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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신자유주의" 과연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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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장하준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컬럼을 보았다.

"착한 경제학자는 있을지 몰라도 착한 경제학은 없다."라고 하면서 장하준교수에게는 문제가 없고 집행하는 무능한(?) 정부와 정치꾼들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시장과 세계화를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계의 시각에서 장 교수가 비주류인 건 사실이다. 빈부격차 등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주류는 교육과 직업훈련 일자리를 통한 해결을 찾는 반면, 비주류는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반대를 주장한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에선 시장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학자가 많아야 15%여서 ‘이단(heterodox)’으로 불린다.
장하준교수가 주장하는 것들이 주류가 아니다. 주류의 흐름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내세우고 비주류는 이에 반대한다.

포퓰리즘의 큰 특징은 정권이 선거에 의해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데 있다. 경제에선 시장은 물론 재정적자를 무시한 분배정책으로 나타나고, 정치에선 헌법과 사법제도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무시한 비자유적 민주주의로 군림한다. 민주주의가 자유의 제도화를 뜻한다면 그 제도를 박살내고 정권의 자유만 추구하는 게 포퓰리즘이다.

시장이 경제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재정건전성 정책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의 요구이니 ‘세입을 초과한 지출’도 해야 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지난날 남미를 말아먹은 포퓰리즘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손에서 중요한 결정을 빼앗아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들의 손에 넘기는 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다.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좋을까? 아직 참여정부의 임기가 몇 개월 남아있지만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 할 것이다. 장하준교수의 주장을 참여정부의 일관된 내용과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같은 칼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도구가 될 수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칼이 아니라 그것을 휘둘러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정부 개입을 강조한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죄가 없다. 그러나 무능한 정부를 모신 죄 없는 국민은 피해가 막심하다. 만일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이 당선돼 장 교수 주장대로 보호주의를 채택한다면 당장 우리나라가 피해를 볼 판이다. 착한 경제학자는 있을지 몰라도 착한 경제학은 없다. 되는 경제학(주류)과 안 되는 경제학(비주류),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정치꾼이 있을 뿐이다.
글을 쓴 김순덕 부국장은 '되는 경제학(주류)와 안 되는 경제학(비주류)'라고 평하였지만 고한 평가라고 보인다. 신자유주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를 비판한 장하준교수의 보호주의도 어떤 면에서는 타당한 논리가 된다. 장하준교수의 이론을 참여정부에서 적용하고 실패(?)하였기 때문에 이런 논조가 나온지 모르지만 무리가 잇어 보인다.

어찌되었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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