유림이 중국 왕에서 일본 왕으로 바꿔 섬기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에 대한 유림의 충성 경쟁이 시작되었다. 물론 기독교는 신사 참배를 하고 불교는 왜색 불교가 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125쪽
저자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큰 틀에서 보면 이야기의 맥락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그들(필요에 따라 우리를 프로그래밍하는 자)에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으니 다시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프로그래밍을 아예 없어야 한다. 자 이제 리셋 버튼을 눌러 재부팅해야 한다. Reboot .....
아직도 이승만과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들을 회고하면서 좋던 시절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 속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악령이 숨어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는 일본이나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큰 '독'이 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왜 자살을 많이 하는지, 왜 스스로를 불행하게 느끼는지 이제는 알아야 한다. 일부 기득권자와 사상가의 프로그래밍에서 깨어나야 할 떄가 된 것이다. 우리는 가난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나누지 못해서 불행하다. 159쪽
우리는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