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
요조는 찌질한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그 군상들을 속이고 놀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거짓 행동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당연하다 여긴다. 그러면서 점점 더 폐인이 되어 간다. 원래 관인이었으며 폐인이었다. 저자가 말년에 자서전으로 쓴 소설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결국의 소설에서 예측한대로 저자는 얼마후 39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된다. 이러한 인간이 있을까? 연민을 가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광인은 바로 저자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저자 다자이 오사무나 요조는 모두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애증이 너무 깊어 허위와 잔혹에 찌들어져 있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여 결국 '자살'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이라 여겨진다.
일본 소설을 잘 읽지 않으니 그 뿌리가 무엇인지 무슨 파이니 하는 계보도 알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고 글을 읽으니 눈에 보이는대로 밖에 이해를 하지 못한다. 특히 소설은 저자의 생활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것을 무시하고서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좀 더 많이 읽어야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김춘미교수가 쓴 작품해설을 보고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 또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민음세계문학전집에 선정될 정도의 위치를 가진 책인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내가 그 작품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기인한 것이다.
책과 인연맺기는 아주 우연하게 다가온다. 내가 <인간 실격>을 알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알게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가 있다. 그들의 음악은 신선했다. 그들의 음악을 듣던 중 '요조'라고 불리는 어여쁜(?) 가수를 알게되었다. '참 맑은 목소리를 가진 영혼이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름도 참 특이하구나'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연히 그녀의 이름 '요조'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 한다. 영어로 yozoh라 하는데 마지막 'h'는 마지막에 묵음을 넣으면 좀 '있어 보이자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한다. 재미있는 어여쁜 처자다. 여하튼 그녀가 나에게 <인간실격> 그리고 디자이 오사무와의 인연을 주었다. 바로 구매를 하였다.
'글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회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경영의 원점, 이익이 없으면 회사가 아니다 (0) | 2009/06/22 |
|---|---|
| 한국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 이것이 차이나 (4) | 2009/06/10 |
| 인간에 대한 연민 : 인간실격 (6) | 2009/06/08 |
| 원래 유럽이었다 : 이제는 유럽이다 (0) | 2009/06/07 |
| '관문이론'을 아시나요? : 도시락 경제학 (2) | 2009/06/01 |
|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 (2) | 2009/05/31 |





br>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주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네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 .
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지만,
일단 인간 군상들에 대해 조롱하는 책이고, 타락해가는 인간의 감성에 대해 잘 표현한 작품이라
기억에 오래 남는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극한으로 다룬 책이 아닐까 생각도 해요^^;;
***요조 목소리가 어려서 20대 초반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생각보다 더 있더군요!
작가의 생에 대하여 몰랐다면 그렇게 생각했을겁니다. 하지만 연민보다는 자신이 그렇게 되어감에 따른 자괴감이 아닐까, 또 한면에서는 자신의 생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이라고 느껴집니다.
적다가 보니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했지만,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답니다 ㅎㅎㅎ
저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정론으로 알고 있어요.
자신의 삶에 대한 변명이란 점은 제가 잘 보지 못해서 그런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자기 연민이란 점은 확실히 공감이 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연민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 음...
저자의 자기 연민.. 한방블르스님 글 읽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소설이 자기 연민이건 아니건 간에 다자이 오사무의 삶(혹은 요조의 삶) 자체가 시사하는 의미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요조의 삶에 대한 님의 생각은 저와는 좀 다르네요 ^^;;
저는 요조가 사람들에게 거짓 행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에 대해 상당한 고뇌를 하는 것으로 해석했거든요. 인간 관계의 허위 같은 것들에 적나라하게 반응함으로써 관계를 어색하게 냉각시키느니, 익살을 떨면서 겉으로는 자신의 진솔함을 묻어 버리면서도 속으로 고뇌하는 것을 택했다고 봤어요. 어쩌면 요조는 부끄럼쟁이(?)였던 거죠. 그래서 요조의 삶이 더 비극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허위를 증오하지만 자신도 결국 억지 익살을 떨고 다니는..
어쩃든 트랙백 잘 받아 보았습니다~
책 정말 많이 읽으시는군요 ㅎㅎ
종종 들르겠습니다.
^^
허위를 증오하지만 또한 그 허위를 즐기는 요조라고 해야하나요?
저는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요.
이상이 세상을 조롱하면서 69다방을 내었을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러한 생각이 저자도 같게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블로그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