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3주 새로 나온 책

2013.11.18 09:00 行間/새로 나온 책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을 때 위기는 깊어가고 병적 징후가 출현한다." '헤게모니'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의 언명이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다.

지난 2008년의 세계적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에 파산 선고를 내렸다. 그런데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이 살 길이요, 뼈를 깎는 구조 조정과 공공 지출 축소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밖에 없다는 기득권층의 일관된 주장이 먹혀드는 게 현실이다. 2011년 자본주의 탐욕에 항거하는 월스트리트 시위에서 출발해 미국 사회를 뒤엎을 것 같았던 '점령하라!' 운동도 73일 만에 경찰에 의해 어이없이 무너졌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인간이 서로 포식자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마치 '잘난 놈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살면 되고,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사회의 공공성은 허물어졌고, 이제 각자 알아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철학 교수였던 제럴드 앨런 코헨(1941~2009)은 죽기 전에 펴낸 마지막 책에서 이런 상황에 도전장을 던진다. '사회주의면 어때?(Why not socialism?ㆍ책의 원제이기도 하다)'라고. 코헨은 캠핑장에 간 사람들의 사회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비교한 뒤 사회주의가 명백히 더 좋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회주의의 기본 원리를 평등과 공동체 정신으로 보고, 사회주의가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캠핑의 예를 들어 배격한다. 사람들은 캠핑할 때 협동을 통해 평등과 상호 배려라는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기에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인간 관계의 본보기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즉 캠핑에서는 자본주의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문제는 사회주의가 인간 본성에 들어맞는지가 아니라 캠핑에서 실현되는 사회주의적 원리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구현하는 데 있다. 안타깝게도 서로 관대하고 협동적인 캠핑의 원리는 제한된 시간에 각별히 친한 사람끼리 있을 때만 실현될 수 있는 데다 우리는 전 사회적으로 캠핑 원리가 작동되도록 하는 사회적 기술을 아직 모르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덧붙여 사회주의에 저항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힘이 막강해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열패감도 고백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탐욕과 공포가 작동 원리인 시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 더러운 시대의 요설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인류 역사에서 포식 시대를 끝내려면 사회주의의 기본 원리를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저자에게 사회주의는 돈에 찌들고 병든 세상을 치유할 윤리이기 때문이다. 그 치유법도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사는 삶이 '좋은 삶'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이 내세웠던 '경제 민주화'가 시나브로 논의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경제 민주화란 경쟁과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양극화를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어떻게든 통제해 사회와 경제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가 유언처럼 들려주는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이 백 명이 놀러 온 캠핑장이라면
제럴드 앨런 코헨 지음, 조승래 옮김/이숲

사회주의는 캠핑 같은 공동체 중심의 윤리, 포기해선 안된다
사회주의면 어때? 서로 돕고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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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옮겨질 때 얼마나 많은 의미와 정보가 유실되고 왜곡되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내에선 외국 철학서나 이론서를 비롯해 세계적인 사상가나 철학자의 명언, 정치가의 연설문 등이 일부 오역되고 왜곡돼 버젓이 읽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연합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현직 언론인이 쓴 신간 ‘오역의 제국’은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저자는 번역에서 신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지적했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오역된 기사 때문에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매국노’로 매도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08년 7월9일 일본 홋카이도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교과서에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언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今は困る。待ってほしい)”고 답했다고 요미우리는 7월15일자에 보도했다. 이 기사대로라면 이 대통령 발언은 후쿠다의 발언에 수긍하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

즉각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성명을 냈고, 일본 정부도 공식 성명에서 이 기사가 오역임을 인정했다. 요미우리도 구체적 증거를 대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즉각 이 기사를 통째로 삭제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 세력은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며 1886명에 달하는 소위 ‘국민소송단’이란 것을 구성해 대통령을 상대로 법원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오역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 했으나 패소하고 말았다. 뒤에 알고 보니 ‘자제해 달라’는 영어 단어 ‘홀드백(hold back)’을 ‘기다려 달라’로 오역한 것이었다. 이 오역 소동은 사실이 아님에도 2012년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까지 오르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원폭 투하도 따지고 보면 영어 오역 때문에 촉발됐다는 주장이 있다. 사태 전말은 이렇다. 1945년 7월26일 미국의 해리 트루먼,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중국의 장제스 등 연합국 수뇌들이 포츠담 선언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연합국 측의 항복 요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일본 여론은 들끓었고, 정부는 입장을 밝혀야 했다. 당시 스즈키 간타로 총리는 7월28일 오후 4시 기자회견에 나섰다. 하지만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리는 (포츠담선언에 대해) ‘모쿠사쓰’할 따름”이라고 했다. ‘모쿠사쓰’는 ‘유보하다’, ‘거부하다’ 등의 모호한 표현으로 영어에는 번역할 만한 적당한 단어가 없다.

