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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4년 11월 3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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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고약한 잠버릇 탓에 고생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 어느 날 잠결에 크게 다친 뒤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의사도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자 잠에 관한 궁금증에 빠져든다.

'왜 우리는 잠을 잘까? 남자는 여자와 잠을 자는 방식이 다를까? 꿈은 왜 꿀까? 부모가 갓난아기를 재우는 일은 왜 어려우며, 세계 모든 사람이 왜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까? 왜 어떤 사람은 코를 골고, 어떤 사람은 골지 않을까? 잠은 무엇일까?'

잠의 사생활은 미국 로이터통신 수석기자이면서 뉴욕대 저널리즘 겸임교수인 저자 데이비드 랜들이 자신의 수면 장애 경험을 토대로 이런 문제에 답한 책이다. 저자는 역사, 문화, 심리, 과학, 신경학, 정신의학 분야 자료를 두루 살피며 신비로운 잠의 면모와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세계적인 골퍼 잭 니클라우가 1964년 유에스오픈과 브리티시오픈 대회에서 겪은 이야기다. 그는 유에스오픈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으나 공동 23위에 그쳤다. 3주 후 브리티시오픈 참가를 앞둔 그는 컨디션을 되찾아 공을 다시 페어웨이로 올려놓는 꿈을 꿨고, 꿈에서 했던 것처럼 클럽을 잡고 브리티시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저자는 잠에 빠진 뇌가 꿈꾸기 같은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깨어 있을 때는 풀지 못했던 문제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폴 매카트니는 비틀스의 대표곡 '예스터데이'의 멜로디를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떠올렸고, 평범한 주부인 스테페니 마이어가 한 소녀와 아름다운 뱀파이어 이야기를 꿈을 바탕으로 쓴 책이 바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트와일라이트'라는 일화를 덧붙인다. 구글, 나이키 같은 회사는 낮잠이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감안해 사무실에 수면실을 운영한다.

부부가 잠잘 때 침대를 같이 쓰는 것이 좋을지, 따로 쓰는 것이 좋일지에 관한 문제 제기와 갓난아기와 부모가 모두 편하게 잠을 자는 방법 등은 무릎을 치게 한다. 2009년 사랑하는 사람과 침대를 함께 쓰는 것은 섹스에는 좋지만, 그 밖의 점에서는 좋지 않다는 과학적 주장이 제기됐다. 닐 스탠리는 다른 사람과 침대를 함께 쓰는 사람은 혼자 잘 때보다 밤중에 방해를 받을 가능성이 50%나 높다며 "잠은 이기적인 일이며, 누구도 여러분의 잠을 함께 나눌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부모와 갓난아기의 수면 부조화는 생물학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갓난아기는 하루에 필요한 수면 시간이 16~17시간이나 되고 잠을 여러 번 나눠 자는 반면 부모는 하루에 필요한 잠의 양이 아기의 절반에 그칠 뿐만 아니라 한 번 잠에 빠지면 깰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잠은 삶에서 단절된 순간이 아니라 인생이란 무엇이냐는 전체 퍼즐에서 빠져 있는 3분의 1"이라고 강조했다.

잠의 사생활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해나무

왜 남자와 여자 잠자는 방식이 다를까
나를 만드는 이기적인 일, 잠
저녁 잠… 새벽 잠… 몽유병… 기묘한 꿈나라
왜 남자와 여자 잠자는 방식이 다를까
나를 나답게 하는 비밀, 수면의 과학
잠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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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신약성경』 마태복음 19장 12절, 중국 무림 기서인 『규화보전(葵花寶典)』,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관통하는 주제일까. 거세(去勢)다. 거세는 치욕이다. 하지만 거세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마천(기원전 145년께~86년께)이 그랬다. 그는 군주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바른 말 하다 노여움을 샀다. ①죽음 ②막대한 벌금 ③궁형(宮刑) 중 택일하라고 했다. 사마천은 돈은 없었다. 당시 관념으로는 ①번이 오히려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③번을 선택했다. 『사기』를 완성하라는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를 거역할 수 없어서다.

