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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열과 통제의 시대 -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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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과 통제의 시대 -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라는 이름으로 기획전을 하고 있다. 무료로 VOD를 볼 수 있다. 김지하가 '죽음'이라고 말하던 1974년 부터 1983년까지의 7편의 영화다.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이장호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이원세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배창호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개봉관에서 본 것은 하나도 없다. 대부분 재개봉 하였을때 보았던 영화이다. 위의 그림을 보면 단성사와 대한극장 그리고 하나는 어딘지 알 수가 없다. 70~80년대 영화를 싸구려라고 폄하하지만 낭만도 있었고 우리들 삶이 있다. 지금의 영화는 어떠한가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는가? 다시금 돌아보고 싶다면 한번 보기를 권한다.
하길종추모제를 보았으면...하였는데 아마도 힘들어 보인다.

한국영화 1.5세대인 이장호감독 등이 주도한 영상시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영상시대는 영화평론가 변인식과 영화감독 이장호, 하길종, 김호선, 이원세 등이 한국영화의 예술화라는 원대한 포부와 함께, 불황의 늪에 빠져 있던 1970년대의 한국영화계를 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결성한 동인체로서, 1975년 7월 부터 1978년 6월까지 약 3녀여의 기간 동안 벌인 청년영화 운동을 지칭한다.

1970~80년대 중반은 흔히 한국영화의 쇠퇴기, 침체기로 불리며, 소위 ‘저질’영화들이 양산되었던 시기로 평가받고 있다. 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 정부는 영화사 설립의 허가권과 취소권, 외화 수입 추천권을 쥐고 있었고, 각본 심의와 필름 검열이라는 강력한 통제 장치를 확보하여 강력한 관주도 영화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이로 인해 영화인들의 자율성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반공영화, 새마을영화와 같은 국책영화와 각종 코믹, 청춘, 고교, 멜로, 깡패영화와 같은 저급 오락영화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더욱이 TV의 전국적인 보급은 관객들로 하여금 한국영화로부터 발 돌리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유신체제와 마찬가지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80년대의 제5공화국은 성적 표현에 있어서는 규제를 완화하는 등 영화계에 상대적인 자율성을 부여하였지만, 영화내용의 검열은 70년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사회적 비판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결과 80년대 전반에 걸쳐 ‘에로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침체의 늪 속에서도, 훗날 한국영화를 기사회생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80대 후반 박광수, 장선우, 정지영 감독 등에 의한 ‘코리안 뉴웨이브’를 열게 할 수 있었던 주목할만한 기운이 분명 있었다.
70년대의 험난한 제작환경 속에서도 ‘한국영화의 예술화’라는 순수 영화 예술의 본질을 회복하려 노력하였고, 현실에 대하여 비판하고, 새로운 영상언어를 시도하고자 한 영상시대 동인인 이장호, 하길종, 김호선, 이원세 감독과 이들의 비판정신을 계승한 80년대 초중반의 이장호, 배창호 감독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영상시대’ 감독들의 성과는 침체된 70~80년대 영화계에 단비 역할을 하였으나, 70년대의 전반적인 침체기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영화운동’으로 발전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주장했던 만큼의 획기적인 미학적 성과를 영화를 통해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김호선 감독과 같은 경우는 호스티스 멜로의 유행을 촉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한계와 모순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문제의식은 이장호, 배창호 등에 의해 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로 이어지면서 한국영화계에 중요한 파장을 남겼고, 분명 평가받을 만 하다.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 이장호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이원세<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배창호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배창호의 <고래사냥>(1984) 은 이들 감독들의 비판의식을 잘 나타내는 동시에, 상업적으로 성공한 주요 대표작들이다.

이들 작품들을 감상하며 검열과 통제의 시대에, 결코 꺼지지 않았던 희망의 불씨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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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상 유례없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70년대 청년 영화의 서막을 알린 작품은 이장호의 <별들의고향>이었다.
여주인공 경아는 한 남자를 사랑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되는데, 첫사랑에 버림받고 중절 수술 후 헤어진다. 그 후 아내를 잃은 부유한 남자와 다시 결혼하게 되지만, 임신했던 과거를 들켜 다시 헤어지게 된다. 호스티스로 전락하여 살던 중, 경아는 자신이 나가던 술집에서 대학 미술 강사이자 화가인 문오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알코올 중독에다 남자들에게 짓밟혀 상처투성이인 그녀와 적당히 로맨틱하고 이지적인 문오의 사랑은 유지될 수 없었고, 결국 경아는 문오를 떠난다. 시간이 지난 후, 경아의 남자로부터 얘기를 듣고 경아를 찾아간 문오는 술집에서 만신창이가 된 경아를 만나고, 함께 밤을 지내게 된다. 경아는 그와 함께 있음에 감격하지만 이별을 이미 예견하고 있고, 문오는 경아가 잠든 틈을 타 자신의 돈을 머리맡에 두고 사라진다. 경아는 우중중한 대폿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눈밭으로 나가서는 약을 먹고 죽는다. 문오는 화장한 그녀의 재를 강가에 뿌려준다.
이렇듯 <별들의 고향>은 산업 사회 속에서 성이 소비되는 모습에 남자들의 무정한 인간성을 결부시킴으로서 1970년대의 혼란스런 경제상황과 사회상을 드러내었다. 기존의 청춘영화나 멜로영화와는 다른 신선한 감각이 뭔가 새로움을 갈구하던 젊은이들의 욕구에 맞아 떨어졌으며, 기존의 윤리관이나 영화 형식을 뛰어넘는 파격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이외 빠른 템포감, 재기넘친 대화, 눈에 띄는 색채감각 등이 주목받았다.