스즈키 총리는 ‘논평을 유보하다’는 뜻으로 모쿠사쓰를 썼지만, 당시 일본 도메이통신은 영문 기사를 긴급 타전하면서 ‘모쿠사쓰’를 ‘무시한다(ignore)’로 옮기고 말았다. 도메이통신을 받은 서방 언론은 ‘거부하다’라는 뜻으로 보도했고, 이에 격분한 트루먼 대통령은 사흘 뒤인 8월3일 원폭투하를 지시하는 문서에 서명했다는 후문이다.

저자는 “미국은 무조건 항복 요구를 거부한다는 답변에 경악했고, 결국 8월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서 “오역은 독자와 원저자에 대한 죄악이자 역사와 사실을 왜곡하고 인간 지식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거듭 강조한다.

오역의 제국
서옥식 엮음/도리

대한민국, 남한 유일의 합법정부 주장은 오역
사실 왜곡하고 지식 파괴하는… 오역의 실상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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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난 3학년 공식 일정표에 '책 버리는 날'이 잡혔다. 어제(13일)였다. 오전 9시 30분. 커다란 트럭 한 대가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3학년 각 반 교실에 3학년 부장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금 본관 현관 앞에 책 수거 차량이 와 있습니다. 3학년 학생들은 교실에 있는 책을 정리해 2층으로 내려와 책을 버리기 바랍니다."

학교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까지 난리다. 개인 보관함과 책상 아래에 쌓아두었던 각종 책들이 끌려나온다. 마치 모두 그 순간을 기다린 듯하다. 평상시 느려터졌던 아이들은 다른 때와 달리 일사불란하기만 하다.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을 동고동락한 책들이다. 그 시간만큼의 손때와 땀이 묻어 있다. 힘들게 공부하다가 내뱉은 한숨이 책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어느 책장 갈피에는 미래에 대한 벅찬 상상의 그림도 그려져 있을지 모른다. 한글 자모로 새겨둔 짙은 고민의 흔적도 새겨져 있겠지.
그 모든 것이 담긴 책들을 아이들은 가차없이 내던진다. 너무나 후련해서 아무 미련도 없는 듯한 몸짓이다. 지난날의 기억과 추억을 버리는 날인데도, 아이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책 버리는 날'은 '책이 죽임을 당하는 날'이다. 그런데도 그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사뭇 흥겨운 잔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애먼 책들이 뭐라 할까. 추락하고 널부러져 있는 책들 모습이 아프다.

책이 흔한 시대다. 너무 흔해서 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아이들이 쓰는 교과서와 문제집이 그렇다. 한 번 보고 책상 아래로 내던져 버리는 소설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책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책 구하기도 쉽다. 책 버리기? 이렇게 학교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배려해 주니 일도 아니다.

책의 운명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 책을 만드는 일은 국가적인 정책 사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국립인쇄기관까지 있었다. 교서감(校書監 )과 서적원(書籍院), 간경도감(刊經都監)이다. 책은 귀했으며, 그만큼 책에 대한 대접도 극진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은 1543년(중종 38)에 만들어진 법령집의 일종이다. 이 책에는 아주 흥미로운 벌칙 조항이 들어 있다. 서책 인쇄에 참여한 관리들은 책 1권에 한 자의 오자가 있는 경우 곤장 30대를 맞았다. 책을 찍어내는 민간인 기술자들도 한 자의 착오 이외에 먹이 진하거나 희미한 때 곤장 30대를 기본으로 맞았다.

문제가 되는 글자 수가 다섯 자 이상이 나오면 더 엄중한 벌을 받았다. 서책 인쇄를 담당했던 관리들은 파출(罷黜), 곧 자격 정지를 당했다. 민간인 신분이었던 서책 기술자들은 근무 50일을 감봉했다. 사면 이전에는 정부의 서책 인쇄 작업에 참여하지도 못하게 했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는 책에 대한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서양의 중세 책이다. 프랑스 리모주 대학의 역사 교수인 저자는 서양의 중세를 '책에 대한 열정'의 시대로 이해한다. 이 책은 그런 서양 중세인들의 책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책이라는 귀한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당대의 독자들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서술한다. 그런 점에서 서양 중세 시대의 서책에 대한 공시적(共時的) 연구서다.

책의 원래 모양은 어땠을까. '책'의 한자 '冊'은 상형문자다. 죽간목독(竹簡木牘)은 글을 새긴 기다란 대쪽이나 나무쪽이다. 이 죽간목독을 세워 가로로 엮은 모양을 본뜬 게 바로 '冊'이라는 글자다. 두루마리 모양의 책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와 고려 전기까지 두루 쓰인 책 양식이다. 이 책에 따르면, 서양 중세에서도 15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이런 두루마리 형태가 많았다.

