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8년 아무 죄 없는 체로키족들이 미국의 총검 앞에서 강제로 수용되는 것을 보았다. 이 불쌍한 인디언들은 담요도 없고 신발도 못 챙긴 채 집에서 쫓겨 나왔다. 강제 추방의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나는 하룻밤 사이 22명이 목숨을 잃는 것도 목격했다. 끔찍한 강제 이주는 도중에 4000개의 무덤을 만든 후 1839년 끝이 났다. 불한당이 저질렀든 제복 입은 군인이 행군 나팔소리 속에서 저질렀든 살인은 살인일 뿐이다. 따라서 누군가는 대답해야 한다. 추방 길에 죽어간 4000명의 무덤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설명해야 한다."
이 글은 미군 병사 버네트가 들려준 사연을 요약한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일등병 계급으로 체로키족이 강제 이주되는 눈물의 길을 따라갔던 경험을 80세 생일이 돼서야 자손들에게 털어놨다. 체로키족은 5개의 문명화된 인디언 부족 중 하나로, 백인의 폭력과 협박에 못 이겨 자신의 땅을 떠나 강제 이주되는 '눈물의 길'에 오른다. 이 길에서 추위와 굶주림, 전염병 등으로 4000명이 죽음을 맞았다.
김철 교수가 쓴 '인디언의 길'은 부제 그대로 '노스아메리카 인디언의 500년 수난사'를 담은 책이다. 백인 이주민들에 의해 자신의 땅을 빼앗기고, 강제 이주되면서 모진 세월을 견뎌온 아메리카의 원주민들. 하지만 절대 권력을 쥔 이주민들의 힘에 굴복해 불편한 진실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저자는 인디언의 역사를 '길 위의 역사'로 정의한다. 미 대륙 너른 땅을 먹지도, 입지도, 신지도 못하고 걸어간 노예로의 길, 패잔병의 길, 눈물의 길, 도피의 길이다. 인디언의 걷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원주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지난 1978년부터 지금까지 네 번이나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롱기스트 워크'를 벌였다. 저자는 그들이 걸어온 길을 최대한 그들의 시각에서 살펴본다. 그러면서 백인의 절대적인 승리로 끝난 인디언과의 땅뺏기 전쟁이 과연 정당했는지를 넌지시 묻는다.
그들의 처참한 이주길을 되짚어가다 보면 평화와 정의를 외치는 미 대륙 아래 일그러진 또 다른 역사가 보인다. 그러면서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안타까운 물음에 도달한다.
인디언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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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발명>(정광 지음)은 기존 한글 연구의 맹목적 정설을 뒤집는 연구서이다. 한글 제정의 동기와 목적, 발명에 참여한 인물과 제정 시기부터 한글이 과학적인 이유와 영향을 받은 문자에 이르기까지.
한글은 왜 만들었는가? '훈민정음'은 한자의 한어음을 표기하거나 우리 한자음을 수정해 백성에게 가르칠 때 필요한 '발음기호'로 창제된 것이지 백성을 가르치기 한 '새로운 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별히 강조된 것은 한자를 그대로 읽는 것이다. 아전인수 격이나 자기 멋대로 한자를 해석하지 말로 원래의 뜻대로 읽자는 것이다. 그래야 보다 정확한 사실을 밝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훈민정음 訓民正音'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바른 글자"로 해석한다든지 '정음 正音'을 "올바른 글자"로 보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音'은 발음이지 글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자에도 있지도 않은 뜻이나 발음으로 한자를 멋대로 읽는다면 어떻게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겠는가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한글은 누가 만들었는가? 성삼문, 신숙주 같은 젊은 학자의 도움도 있었지만, 한글 창제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불가의 학승들이었다. 훈민정음 <언해본>이 불교서적인 <월인석보>에 부재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글이 과학적인 진짜 이유는? 한글은 서양에서도 20세기가 되어서야 발달한 조음음성학과 구조음운론보다 500년이나 앞서 이 같은 언어학 이론을 동원해 문자를 제정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했으며 각 문자의 음가를 밝혔다.
한글은 과연 사상 유례없는 문자인가? 한글은 그보다 170여 년 전 원나라에서 만든 파스파 문자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티베트 서장문자, 근본적으로 고대 인도 음성학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한글은 새 왕조의 통치계급 물갈이에 이용되기도 했다. 한글 발명 이전에도 동아시아 민족들은 나라를 건국하면 새 문자를 제정하는 전통이 있었다. 새로 만든 문자로 관리 임용 시험을 치러 같은 세력의 인물들을 채용해 통치계급 물갈이를 추진했다. 한글도 마찬가지였다. 공표 2개월 후 이과 吏科와 취재取才에 출제, 인재를 선발하고 고려의 잔재를 척결하는 데 이용하였다.
