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안읽는 시대에 시집을 권하다는 포스트를 보니 기분이 우울하다. 예전에 쓴 詩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가 생각나서 더욱 그러하다. 詩로 혁명을 꿈꾸던 시절의 詩와 지금의 詩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가.

정희성시인의 말처럼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좋겠다. 지금은 '가슴에 묻'기를 희망한다. 또한 김남주시인은 '法이 없으면 詩도 없다'고 절규한다. 차라리 김남주시인의 말이 맞는 시대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시대에 살며 詩의 존재를 생각해야하는 것이 서럽다.

살아남은 자 모두 피고라는 하길종감독을 기리는 말처럼 지금 이시대에 살아가는 모든이는 '피고'일지 모를일이다. 하지만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는 신동엽시인의 절규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에 더 서글프다.

김지하시인은 애린 간행에 붙여에서 "모든 죽어간 것, 죽어서도 살아 떠도는 것, 살아서도 죽어 고통받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한 진혼곡"을 들려주고 "그 죽고 새롭게 태어남을 애린이라 부른다"한다. 그의 마지막 말을 빌어 이 동시대에 살아가는 아니 지금 詩를 잊고 사는 모든 이에게 "부디 모두 애린이어라!"

덧붙임_

조태일 시인이 창간한 <詩人>지의 재재창간호이다. 제호 : 김지하시인
이 <詩人>도 오래가지 못했다. 詩가 안되는 시대에 전문지가 팔릴리 만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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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자그니 2008/09/16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태일 선생님의 이름... 오랫만에 다시 듣고 갑니다...

    • BlogIcon 한방블르스 2008/09/16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그니님 덕분에 시집을 몇 권 열어 보앗습니다. <詩人> 재재창간호는 오래갓으면 하는 생각으로 구매를 하였는데 그때도 길지 못하겟구나 생각햇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사실 글이라 할 수 없는 잡문이다. 수 많은 텍스트들이 떠돌아 다니는 인터넷 세상에 쓰레기를 또 하나 추가하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니 궁금하다기 보다는 그것에 의미믈 부여하고 싶다. 또 이렇게 적고보니 김춘수의 표절이 되는구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처럼 우리는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생각의 깊이가 일천한 나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아는 대부분 아니 전부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누구의 것을 차용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한가지 바라는 바는 내가 덜 유명해져서 - 사실 그럴 가능성은 전혀없다 - 내가 표절한 모든 것들이 저작권이란 무서운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누군가가 누구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 또 표절(듣기 좋은 말로 표현하면 인용)하여 말해본다면

애린의 실제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만해더러 님이 누구냐고, 어떤 여자냐고 묻는 바보짓처럼.

 구태여 그리움이니 목마름이니 잃어버린 민주주의니, 분단된 조국 따위 뱀발을 붙여 섣부른 설명을 가할 필요가 무엇 있으랴. 구태여 말하라면 모든 죽어간 것, 죽어서도 살아 떠도는 것, 살아서도 죽어 고통받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한 진혼곡이라고나 할까. 안타깝고 한스럽고 애련스럽고 애잔하며 안쓰러운 마음이야 모든 사람에게, 나에게 너에게, 풀벌레 나무 바람 능금과 복사꽃, 나아가 똥 속에마저 산것 속에는 언제나 살아 있을 것을. 그리고 그것은 매순간 죽어가며 매순간 태어나는 것을. 그러매 외우 이문구형은 『애린』을 일러 인물시뿐 아니라 만물시라고 하였것다.

그 누구냐는 그 누구도 될 수 있고 또한 그 누구도 될 수 없다. 또 그 누구가 내가 될 수도 있고 또 네가 될 수도 있다.

글을 쓰는 방법을 바꾸어 보여주는 글을 쓰려고 잡글을 난발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함이라는 미명하에 세상을 다르게 보자는 위안을 겸해 글을 적고 있습니다.

꾸져진 신문처럼 꼬깃꼬깃 접혀져 아무데나 버려져 있는 단어와 팩트를 모아 그것에 의미와 관계를 주어 하나의 텍스트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하의 말(言)로 잡글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입 있어도
말 건넬 이 이 세상엔 이미 없고
주먹 쥐어보나 아무것도 이젠 쥐어질 것 없는
그리움마저 끊어진 자리
밤비는 내리는데

소경피리소리 한 자락
이리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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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왜 글을 쓰나?

    Tracked from Hemingway's I love text 2008/07/24 17:07  삭제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글과 영상이 공해를 일으켜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누구에게는 공해라고 하겠지. 무엇보다도 쓰고 있는 글이 공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여야 되는데, 무작정 쓰는데로 발행해서도 안되고, 공개해도 안된다. 그런 점에서 나 또한 가담자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꼭 공개를 할 것이라면, 비판을 받을 생각하고 썼으면 한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어느 사람에겐 맞지 않은 부분이..