치욕을 넘는 자가 불멸을 얻는다. 서양에는 헤로도토스(기원전 484년께~430년께), 동양에는 사마천이 있다. ‘역사의 아버지들’이다. 역사학의 양대 산맥이다. 케리 브라운 시드니대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실은 기고문에서 논란 많은 ‘공자학원’을 ‘사마천학원’으로 개명하자고 주장했다. 사마천은 공자에 버금가는 인물인 것이다. (또 『사기』는 사마천 보다 300년 전 사람인 공자에 대한 최고의 전기(傳記) 자료다.)

『사기』는 왜 읽어야 할까.
중국을 알기 위해서다.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해 중국 엘리트는 『사기』를 읽었다. 『사기』 없는 수준 높은 대화는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날씨·스포츠·음식 같은 부담 없는 주제로 대화를 시작한다. 관계의 수준을 높이려면 정치·종교·섹스에 대해 허물없이 생각을 나눠야 한다. 중간 단계로 비교적 안전한 담화 주제는 역사다. 역사는 ‘이 사람과 뭔가를 도모할 수 있을까’를 탐색해 볼 수 있는 기준이다.

인생 성패의 분기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사기』는 성공학의 백미다. 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도 이 책이 필요하다. 사마천은 이슬람 역사가 이븐 할둔(1332~1406)과 더불어 제국의 흥망을 다룬 역사가로 손꼽힌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진나라는 온갖 희생과 폭력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하지만 통일로 말미암아 천하가 바뀌었고 엄청난 일들이 성취됐다.” 한마디로 ‘천지인(天地人)의 이치가 모두 담긴 책’이다. 고대 중국의 동성애, 거부들 이야기도 나온다. 규제 철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나온다. 사마천은 이렇게 묻는다. “정부 지침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

4000페이지가 넘는 『사기』를 다 읽으면 좋다. 인생이 짧기에 간추려 읽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래서 『사기선집』이 출간됐다. 16년 동안 130편 『사기』를 완역하느라 사마천에 ‘빙의’ 되다시피 한 단국대 김원중 교수가 22편을 엄선했다. 누군가 “『사기선집』이 재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누군가 대답했다.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책이다.”

마태복음 19장 12절의 말씀은 이것이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가 성경 외에 딱 한 권 더 읽는다면? 『사기선집』이 결론이다.

사기 선집
사마천 지음, 김원중 편역/민음사

‘미생’들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
“왕후장상 씨가 따로 있나” 사마천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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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가 래리 딘은 수돗물조차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자랐지만, 가난을 극복하고 엄청난 부를 쌓아 억만장자가 됐다. 빈곤했던 어린 시절의 한을 풀 듯 그는 1992년 미국 애틀랜타에 조지아 주에서 가장 큰 집을 지었다. 면적이3000㎡, 즉 900평이 넘었고, 건축비만 2500만달러(약280억원), 연간 유지비만 150만달러(16억원)에 이르렀다. 건축가 빌 해리슨이 설계하고 ‘딘 가든스’로 명명된 이 건물에는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성당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3층 반 높이의 로툰다(그리스와 로마 신전에서 유래된 양식의 구조로 바닥이 원형이고 돔지붕을 얹은 건물이나 방)와 조개껍질 형태의 수영장, 정원들, 영국산 석회암으로 조각한 테이블과 유명화가가 그린 벽화로 장식된 13m높이의 천장 및 그랜드피아노와 카푸치노 바를 갖춘 피코크 룸을 갖추고 있었다. 모로코풍의 극장과 순금 싱크대, 하와이식 미술전시실, 이집트풍 고급객실, 오리엔탈 스위트를 포함한 15개의 침실, 13개의 벽난로, 1950년대식 식당으로 꾸민 게임룸, 공작석으로 꾸민 욕실, 벽에 내장한 수족관 등도 웅장한 대저택의 화려함을 더했다. 그러나 주인인 래리 딘과 부인 린다의 결혼생활은 집이 완공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파탄났고, 딘 가든스는 이혼 이듬해인 1994년에 매물로 처음 나왔다. 이 집은 무려 16년간이나 팔리지 않다가 프로듀서이자 배우인 타일러 페리에게 건축비와 유지비용에 한참 못 미치는 760만달러에 안겨졌다.

