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그 이면을 다시 읽다

2011.05.06 12:04 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장정일의 책을 읽으며 다시금 <더 리더>를 다시 생각하다.
소설을 가지고 현실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장정일이 외설의 절대적인 피해자임을 그는 말하지 않지만 근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나만 외설이냐'고 말하는 듯하다. 외설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독자만 판단할 뿐이다.

장정일의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 본 몇 가지. 물론 몇 가지는 처음부터 의구심을 가진 내용이지만 이번에 다시금 생각해본다.

왜 여주인공 한나 슈미츠는 문맹인가?
왜 연상(여자)연하(소년) 커플인가?
왜 섹스를 하였는가?
왜 고전을 읽어주었는가?
왜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가?

<더 리더>는 작년에 읽었다. 내가 읽은 것은 글자를 읽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그 내용의 근간이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없다. 소설을 고민하면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하지만 장정일의 생각이 옳다. 책의 행간을 읽지 못하고 표면적인 내용에만 얶매임을 알 수 있다.

*

현실과 전혀 상관 없는 가상의 소설을 놓고 법정이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려고 시도하는 이유는, 소설도 현실에 통용되는 법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기이한 논리 때문이다. 미성년 약취가 현실 세계에서 처벌되어야 하는 불법이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이루어지는 미성년 약취도 따라서 불법이 된다는 논리다.

모두들 좋다는데, 나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불일치에 대해 나는 입 다물기로 했다. 혼자 배배꼬인 인간이 되기 싫어서다.

열다섯 살짜리 여중생과 서른 여섯 살 먹은 마을 버스 운전기사가 만난 지 두 번 만에 섹스에 돌입했다면, 그리고 주구장창 그 일만 되풀이한다면(물론 그 사이에 무시무시한 고전을 읽는다). 당신은 뭐라고 할텐가? .... 미성년 십대 소녀가 보호받아야 한다면, 미성년 소년도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 뭐가 다른데? 변태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 98쪽)

여주인공 한나 슈미츠는 일자리와 질서라는 정상성에 탐닉했던 나치 시대의 평균적인 독일인을 보여준다. 이때 그녀가 소년에게 즐겨 들었던 도서 목록의 대개가 고전이었다는 것은 정상성 희구의 좋은 증빙이 된다. (같은 책, 103쪽)

이 소설이 단순한 연애담이라면, 한나 슈미츠의 자살은 예정된 것이다. 슈미츠 부인이 기소되었 때의 나이가 마흔 세살이었으니, 18년 동안의 형기를 마쳤을 때는 예순한 살이 된다. 그녀는 마흔 살의 미하엘의 연인이 될 수 없다. 그건 더 이상 왈가왈부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하고, 닫힌 결론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연애사보다 작가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점을 중심축으로 놓고 이 소설을 읽을 때, 그녀의 자살은 독자들에게 무성한 이론과 열린 결말을 선사한다. 나는 그녀의 자살로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한 21세기 독일인의 무죄 항변을 떠올리고, 또 나치 독일의 기억을 말끔하게 지우고 싶은 21세기 독일인의 과거사 청산 의지를 본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한나 슈미츠의 문맹은 지극히 개인적인 그녀만의 본원적 약점을 뛰어 넘어, 좀 더 정치적이고 역사적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한나 슈미츠 부인의 문맹은 그녀의 치부이면서, 홀로코스트 범죄에 참여했던 나치 부역자들의 순진무구함과 무죄성을 은유한다.(같은 책, 105쪽)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이레


덧붙임_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에서 기왕에 읽었던 책들을 보았다. 그 책들에 대하여 다시 보게 하였다. 장정일이 꼭 옳은것은 아니지만 그의 시각이 좋다. 이러한 견지에서 장정일의 생각에 붙여 내 글의 방향성을 세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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