한글의 발명 |
세종대왕은 한글을 '발명'하지 않았다
'기존 한글 연구'의 통념을 뒤집다
한글 탄생 숨은 주역은 세종대왕 둘째 딸?
세종대왕, 한자음의 표기 위한 발음기호로 한글 만들어
한글 제정 동기는 '새로운 문자' 아닌 '발음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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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2년 뒤인 1394년 수도를 개경(지금 개성)에서 한양(서울)으로 옮겼다.
이후 6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았다. 1965년 이후 지난 50년간 서울의 인구는 10배로 늘었다. 또 1975년부터 1995년까지 20년간 매년 50만명이 수도권으로 이주하면서 서울은 인구 1000만명이 밀집한 거대도시로 성장했다.
이런 서울을 이 책의 저자들은 정치지리학 관점에서 바라봤다. 정치지리학은 국가의 성쇠(盛衰)를 지리학적 시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책 제목에 나오는 메트로폴리스는 라틴어로 ‘수도, 대도시, 핵심’을 뜻하는 ‘메트로(metro)’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polis)’가 합쳐진 말로 대체로 인구가 100만명이 넘고, 전국적인 기반 위에서 여러 기능을 통합한 핵심도시를 말한다.
이 책은 일본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권력과 자본, 제도가 서울을 둘러싸고 어떻게 변했고, 이로 인해 서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추적한다. 그린벨트를 만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강남 테헤란로가 대표적인 사무지구로 자리를 잡았을까? 한국 고유의 행정기구인 동사무소는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들은 왜 아파트에 열광할까?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한다.
많은 사람은 그린벨트에 대해 무질서한 개발을 막고, 환경을 보호하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보가 사실일까? 거짓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그린벨트가 환경보호의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처음부터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경부고속도로야말로 ‘그린벨트의 어머니’였다. 정부는 1967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했지만, 공사비 마련이 고민이었다. 결국 고속도로 개발예정지 인근 땅주인들에게 기부받은 땅 일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체비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팔아야 할 땅도 많은 데다 체비지가 생각보다 잘 팔리지도 않아, 정부는 투자가 몰리는 다른 지역의 땅을 그린벨트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막았다. 그 대신 체비지 구매를 유도했다. 이것이 그린벨트 제도의 시작이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권력과 자본의 밀당, 서울을 만들다
서울에 그린벨트 왜 만들어졌나?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얼굴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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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인간’은 오에가 2006년 준쿠도(ジュンク堂)서점에서 ‘내 인생의 책’을 주제로 가진 여섯 차례 강연과 ‘읽는다는 것, 배운다는 것 그리고 경험’이라는 한 번의 강연(2011)을 옮긴 것으로 일본에선 2007년에 출간됐다. 광속의 시대에 8년이라는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 만들고도 남는다.
책에서 들려주는 지적장애를 지닌 장남 히카리(光)의 출생과 그로 인한 작품세계의 대전환, 친구이자 처남인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伊丹十三)의 자살,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교류 등은 오에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대부분 알 만한 이야기다. T S 엘리엇을 필사하고 도스토옙스키와 사르트르, 카뮈를 탐독하며 깊은 사상을 추구한 독서가로서의 면모도 잘 알려져 있다. 얼마 전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했으니 시간 속에 그의 사정도 변했고, 책에서 말한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됐다.
하지만 이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삶의 마지막 국면에 도달했다는 노작가가 삶을 돌아보며 풀어내는 책은 나에게 무엇이었고, 내 삶을 어떻게 이끌었고, 어떻게 나를 작가로 단련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감동적이다. 오히려 온갖 정보가 폭발하는 이 현란한 시대에 이제 더 이상 책으로 모든 것을 배운 오에 같은 ‘읽는 인간’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 아마도 그가 ‘읽는 인간’의 마지막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감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상실감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책은 처음 출간된 2007년보다 지금 더 극적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오에는 책 인생을 돌아보게 된 계기를 소설 ‘책이여 안녕!’으로 설명한다. “‘책이여 안녕!’은 나보코프의 대표작 ‘선물’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향방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독서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한 인간은 제가 읽어온 책에게도 마음을 다해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책과 이별하는, 그러면서 가능하면 여러분께 그 책을 건네는 의식을 치러 보고자 합니다.”