영국 건축사상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존 손은 런던의 링컨스 인 필즈 12~14번지 건물을 40년간 차례로 구입해 가족의 주 거주지와 박물관으로 꾸미고 세계 각국의 온갖 유물과 미술품 컬렉션으로 채워넣었다. 특히 아들의 영감과 교육을 위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방을 미술품과 골동품 컬렉션으로 장식했는데 정작 그의 두 아들은 아버지의 건축을 싫어했으며 부자간의 다툼을 끊임이 없었다. 두 아들은 오로지 “부모를 괴롭힐 요량으로” 적절치 못한 결혼을 했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 존 손은 아들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집과 부속물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유언을 남겼다.

19세기말 놀라운 성공을 거둔 미국 건축가 스탠퍼드 화이트는 뉴욕에 굉장한 궁전을 하나 설계했는데,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스페인-무어 양식 타워다. 여기에 있는 그의 아파트 한 채는 구하기 힘든 암갈색, 적갈색, 주홍색, 크롬 황색으로 칠해졌으며, 각종 태피스트리와 동물 가족, 각종 그림, 일본에서 가져온 물고기, 누드 동상이 있었다. 그는 엄청나고 기괴한 파티를 벌이기도 했는데, 이때 남성적인 활력, 즉 성욕과 정복욕으로 넘쳤던 그가 열 여섯 살의 한 소녀를 유혹 혹은 강간했던 일로 인해 후일 여인의 남편이 된 남자의 총에 죽었다. 살해 현장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옥상 레스토랑이었고, 총격 당시 ‘나는 백만 명의 여자를 사랑할 수 있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옵저버’ ‘가디언’ 등의 칼럼과 기사로 유명한 건축평론가 로완 무어의 저서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는 건축에 대한 탁월한 미학적ㆍ인문학적 통찰과 근ㆍ현대 건축사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지식, 권력자와 건축가의 야심 및 대단한 부자일 수 밖에 없는 의뢰인의 욕망이 얽힌 건축업계 난맥상에 대한 정보가 빼어나게 결합된 책이다. 여기에 근현대 세계 건축사 이면의 흥스캔들과 가십이 흥미진진하게 엮여 있다. 두바이의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로부터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 상파울루 미술관, 9ㆍ11 테러 전후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까지, 거부의 초호화 저택에서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침실을 거쳐 일본의 러브호텔과 포르투갈의 공동빨래터까지 이르는 ‘쾌도난마’의 지적 여정은 문외한인 독자라도 단번에 건축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래리 딘과 존 손, 스탠퍼드 화이트의 사례를 인용하는 것처럼 저자는 신랄하고 냉소적인 어조를 숨기지 않고, 진지하고 기품있는 비평 속에 녹여 냈다. 그것은 건축 자체가 끊임 없는 모순과 역설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충돌과 얽힘, 저자의 용어대로 한다면 ‘마찰’의 결과이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10가지 키워드로 건축을 읽어낸다. 돈, 가정, 상징, 섹스, 권력, 과시, 희망, 아름다움, 생활, 일상이 그것이다.