저자는 오늘날과 같은 책 모양은 '코덱스(codex)'와 '인쇄물'의 발명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한다. 코덱스는 '사각형의 페이지들을 묶은 형태의 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저자는 코덱스가 높은 휴대성과 공간 활용성 덕분에 두루마리를 즉각 대체하기 시작했다. 최대 수 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읽는 일을 상상해 보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양 중세의 책 문화는 어땠을까. 저자의 꼼꼼한 안내를 따라가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글을 쓰기 위한 소재로는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만 쓰인 것으로 알았던 파피루스가 중세 시대에도 제법 쓰였다는 게 이채롭다. 15세기 당시 종이는 양피지 값의 1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종이는 그 가격 경쟁력 덕분에 대대적으로 양피지를 대체하게 된다.

중세 초기에 책이 만들어지던 곳은 주로 수도원이었다. 하지만 대학도시가 발전하면서 학생들이 많아지자 도시 공방의 필경사들 손에서 많은 책이 만들어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책 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서적상들이 책 수요에 맞추기 위해 학생들을 필경사로 채용하기도 했다. 서책 조합이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라고 한다.

책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시기 책들은 모두가 수서본(手書本)이었다. 필경사 한 명이 하루 평균 세 쪽을 필사한다면 200장, 곧 400쪽짜리 책 한 권을 필사하는 데 약 두 달 반이 걸린다. 책을 장식하고 묶는 채식사와 제본사 비용도 있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대형판 성서 제작 비용이 중세 말 보통 크기 장원의 연간 수입에 해당하는 액수였다고 한다. 도시 가옥 한 채 평균가가 100리브르였을 때 책 한 권이 15리브르였다고도 한다. 집 한 채를 팔아봐야 고작 6, 7권의 책밖에 살 수 없었던 셈이다.

책 도둑과 관련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중세에는 책 도난을 막기 위해 책에 무거운 쇠사슬을 달아놓은 대학 도서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책 관리나 감독은 전반적으로 엄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 주인들이 개별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고문을 써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파리 생빅토르 소유이다. 이 책을 훔치거나, 이 경고문을 숨기거나 지우는 자는 천벌을 받을지어다. 아멘. (111쪽)

책이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종이가 대량으로 퍼지면서부터였다. 이에 발맞춰 본격적인 책 수집가와 애서가도 생겨났다. 그들의 취향에 맞는 독특한 책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아주 작은 시도서>는 프랑스 샤를 8세의 왕비를 위해 1490년경에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가로 4.5센티미터, 세로 6센티미터의 크기로 중세 시대 책 중 그 크기가 가장 작다. 저자는 이렇게 작은 책을 만드는 일이 거의 '묘기'에 가까웠다고 평가한다.

오늘날 책 읽기는 거의 모두 묵독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집단 낭독이나 구술이 좀 더 지배적인 책 읽기 방식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미의 이름>을 보면 중세 수도사들이 성경을 집단 낭독하는 장엄한 광경이 인상적으로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대 이전 한글 문헌들을 보면 '하고, 하니, 해서' 등의 연결어미로 문장이 길게 이어지는 장문체(長文體)가 많다. 일정한 음절 수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면서 리듬감을 자아내는 율문체(律文體)도 특징적이다. 이들 모두 낭독이나 구술의 편의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책이 글의 문체에도 영향을 준 것은 우리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다.

중세 서양에서 책이 귀한 대접을 받은 데에는 종교적인 요인이 컸다. 저자는 기독교가 서구에 전파되면서 책이 신성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말한다. 손에 성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 단적인 증거다. 성서 한 권을 만드는 데 200마리의 양과 18개월간의 고된 노동이 필요했다니 두 말 해 무엇하랴.

오·탈자를 범한 공무원과 기술자를 곤장으로 벌한 우리 조상이 오·탈자에 무감한 오늘날 우리를 보면 뭐라 하실까. 책 도난을 막기 위해 책에 무거운 쇠사슬을 매달아 놓은 서양의 중세인이 '책 버리는 날'과 같은 문구를 보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손바닥 위의 코덱스(휴대전화)'에 온갖 새롭고 진귀한 정보가 펼쳐지는 세상이다. 그들이, '손바닥 위의 코덱스'에 푹 빠진 오늘날 우리들을 본다면 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각자 고개를 수그린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게, 책을 귀히 여기고 즐겨 읽었던 우리 중세인과 똑같으니 아름답다고 말할까.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마티

글자 한 자 틀리면 곤장 30대, 50일 감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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