오에는 유년으로 돌아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책과 사람에 대한 기억을 풀어낸다. 그를 ‘읽는 인간’으로 만든 첫 책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시코쿠(四國) 깊은 산골의 아홉 살 소년은 어머니가 사준 두 권짜리 책을 읽고 또 읽으며 한 장면에 사로잡힌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여행하며 흑인 노예 짐에게 우정을 느낀 헉이 짐의 주인인 노부인에게 쓴 편지를 찢어버리는 장면이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고, 교회에서 남의 재산을 훔치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던 헉은 “그래 좋아. 나는 지옥에 가겠어(All right, then, I’ll go to hell)”라고 외친다. 오에는 그때 이후 줄곧 “좋다! 나는 지옥에 가겠다”를 삶의 원칙으로 삼아왔다고 한다. 원칙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세상이 뭐라고 하든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이렇게 책에 사로잡힌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평생 스승이 된 와타나베 가즈오(渡和郞)의 ‘프랑스 르네상스의 사람들’을 읽고 그가 교수로 있는 도쿄(東京)대 불문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대학교 3학년 방학 때 고향에서 사르트르의 ‘보들레르’를 읽고 첫 단편 ‘기묘한 일’을 쓴다. 스물여덟, 히카리가 기형으로 태어난 뒤 블레이크 시를 읽으며 고통과 슬픔을 버텨냈고, 아이를 끌어안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과정을 소설 ‘개인적 체험’에 담아낸다. 마흔여덟부터 쉰 살까지 3년 동안 단테의 ‘신곡’만 읽은 뒤 쉰 살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장편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에 쓴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에게 책은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원인이자 결과였고, 수단이자 목표였으며 과정이자 최종 목적지였다. 이 읽기와 쓰기의 여정은 50대에 만난 만년의 정신적 동지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우정,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년의 작업’이라는 화두로 이어진다.
“사이드가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 쓴 말년의 양식, 즉 후기 스타일은 생애 후반에 죽음이 멀지 않은 예술가가 지금껏 해온 작업이나 시대의 관습과는 전혀 다른, 기묘하기까지 한 작품과 삶의 방식으로 마지막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불확실한 자리에 서서 곤란을 극복하기 위해 한 번 더 힘을 내 도전하는 것. 후기 스타일로 작업하는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사이드의 착상에 강렬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중략) 사람들은 특이한 노인이 위험하고 기괴한 행동을 저지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저는 저야말로 바로 그 노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시대와 적극적으로 불화하겠다는 ‘말년의 양식’은 시간을 다시 거슬러가 아홉 살 오에가 외친 “좋다! 나는 지옥에 가겠다”로 이어진다. 삶을 관통한 완고한 철학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책을 읽으며 당도한 책에 대한 철학과 실용 가이드도 들려준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다시 쓰고 읽으며 평생 책의 세계에서 살면서도 자기 삶과 세상에 적극적으로 맞서 행동해온 ‘읽는 인간’이 책에 바치는 헌사이다.
읽는 인간 |
오에 겐자부로, 책은 번역서아닌 원문으로 맛봐야
< 서평 >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독서법, 색연필에 달렸다
오에 겐자부로의 독서법 "같은 책 두세 번씩 읽어라"
노벨상 오에의 ‘내 인생을 살게 해 준 책들’
아들의 장애, 친구의 자살, 노년의 위기… 인생 모든 순간에… 책이 있었다
[북리뷰] 읽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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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저술가이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며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위대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2013년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위대한 과학자≠수학을 잘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수학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총명한 학생들이 과학자 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을 우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대부분의 과학적 아이디어는 세상의 일부분을 그 자체로서 연구할 때 불쑥 떠오른다. 그것은 완전하고 잘 조직된 기존의 지식 체계에서 유추되어 점차 형태를 갖추어 간다. 그러다가 뭔가 새로운 것이 발견되면, 그 후속 단계에서 분석을 진행하기 위해 수학과 통계학이 필요하다. 만일 최초의 발견자가 이 단계를 어려워하면, 수학자나 통계학자를 협력자로 영입하면 된다.”
오랜 기간 물리학은 수학과 강력하게 결합함으로써 거대한 우주의 생성 과정과 그 최소 구성 입자의 성질까지 밝혀낼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지난 수백년 간 생명과학에서 수학은 기계적인 계산이나 통계 처리 등에 사용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주로 동물과 식물을 맨눈으로 관찰하고 분류하던 생물학이 생명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는 단계에 이른 오늘날까지도 수학과 별 연관이 없을까? 영국의 수학자이자 대중과학 저술가인 이언 스튜어트의 책 ‘생명의 수학’을 읽어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생생한 사례를 통해 현대 생물학에서 다양한 분야에 수학이 활용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새로운 수학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윈 시대 초기 진화론의 수립기에는 지질학이 필수였다. 1960년대 화학은 세포생물학에서 필수적이었다. 그러다가 컴퓨터과학이 관여하면서 생물정보학이 출현했다. 이제 물리학과 수학이 이 소용돌이에 발을 들이고 있다. 생물학의 새로운 혁명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은 수학과 생물학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수학은 생명체에 대한 자료를 분석할 뿐만 아니라 그 정보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다. 형태, 논리, 과정처럼 구조나 패턴이 있는 모든 것이 수학의 주제가 되며 패턴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불확실성이나 무작위조차도 그렇다.