지난 2008년 각국으로부터 초청된 저널리스트들이 타고 두바이의 하버 타워 건축 현장을 둘러보는 취재 헬리콥터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먼저 두바이로 상징되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건축은 순수한 이성과 기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아울러 그 반대로 감정과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며 “두바이의 건축은 셰이크(두바이 왕, UAE 부통령)의 권력에 대한, 영광을 위한, 최고를 향한 야망에 의해 생겨났고, 이어 다른 사람들의 돈, 사치, 흥분에 대한 욕망을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요컨대 건축은 만드는 사람의 욕망에서 시작되고, 사용하고 체험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며, 사용자들의 욕망은 다시 건물을 바꾸고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바이의 광기어린 풍경이 보여주는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는 두바이의 건물들과 이탈리아 태생의 브라질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의 상파울로 집 ‘글라스 하우스’와 대조한다. 셰이크의 두바이가 욕망의 첨탑이고 권력의 드러냄이며 자연에 대한 지배력의 과시이고, 변화에 대한 불멸과 영원성의 우위를 상징한다면 리나 보 바르디의 글라스 하우스는 장소, 물질, 사람, 성장, 날씨, 우연, 시간의 흐름에 열린 공간이다.

이분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식의 대조는 책 전반을 관통한다. 래리 딘, 존 손 뿐 아니라 가정사에 문제가 많았던 여러 건축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의 전도사’로 입지를 굳혔다.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는 결혼생활에 실패했거나 가정을 버렸거나 가정사에 문제가 많았다. 그들은 전설적인 ‘단독주택’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 ‘집’은 추상화되고 물질화되고 예술작품이 됨으로써 생명을 잃은 반면, 노팅힐을 비롯한 웨스트엔드 지역의 집들은 하인들이 딸린 부유한 대가족의 집으로 설계됐지만 때로 연립주택으로 분할되기도 하고, 빈민을 위한 공동주택이 되기도 하고, 이민자와 보헤미안 학생들의 숙소가 되기도 했으며 일부는 유럽 최고 부촌이 됐다. 쪼개졌다 합쳐지고를 거듭하면서 공간은 변화하고 진화하며 생명을 이어갔다.

섹스, 가정, 권력, 과시, 상징은 ‘욕망’이다. 그리고 최후의 욕망은 ‘불멸’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불멸과 희망으로서의 건물의 형태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늘 돈이다. ‘라디오길’이라는 전통적인 거리를 뭉개고 뉴욕의 맥을 끊어놓았으나 후일 이 도시의 대명사가 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 그리고 9ㆍ11 후 오로지 미국의 명예와 아랍세계에 대한 복수심으로 서두른 그라운드 제로 및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재건 프로젝트는 그 증명이다. 미국민들의 다양한 요구, 그리고 권력과 기업들의 이해 때문에 서둘러 진행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재건 프로젝트는 디자인이 거듭 바뀌다, 결국은 테러 전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입대 계약을 맺었던 한 회사 때문에 계획이 완전이 수정됐다. 이로 인해 그라운드 제로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미국의 과잉된 명예심, 민간 기업들의 브랜드가 어울린 기괴한 모양새의 청사진을 갖게 됐으며, 결국은 거대한 공적 자금으로 민간 회사의 사무실 건축비용을 대는 상황을 맞았다.

저자는 말한다.

“그들(건축가)의 욕망은 건물은 만들어내고, 우리의 욕망은 그 안에 거주한다. 이런 욕망의 상호작용, 서로 맞추고 보완하고, 충돌하는 방식에는 힘의 게임이 있다. 그 게임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억압도 될 수 있고 해방도 될 수 있다.”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로완 무어 지음, 이재영 옮김/계단

건축은 물체가 아니다, 건축은 욕망이다
건축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돈ㆍ권력ㆍ섹스…욕망으로 읽은 건축…두바이,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러브호텔ㆍ빨래터까지
비를 피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은?
욕망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욕망을 낳고…
욕망이 쌓아올린 건축물…그안에 담긴 억압 또는 해방
누구를 위한 집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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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 이 곳을 끊기 위해 희생타를 던졌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사소취대'(捨小取大)는 바둑의 가장 중요한 명제다. 그러나 어렵다. 어느 것이 작고 어느 것이 큰가. 그걸 보는 눈이 없으면 거꾸로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만화 미생 6권-봉수-제1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5국 조훈현 9단 vs 녜웨이핑 9단 96수. 기보해설 박치문)

인기만화 '미생'(작가 윤태호)이 드라마 덕을 보면서 다시 주목받는다. 종합상사를 배경으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어찌 그렇게 속속들이 그렸는지 무릎을 치면서 본다는 입소문으로 떠들썩하다.

