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7월 팔레스타인 지역 영국군 최고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이 테러범에 의해 폭파당했다. 이 폭파로 80명의 영국군 고위 당국자와 민정관이 죽었다. 부상자만 100여 명에 이른다. 이 테러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지하무장 단체인 ‘이르건’이 대 영국 투쟁의 시작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은 유럽국가 간의 패권 싸움으로 분열되면서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끝났다. 이스라엘의 처지에서는 유럽국가 자신은 실컷 식민지를 개척했으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통제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유럽이 식민지를 개척할 때는 국제적인 추세였으니 괜찮고 2차 세계대전 이후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식민지 또는 점령정책이 안 된다는 논리는 이스라엘이 볼 때는 다분히 유럽 중심적인 생각이다.” 이는 저자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서의 독립국 성립에 관해 말하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의 처지에서 볼 게 아니라 현지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의 처지를 생각하는 게 더 우선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나라를 이루고 산 것은 2,000여 년 전 그것도 길지 않은 기간이다. 그것을 근거로 기존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몰아내고 식민지화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폭력은 원래 이유가 없다. 권력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폭력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 유대인에 관한 글을 읽으니 생각나는 글귀이다. “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하는 ‘2국가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서 한 국가에서 유대인과 같이 살면서 동등한 투표권이 있는 ‘1국가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아랍인이 유대인보다 많아질 것이 분명하기에 이스라엘은 이를 반대한다. “이스라엘은 2국가 해결책과 1국가 해결책 전부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몰아넣어 살게 하여 궁극적으로 고사시키려고 한다.”
《경제 기적의 비밀》이라는 제목과 <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쳐왕국이 됐을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어떠한 점을 배워야 할지 이 책을 읽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곳곳에 드러나는 저자의 우호적인 구절이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한국 사람은 역경을 극복하면서 성공한 이스라엘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측은하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큰 비난을 하지 않는 것이 현재 우리의 인식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미국을 절대적인 우방으로 여기는 영향이 크다.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대인의 가장 뛰어난 점은 ‘유일신’ 종교를 만든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사상이었다. 그 사상을 기반으로 불교를 제외한 대부분 종교의 뿌리가 되었다. 가톨릭,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종교가 반목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종교의 뿌리인 유대교가 원죄를 가진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디아스포라(diaspora)’는 오늘날 유대인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흩어진다’, ‘산재한다’는 뜻의 희랍어에서 비롯했다. 삶의 고장을 잃은 유대인이 이산과 방랑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강제이주의 슬픈 역사이다. 디아스포라를 통해 한층 더 다져져 오늘날 유대인의 혈맥 속에 살아있다. 이런 이주 생활을 거쳐 유대인은 ‘세계인’이 될 수 있는 경험을 쌓아 왔다. 최근에는 국외 각국에서 살면서 집단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인 교류를 한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우리가 유대인과 다른 점은 전 세계 각지에 한민족이 없어 네트워크가 부족한 것이다. 이를 극복해야만 한다.
덧붙임_
유대인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면 다음을 권하고 싶다.
책이란 놈은 살아있다. 나에게 온 《유대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