저자는 강의 경험이 많은 생물학 선생님처럼 자상하고 익숙한 솜씨로 생물학의 발전을 개괄한다. 현대 생명과학의 지평이 수학을 통해 넓어질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사례들도 상세하게 보여준다. 미생물과 DNA, 진화, 식물수비학, 바이러스, 신경망, 얼룩말의 줄무늬와 수컷 도마뱀들의 경쟁, 단백질 접힘, 인구 증가, 외계 생명체에 이르는 다양한 생물학적 주제들을 확률론과 조합, 피보나치 수열, 4차원과 대칭이론, 게임이론과 위상수학, 카오스이론 등의 수학적 이론과 연결해 요령있게 전달한다.
과학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아는 재미, 깨우치는 재미에 푹 빠져 읽게 만드는 이언 스튜어트의 매력에 취할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함축적인 문장으로 ‘생명의 수학’을 마무리한다. “오늘날의 과학은 자신의 전공에만 사로잡힌 고립된 과학자 집단이 아닌 관심 분야가 다양하고 보완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이 필요하다.”
사족 한 마디. 이 책에 수식이나 방정식은 등장하지 않는다.
생명의 수학 |
수학적 사고를 통해 생명의 신비를 찾다
수학과 더불어 진행중인 생물학의 6번째 혁명
수학과 만나… 생물학 새로운 혁명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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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우리 삶에 있어 자연을 상품화하고 공동체 사회를 해체하고 전통문화를 파괴하도록 시장이라는 ‘악마의 맷돌’을 계속 돌아가게 한 과대 망상적 ‘효율지상주의자’입니다. 본인은 피고인을 ‘금융위기 방임죄’로 기소합니다.”
경제학자가 이론을 발표한 뒤 시대가 변하면서 그들의 이론에도 오류가 등장하고, 죽은 경제학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게 된다. 애덤 스미스는 금융위기 방임죄, 카를 마르크스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국가전복 음모죄’, ‘비교우위론’의 데이비드 리카도는 ‘부당 경쟁의 교사범’으로 기소된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계급 적대주의자’로, 게리 베커는 ‘결혼에 대한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불려가 자신들의 이론에 대한 논쟁을 치열하게 벌인다.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경제학자 10명을 법정에 세워 치열한 공방을 펼치는 법정 드라마다. 가상 인물인 장범 경제학 교수가 ‘오만과 편견’이란 주제의 모의법정 수업을 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루한 개인사나 그래프, 수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스미스, 마르크스, 조셉 슘페터 등 피고인뿐 아니라 유명한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과학자들이 등장해 경제학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흥미진진한 논쟁을 벌인다.
스미스의 재판에선 ‘리바이어던’에서 강력한 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한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등장한다. 홉스는 강력한 정부만이 이기적인 개인 간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며 스미스를 법정에 세운다. 두 사람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책임 소재가 각각 ‘시장 실패’(홉스)와 ‘국가 실패’(스미스)에 있다며 끊임없이 논쟁한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와 자유주의 대표 사상가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스미스를 옹호하고, 독일 역사학파의 거장 구스타프 슈몰러는 홉스를 돕는 증인으로 등장해 자유주의와 복지 등의 논쟁점에 살을 붙인다.
팽팽한 논쟁이 이어질수록 그들의 논리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스미스는 자신이 ‘시장 만능주의자’라는 오해에 대해서도 해명한다. 두 사람의 논쟁은 ‘시장이냐 국가냐’ 하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시장과 국가의 조화로운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혼의 경제학’을 주장한 베커는 행동경제학자들과 맞붙는다. 베커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애는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냉정하게 손익을 계산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저출산은 아이를 많이 낳는 효용보다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경제학의 제국주의’라며 베커를 기소한다. 비경제학적 분야에까지 경제학의 잣대를 들이대 사랑을 전제로 하는 신성한 결혼을 모독했다는 이유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주류 경제학의 기본 토대 자체가 잘못됐다”며 “인간은 감정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제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모의법정 수업의 열띤 토론을 따라가면 어느새 10명의 경제학자와 함께 인구, 식량, 세계화, 복지, 기업가정신, 재정과 통화정책 등 현대사회가 부닥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적자생존의 논리로만 경제학 이론을 펼치려 한 ‘오만함’은 없었는지, 감정의 논리에 치우쳐 ‘부자와 권력자는 이해와 동정의 능력이 없는 무정한 사람들’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문한다. 전작인 명작의 경제에서 세계문학 속 경제 원리와 정치·사회 현상을 문학적 감성으로 함께 풀어낸 저자는 이 책에서도 다양한 문학작품과 영화를 인용해 경제학 이론을 쉽게 풀어낸다.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
유죄냐 무죄냐… 결정은 당신의 몫
애덤 스미스는 금융위기 방임죄…마르크스는 허위사실 유포죄
애덤스미스·마르크스 당신들은 유죄입니다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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