하지만 원작 미생의 '맛'은 스토리텔링에만 있는 게 아니다. 총 145수로 끝난 조훈현 9단과 녜웨이핑 9단의 대국의 두뇌게임. 이 대국의 기보(바둑이나 장기를 둔 내용의 기록)를 토대로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선택을 각 수에 빗대 풀어나간 '묘미'가 미생의 진짜 '맛'이다.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가 당시 대국 96수를 해석하며 인용한 '사소취대'는 '위기십결'(圍碁十訣) 중 다섯 번째 경구다. '위기십결'은 8세기 중엽 당나라 현종 때 바둑의 명수 왕적신이 펴낸 책. '바둑을 둘 때 명심해야 할 10가지 계명'을 일컫는다.

중국 고적 전문가 마수취안이 쓴 '위기십결'은 10가지 바둑의 명제와 그에 맞는 중국고전의 일화를 엮은 내용이다. 원제는 '인생정수진퇴지혜서'(人生政守進退智慧書). '나아가고 물러나는 인생의 지혜'라는 다소 진부한 제목이다.

'위기십결'의 첫 번째 경구는 '부득탐승'(不得貪勝: 이기려면 이기기를 탐하지 마라)이다.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그르치기 쉽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저자는 사례를 통해 말로써 이기려하지 말고 분노를 조절할 것을 주문한다. 두 번째는 '입계의완'(入界宜緩)이다. '경계에 들어갈 때는 완만하게 하라'는 의미로 바둑의 싸움이 중반으로 넘어갈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결정적 시기를 노리라는 의미다. 지나치면 넘치고 그로 인해 화를 입는 일화가 곁들어져 있다.

공격하기 전에 나부터 돌보라는 '공피고아'(攻彼顧我)나 상대가 강하면 나부터 돌보라는 '피강자보'(彼强自保)는 전투(삶)의 기본자세다. 반대로 적과 싸움에서 이기려면 나만이 아닌 상대를 잘 살피는 눈도 중요하다.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지 말고 신중히 행동하라)이나 '동수상응'(動須相應: 상대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여라)이 해당된다.

위험에 처하면 모름지기 버리라는 의미의 '봉위수기'(逢危須棄). 이런 경구에는 큰 이익과 작은 이익을 구별하는 안목, 위험에 처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한 일화들이 소개돼 있다. '세고취화'(勢孤取和: 세력이 약하면 조화를 도모하라)도 비슷한 자세다.

모든 '한 수'는 결과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비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한 결과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에 불과할 수 있다.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취하라는 의미의 '기자쟁선'(棄子爭先)은 '위기십결'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물경속'처럼 서로 상반되는 경구가 위기십결에 함께 포함돼 있음을 생각하면 '비책'은 매번 바뀐다.

선택을 언제 어떻게 취할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고 책임이다. '가장 뛰어난 묘수는 비책이 아닌 정석'일 수 있다.

위기십결
마수취안 지음, 이지은 옮김/도서출판 이다

위기에 처하면 모름지기 버려라
미생 '오과장'이 부족한건 入界宜緩
미생 '장그래'는 한 수를 놓기 전 이것을 먼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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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는 비록 천민이지만 역시 하늘이 낸 백성인데 재물로 취급하여 우마와 맞바꾸곤 합니다. 요즘에는 말 한 필로 노비 두세 명을 사고도 남으니 우마가 사람보다 귀중한 것입니까? 공자께서는 마구간이 불타자 ‘사람이 다쳤는가?’라고 물었을 뿐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으니, 곧 사람을 가축보다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노비 매매를 금하지 않으면 세상의 도리가 혼미해져 재앙을 불러올 것입니다.”(‘조선노비열전’ 중에서)

조선은 동방노예지국이었다? 무슨 말인가. 익히 아는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인데….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조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소 과장일지 모르지만 사회 신분제의 관점에서 조선이 노비사회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만 노비여도 대대손손 신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속담에 “개 꼬리 삼 년 묵혀도 황모 못 된다”는 말이 있다. 태생이 천하면 아무리 똑똑해도 별 수 없다는 의미다. 조선시대 노비의 처지를 빗댄 것으로 이보다 안타까운 속담은 없을 듯하다.

