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가난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난을 뻔뻔스러움으로 잘못 보고 있지만, 실은 피할 도리가 없는 부끄러움이다. 다시 말해서, 없는 사람들이 가진 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그들이 특히 뻔뻔해서가 아니라 방금 너희들처럼 부끄러우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 이문열, <서늘한 여름>
이문열의 <서늘한 여름>에 나온 가르침(?)의 한 부분이다. 가난 공부 제 1과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부분이다. 제 2과는 인내이다. 약수동 병신과 신촌 백치들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약수동 병신들이며 신촌 백치이다. 저자 이문열은 병신과 백치들에게 가르침을 알려주는 소설 속의 형이다.
- 그것이 가난이다. 더구나 너희들이 받는 괴롱무은 대개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원하는데서 온 것이고, 또 잠시동안이다. 돌아가면 부유한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 예를 들면 먹을 것이나 입을 옷이나 살 집 따위마저 없어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언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확실한 기약도 없이. 너희들이 기껏해야 몇 시간 동안 받은 이 괴로움에는 비할 수가 없지 ...
- 그럼 그 사람들도 부지런히 일해 벌면 되잖아요?
- 그게 항상 부자들이 내세우는 인정머리 없는 변명이지. 부자는 개미이고 가난뱅이는 베짱이다. 그러므로 베짱이같이 게으른 가난뱅이가 굶어죽는 것은 당연하고, 개미같이 일한 부자의 책임 아니다... 그런 애기겠지.
-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엉터리야. 세상에 있는 것은 무엇이건 일정한 양뿐이기 때문이지. 한 사람이 많이 가지려면 누군가는 적게 가지거나 전혀 가지지 않아야 돼. 다시 말해 가난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너희 아버지도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거야. 이해겠니?
- 언제나 그들을 잊지 마라. 너희들이 지금 받고 있는 괴로움보다 몇 배나 큰 괴로움을 날마다 되풀이해 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것이야말로 가장 떳떳하게 너희들을 변명해 줄 수 있는 미덕이다.
이문열의 한계(?)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젊은 날 치기어린 이문열의 가르침이다. 결코 "없는 사람들이 가진 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취한 부당이익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부끄럽거나 어쩔수 없어서가 아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금시조>에 나오는 고죽이 떠올랐다. 이문열도 아직은 아니지만 할 수 있다면 (물론 가능하지 않지만) 그의 몇몇 작품은 고죽처럼 모아 태우고 싶지 않을까.
내가 읽은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오늘의 작가총서 10, <젊은 날의 초상>에 실린 단편 <서늘한 여름>이다. 지금 판매되고 있는 <젊은 날의 초상>은 작가총서 12로 바뀌었고 <서늘한 여름>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어떠한 연유인지 모르지만 이문열의 작품집은 원 작품이외에 수록된 작품이 여러번 바뀐 것이 많다. 장편이 아닌 중편 <사람의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덧붙임_
민음사, 1983년 8월 7판 (1981년 11월 초판)
덧붙임_둘
법정스님의 유언을 보고 고죽을 떠올리다
이문열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병태에게
익명의 섬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지자가 되고 싶은 충동은 가지고 있다
사로잡힌 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