  2. Subject : 취미 독서가의 막장으로 가는길...

    Tracked from ReadMe.Txt 2008/07/30 15:58  삭제

    읽다보니 적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책읽기를 온전한 취미로 만들려고 하였다. 뭐.. 아제로스 대륙에서 인간들이랑 싸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은 취미인 것 같아서 다른 신변잡기를 정리하고 의식적으로 읽기에 시간을 투자하였다. 그러다 보니 비단 책을 읽는 시간 그 자체보다 읽고 난 후에 혹은 읽기 전에 들이는 시간이 많게 되었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인데, 이렇게 독서가 아닌 비독서 즉 그 책에 관련된 행위에 시간을 들이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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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헤밍웨이 2008/07/24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기도하고 싶네요.

  2. BlogIcon mariner 2008/07/30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어떤 작가를 엄청좋아 했는데 어느날 제가 쓴글에서 그분과 비슷한 냄새를 느꼈어요. 흠짓 놀랐는데..
    책을 읽을때 문장 문장 짚은 손끝에서 그 작가의 글이 묻어 있었나 봅니다. ^^


요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10여년전만 하더라도 라디오에서 시보를 알리고 새해가 되면 꼭 나오는 노래가 있었다.
"The Messiah Will Come Again - Roy Buchanan"이다. 노래의 분위기나 제목이 새해 첫날에 어울리는 곡이다. 지금은 어떠한 곡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프롤로그 -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하지만 지금은 그 곡보다 '프롤로그 -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듣고 싶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그 따뜻한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나도 그들처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The Messiah Will Come Again - Roy Buchanan

이 곳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또 이 곳을 찾지 않으신 더 많은 분들과 '모든 죽어간 것, 죽어서도 살아 떠도는 것, 살아서도 죽어 고통받는 것'에게도 2008년은 '내 생에 가장 행복헸던 한 해'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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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 애린 4

2006/09/18 20:04
외롭다
이 말 한마디
하기도 퍽은 어렵더라만
이제는 하마
크게
허공에 하마
외롭다

가슴을 쓸고 가는 빗살
빗살 사이로 언듯언듯 났다 저무는
가느다란 햇살들이 얕게 얕게
지난날들 스쳐 지날수록
얕을수록
쓰리다.

입 있어도
말 건넬 이 이 세상엔 이미 없고
주먹 쥐어보나 아무것도 이젠 쥐어질 것 없는
그리움마저 끊어진 자리
밤비는 내리는데

소경피리소리 한 자락
이리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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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간행에 붙여

2004/03/09 12:37
애린 간행에 붙여


  애린의 실제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만해더러 님이 누구냐고, 어떤 여자냐고 묻는 바보짓처럼.

  구태여 그리움이니 목마름이니 잃어버린 민주주의니, 분단된 조국 따위 뱀발을 붙여 섣부른 설명을 가할 필요가 무엇 있으랴. 구태여 말하라면 모든 죽어간 것, 죽어서도 살아 떠도는 것, 살아서도 죽어 고통받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한 진혼곡이라고나 할까. 안타깝고 한스럽고 애련스럽고 애잔하며 안쓰러운 마음이야 모든 사람에게, 나에게 너에게, 풀벌레 나무 바람 능금과 복사꽃, 나아가 똥 속에마저 산것 속에는 언제나 살아 있을 것을. 그리고 그것은 매순간 죽어가며 매순간 태어나는 것을. 그러매 외우 이문구형은 『애린』을 일러 인물시뿐 아니라 만물시라고 하였것다.

  아직도 바람은 서쪽에서 불고, 아직도 우리는 그 바람결에 따라 우줄우줄 춤추는 허수아비 신세, 허나 뼈대마저 없으랴. 바람에 시달리는 그 뼈대가 울부짖는 소리 그것이 애린인 것을. 몹시도 티끌 이는 날, 두견꽃이 죽어간 날 누군가 태어났다. 술상 밑에서, 애기파 속에서, 겨울 얼음강에서 새로운 얼굴로.

  나는 그 죽고 새롭게 태어남을 애린이라 부른다. 앞으로 이 글이 얼마나 계속될지 여기서 끝이 날지 잘라 말 못한다. 생명은 이렇게 이 순간에도 죽고 또 태어나기에. 다만 이제까지 발표된 것을 이문구형의 청에 따라, 또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실천문학을 위해, 내 사랑하는 후배 시인 송기원을 위해 책 한 권으로 묶는다. 애린은 이 한 권의 시묶음이기도 하다. 부디 모두 애린이어라!

  1986년 2월 9일
  해남에서

  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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