저자는 조선 양반들이 고조선의 ‘팔조금법’을 들어 노비제도 정당성을 주장했다고 본다. 고대 은나라 현자인 기자(箕子)가 사회정화와 문명 개조 차원에서 노비를 들여왔다는 것이다. ‘한서’에 수록된 팔조법금에 따르면 도둑질하다 잡힌 남자는 노(奴)가 되고 여자는 비(婢)가 되어야 했다. 또한 후대 부여에서는 살인자는 처형했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다.

물론 삼국시대에도 노비제도가 있었다. 고구려 미천왕은 현토군을 공격해 8000명을 사로잡았는데 이들이 노비가 되었을 것은 불문가지다. 신라는 포로노비, 인신매매, 세습노비가 뒤섞인 노예국가의 전형이었다. 고려도 사노비와 공노비를 구분했다. 전자의 경우 세습과 매매가 되었고 후자는 반역 등 정치적 사건과 연루되었을 때 신분이 바뀌었다.

조선 노비제도의 근간은 반상제(班常制)와 양천제(良賤制)의 이원적 구조였다. 법제적으로 양반과 상민의 반상제를 내세우면서 양인과 천민이라는 양천제를 병행했다. 이후 양인은 다시 양반·중인·상민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흥미로운 것은 양반·중인의 구분은 기득권층의 흥망성쇠와 연계되었다. 천민은 ‘인간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으로 규정되었는데 짐승처럼 거래되는 노비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이러한 강고한 신분제에서 대부분 노비들은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위정자들은 시스템에 따르는 이들에게는 반대급부를 확실하게 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기존 질서에 따르지 않는 ‘이단아’가 있기 마련. 제도의 허점이나 거센 저항을 통해 ‘팔자’를 바꾸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물론 성공한 이후에도 별종으로 취급되거나 비주류를 면하지 못했지만)

서인의 제갈량으로 통했던 송익필, 상례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던 유희경, 천재 시인 홍세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천민 출신에서 과학자로 발돋움한 장영실, 조선 최대 토목전문가 박자청, 침구술의 대가 의관 허임 등도 특별한 존재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노비제도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1729년(영조5) 경상도 울산 호적대장에는 양반호가 26.29%이던 것이 1867년(고종4년)에 65.48%로, 노비호는 13.93%에서 0.96%로 줄어들었다. 백성의 99%가 양인화되었다는 방증이다.

두 번의 큰 전쟁(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지배층의 권위가 크게 떨어졌고, 시장경제의 발달로 사회가 급속도로 변했다. 여기에 곡식을 헌납하면 면천을 허락하는 납속책의 시행과 국가 행정력이 미비로 신분세탁이 가능해진 탓이다. 결정적으로 노비제도가 철폐된 것은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긴 1894년(고종31년) 친일내각이 갑오객혁을 단행되면서였다.

저자는 조선의 멸망을 시대 탓이거나 외침으로 보지 않는다. “노비가 마소보다 싸구려로 팔릴 때가 조선의 전성기였다면 양반이 개잘량이라 조소받으며 곁불을 쬘 때 왕조는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혹자는 시대를 말하고 외침을 들먹어지만 조선의 비정상적인 신분제도는 그 자체로 멸망의 씨앗을 잔뜩 품고 있었다.”

조선노비열전
이상각 지음/유리창

조선은 '동방노예지국'이었다
동방예의지국 조선 … 사실은 동방노예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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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군함을 앞세운 미국에 의해 일본의 개항이 이뤄진 직후 1855년부터 1859년까지 일본 나가사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두 차례에 걸친 네덜란드 해군 교관단의 파견으로 서구 해군 체제가 일본에 실질적으로 전파됐던 것.