하길종은 '영상시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1970년대 당시 한국의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그의 대표작 <바보들의 행진>(1975)은 억압적이고 암울한 유신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번민과 저항의식, 상실감을 잘 표현한 걸작이다.
1970년대 대학가에는 휴교령이 자주 내려졌고, 학생들은 전망없는 미래에 암담하다. 철학과 병태는 이러한 사회적인 현실과는 거리가 먼 철학과 학생이다. 하지만 그도 사회현실의 첫 번째 관문인 군대 입영통지서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는다. 같은 과 친구 영철은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판정을 받는다. 병태는 미팅을 통해 대범한 여대생 영자를 만나나, 영자는 곧 별 볼일 없는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간다던 영철은 바다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병태는 군대를 간다. 영자는 입영열차 차장에서 병태에게 마지막 인사와 함께 입맞춤을 한다.
하길종은 청년들의 번민과 저항의식을 ‘바보들’이란 우화로 그려내면서, 현재의 사회를 풍자하였다. 장발단속 등의 에피소드에서 부자유한 사회를 꼬집었으며, 잦은 휴교령, 입영 장면 등을 통해 유신 시대의 억압을 나타내었다. 또한 대학생들의 풍속도를 경쾌한 리듬으로 그려내면서, 청춘의 상실감과 비애를 효과적으로 녹여내었다.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는 당시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에 직접 다가선 대표적인 작품이다. 평범했던 '영자'라는 여자의 불행과 절망을 통해, 무계획적인 급속한 경제개발과 권위주위적 독재체제의 막강한 권력, 일방적인 도시화에 따른 빈부의 격차 등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영화가 그 같은 현실에 다가서야 한다는 것을 실증한 영화이기도 하다.
군복무를 마치고 목욕탕 때밀이를 하는 창수는 경찰서 보호실에서 우연히 영자를 만난다. 3년전, 철공소 직공이었던 창수는 사장집의 가정부인 영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다시 만날 약속을 남기고 월남을 갔었다. 그동안 영자는 사장 아들에게 강간당하고 오히려 쫓겨난다. 봉제기술을 배우지만, 월급이 너무 적어 빠아걸도 해보고 그것도 힘들어, 버스 안내양이 되나, 그만 사고로 팔을 잃고 만다. 영자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목숨을 건지고 결국 창녀로 전락한다. 영자는 창수를 떠나고, 창수는 그녀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창수는 불행했던 그녀가 다리가 하나 없는 남자를 만나 아이를 키우며 잘 사는 것을 보고, 영자의 행복을 빈다.
김호선은 이 작품에서 자칫 멜로드라마적 상투성에 그칠 수도 있던 것을 뛰어넘어, 개발 독재시기의 급격한 산업화의 그늘을 응시하는 시선을 내장함으로써, 사회비판적인 힘을 획득하였다. 영자의 잘린 팔이 건물 위로 솟구치는 숏 등을 생략적인 몽타주로 처리한 장면은 감정적인 몰입을 방해함으로써 그러한 비판적 성격을 더욱 강화한다.



이장호의 재기작인 <바람불어 좋은날>은 1980년대 한국영화의 새 기운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영화이다. 사회의 파행적인 경제 발전과 토지개발 열풍 을 서술 구조 속의 간접적인 배경으로 삼으면서, 빈부의 갈등, 도시와 농촌의 갈등 그리고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80년대 영화는 더 이상의 현실의 삶과 동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덕배, 춘식, 길남은 서울의 변두리 개발지역에서 중국집, 이발소, 여관에서 일을 하며 서로 위로하면서 생활한다. 덕배는 구로공단의 여직공 춘순과 상류사회의 명희라는 여자를 사이에 두고 고민한다. 그러나 곧 자신이 명희의 노리갯감에 불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 관 종업원 길남은 믿고 사랑했던 미용사 진옥에게 돈을 떼이고 무일푼으로 입대하게 된다. 춘식은 사모하던 면도사 미스유가 졸부 김회장에게 몸을 파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 김 회장을 죽이고 감옥에 가게된다. 이들 뿐 아니라 미스유, 김회장, 늙고 병든 남편을 두고 중국집 조씨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는 주인집 여자 등 이들 주위의 다양한 인물들 역시 생활에 찌들리고 상처입은 존재들로 그려진다.
멜로드라마적 취향과 거친 표현이 군데군데 들어있기는 해도, 수많은 사연을 냉정하게 응시하는 <바람불어 좋은날>의 리얼리즘은 평가받을만 했고, 작은 디테일에의 배려도 괜찮은 영화다.



