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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섣부른 낙관은 희망에 짓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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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낙관은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를 하고 만다. 지금의 현실의 냉혹한 진실을 정확히 판단하여 대처해야 한다.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 의 다른 이름.....

낙관론자가 현실주의자 보다 먼저 포기하고 희망에 눌려 죽었다고 한다.

"투사는 싸우는 것이다.(Fighter's fight)"

"세게 때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아무리 맞더라도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록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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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데일 패러독스 (Stockdale’s Paradox)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하노이 힐턴’ 전쟁포로 수용소의 미군 최고위 장교이던 짐 스톡데일(Jim Stockdale)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이다.

스톡데일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에 20여 차례의 고문을 당하면서 전쟁포로의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하고 정해진 석방일자도 없고 심지어는 살아 남아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태로 전쟁을 견뎌 냈다. 그는 수용소 내의 통솔책임을 떠맡아 자신을 체포한 사람들과 포로들을 선전에 이용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맞서 싸우며 가능한 한 많은 포로들이 큰 부상 없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뭐든지 했다.

한번은 자신이 ‘훌륭한 대우를 받는 포로’의 사례로 비디오 테이프에 찍히는 걸 피하기 위해 의자로 자신을 내리치고 면도날로 자신을 베는 등 고의로 자해를 하기도 했다. 그는 발각될 경우 더한 고문을 받고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아내와 편지를 통해 비밀정보를 교환했다. 또 사람들이 고문을 견디어 내는걸 돕는 규칙도 제도화했다. (누구라도 무한정 고문을 견딜 수는 없다는 걸 감안하여 사람들에게 살아남을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몇분 뒤에는 얼마만큼을 말해도 좋다는 식의-점진적인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들을 체포한 사람들이 애써 조성하려고 하는 고립감을 줄이기 위해 정교한 내부통신 체계도 마련했는데, 5×5 행렬의 톡톡 부호를 써서 알파벳 문자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톡-톡은 a, 톡-쉬고-톡-톡은 b, 톡-톡-쉬고-톡은 f하는 식으로 25개 문자를 나타내고, c와 k는 같은 부호를 쓴다.) 한번은 진지한 침묵 속에 포로들이 모여 들더니 사람들이 박자를 일제히 맞춰 일제히 두드리는 통신 부호 소리가 중앙운동장을 휩쓸었다. 스톡데일에게 보내는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소리였다. 그가 총에 맞아 쓰러진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석방된 뒤 스톡데일은 해군 역사상 조종사 기장과 의회 명예 훈장을 동시에 다는 최초의 3성 장군이 되었다.

필자는 어느날 스톡데일의 점심 식사 초대를 받게 되었다. 인터뷰 준비차 필자는 스톡데일과 그의 부인이 8년간 자신들이 겪은 일을 연대기 식으로 정리하며 한 장 씩 번갈아 쓴 책 [사랑과 전쟁 속에서( In Love and War)]를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필자는 점점 침통해졌다. 운명의 불확실성. 체포자들의 냉혹한 행동 등등. 그저 황량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 따뜻하고 편안한 내 사무실에 앉아 평온한 토요일 오후의 아름다운 스탠포드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책을 읽으며 우울해지고 있고 또 나는 이야기의 끝도 알고 있다. 그가 수용소에서 풀려나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국민적 영웅이 되고 이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철학을 연구하며 만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침통한 느낌이 든다면 실제로 그곳에 있었고 이야기의 끝도 알지 못하던 그는 도대체 어떻게 그 상황을 견뎌냈을까? “

필자의 이런 물음에 스톡데일은 대답했다.

“나는 이야기의 끝에 대한 믿음을 잃은 적이 없었어요. 나는 거기서 풀려날 거라는 희망을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거니와 한걸음 더 나아가 결국에는 성공하여 그 경험을 돌이켜 보아도 바꾸지 않을 내 생애의 전기로 전환시키고 말겠노라고 굳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필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일행들과 함께 교수클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듭된 고문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스톡데일의 뻣뻣한 다리가 쩔룩거리며 연신 원호를 그려댔다. 백 미터쯤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필자가 물었다.

“견뎌 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스톡데일이 말했다.

“아, 그건 간단하지요. 낙관주의자들입니다.”

“낙관주의자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필자는 정말 어리둥절했다. 백미터전에 그가 한 말과는 배치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 까지는 나갈 거야’ 하고 말하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오고 크리스마스가 갑니다. 그러면 그들은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오고 다시 부활절이 가지요. 다음에는 추수감사절. 그리고는 다시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그러다가 상심해서 죽지요.”

또 한차례의 긴 침묵과 더 많은 걸음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스톡데일이 필자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이건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 결단코 실패할 리 없다는 믿음과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규율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린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겁니다. 그에 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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