이로써 막부와 각 번(藩)들은 해군의 제도와 교육 내용, 조선(造船) 시설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후 메이지유신 직전까지 일본에선 '해군혁명'이 가속화됐다.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해군'은 최첨단의 근대성을 상징하는 존재였고, 발달한 과학 기술 및 근대국가 제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그 인력은 당대 최고 수준의 테크노크라트이기도 했다. '해군혁명' 이후 일본은 동아시아 해상의 제해권을 확보했고, 중국 · 러시아와 무역을 주도했으며 대(對)조선 사절 파견을 위한 해군력 동원을 구상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일본이 근대국가로 바뀌고 기존 동아시아의 힘의 균형이 깨져 전통적인 국가 관계가 '근대적 국제질서'로 변환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해군의 탄생과 근대일본
박영준 지음/그물

바다에서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
메이지유신의 원동력은 신지식 축적한 海軍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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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민정인데요, 예전에 통화한… 잘 모르시겠어요? 그럼 사진을 하나 보내드릴까요?’

갑자기 날아든 이 한 통의 문자메시지에 무려 40만 명이 확인 버튼을 눌렀다. 한 달 뒤, 버튼을 누른 사람들의 청구서에는 정보이용료 2990원이 찍혔고, 문자를 보낸 사기꾼은 이 메시지 하나로 10억 원이 넘는 거금을 챙겼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3000원 미만 소액 결제의 경우 인증번호가 필요 없다는 허점을 이용한 범죄였다.

주목할 것은 이 문자에 ‘낚인’ 사람 중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20년 동안 검찰 수사관으로 일해온 저자는 이를 가리켜 “남자들의 잠재된 욕망을 미끼로 삼은 속임수 사례”라고 말한다.

수많은 사기 범죄의 수법과 전략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지은이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속고 속아 넘어가는 관계의 심리작용을 분석하면 마치 ‘원칙’처럼 작용하는 3가지 심리 코드가 보인다는 것이다. 욕망과 신뢰, 불안이다.

첫째, 대박을 꿈꾸는 사람은 사기꾼의 가장 쉬운 타깃이다. 경품 이벤트에서 수억 원짜리 아파트 경품에 당첨됐다며 제세공과금 100만 원을 내라는 말을 고스란히 믿고 입금하는 사람이 그런 예다. 돈이 궁할수록 잘 속는다. 대출을 빙자한 보이스 피싱 사기에서도 사기꾼들은 과거에 한 번쯤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 당한 사람을 노렸다.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와의 로맨스를 꿈꾸는 여성에게는 ‘백마 탄 사기꾼’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둘째,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유대감·친근감을 이용해 풀어진 경계심을 파고드는 전략이다. 동네 주택가에 제품 홍보관을 차리고 외로운 노인이나 주부에게 사은품을 나눠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고가 제품을 강매하는 사기 범죄가 그런 예다. 이런 경우 노인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오히려 사기꾼이 아닌 수사관에게 역정을 낸다고 한다. 연락이 뜸한 자식들보다 판매업자에게 정을 더 느끼기 때문이다.

셋째, 사기꾼은 불안한 영혼을 좋아한다. 사람은 불안할 때 조상님 탓과 같은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에 더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속는지를 들춰 보이니 우리 시대의 한없이 허약한 민낯이 보인다. 대박 욕망에 휩쓸리고 외롭고 미래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는 모습이다. 수사 현장 이야기와 과학적인 연구 데이터를 곁들여 쓴 ‘한국사회 정신 보고서’가 진지하게 묻는다. 당신께선 정말 괜찮으시냐고.

잘 속는 사람의 심리코드
김영헌 지음/웅진서가

베테랑 수사관이 전하는 ‘사기꾼 감별법’
베테랑 檢수사관이 쓴 ‘속임수 손자병법’
사기꾼이 이용하는 세 가지 심리 욕망 · 신뢰 · 불안
사기꾼이 노리는 가장 손쉬운 타깃 … 혹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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