이원세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철거지역의 땅 투기꾼들에 맞서 싸우는 난장이 일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개발독재의 비애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원세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은 철거지역의 땅 투기꾼들에 맞서 싸우는 난장이 일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개발 독재의 비애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난장이 김불이는 아내와 염전일을 하는 큰 아들 영수, 권투도장에 다니며 가난의 울분을 삼키는 둘째아들 영호, 딸 영희와 행복동에서 사는데, 바다의 오염으로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보상책으로 준 주택분양권을 받게 되지만, 부동산 투기업자 박우철의 손에 분양권이 넘어가게 된다. 박우철은 영희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영희는 이에 넘어가지만, 행복동의 낡은 가옥들이 무너진 새벽, 박우철의 금고에서 가족의 꿈인 주택분양권을 찾아, 행복동으로 달려온다. 그러나 아버지인 난장이 김불이는 죽고 없다.
이 영화는 원래 금지조치 당한 김민기씨가 음악을 맡아서 공장지대의 삶을 그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민기씨의 음악은 일체 사용불가 판정을 받았고, 이중검열로 각본은 공중분해당했다. 공장지대는 개작에 개작을 거듭하여 염전지대로 바뀌었고, 등장인물의 일부는 직업이 바뀌고, 일부는 성공까지 한다. 완성된 영화는 여기저기 잘려나가고, 대사 역시 후시녹음 과정에서 뜯어 고쳐졌다. 원래 의도대로만 찍었다면 아마도 한국영화 사상 가장 중요한 걸작 중에 한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장호의 조감독을 거친 배창호 감독은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데뷔하여 호평을 받았고, 이장호와 더불어 뉴웨이브를 이끌 인물로 기대를 모았 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이장호의 사회비판적 시각이 입김처럼 묻어나는 작품이다.
빈촌에 검은장갑이라 불리는 젊은 아낙네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신분을 알 수 없는 태섭에게 개가하여 산다. 태섭은 살인을 한 사실을 숨긴 채 공소시효가 되기를 숨죽여 기다리며 검은장갑에게 생활을 의존하고 있다. 어느날 검은장갑에게 교도소를 나와 택시운전사가 된 전남편 주석이 나타나고, 검은장갑, 주석, 태섭의 긴장관계가 이어진다. 태섭으로 인해 남편을 잃은 순박한 과부가 나타나면서 태섭의 비밀이 밝혀지고, 과부의 인간애와 용서로 인하여 태섭은 변한다. 검은장갑과 주석의 아들은 주석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배창호는 이 영화에서 꼬방동네의 암울한 풍경과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8) 아내를 되찾으려는 사내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내,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의 갈등의 줄거리는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석과도 같지만, 기존의 멜로드라마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삶과 사랑에 대한 직시, 치밀하고 긴장감 있는 사건전개, 시니컬한 해학성, 대담한 생략을 통한 빠르고 리듬감 있는 연출 등이 어우러진 덕분일 것이다.



이장호의 또 다른 대표작 <바보선언>(1983)은 강한 실험성과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보통 사회비판을 담은 영화들이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만 들어지는데 비해 이 작품은 철저하게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과 직관력에 의존해서 연출되었다. 고식적인 영화적 관습을 극복하고, 점프컷, 몽타주, 빨리 찍기, 비정상적인 앵글과 편집, 화면과 일치되지 않는 사운드 등 최대한 실험적인 장치를 동원하였고, 영화 서사의 시공간을 파괴하거나 비관습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서사적 느낌을 불러일으켰다.9) 특히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찍어나간 감각은 압권이다.
소매치기, 구걸 생활을 해온 절름발이 동철은 어느날 가짜 여대생 혜영을 납치하려다 육덕을 만난다. 동철과 육덕은 혜영을 납치하려다가 그녀가 창녀임을 알게된다. 동철과 육덕은 훔쳐먹는 등 겨우 연명하다가, 혜영을 만나 창녀촌에서 그녀의 심부름을 하며 그런대로 배를 채운다. 그러나 이마저도 손님과 싸우는 바람에 쫓겨나게 되고, 혜영도 이들을 따른다. 바닷가 휴양지에서 세 사람은 한 때 즐거움을 만끽하고, 동철은 혜영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휴양지에서 그들은 혜영과 헤어지게 되고, 그 후 서울의 요정에서 웨이터를 하던 동철과 육덕은 혜영을 만나지만 손님들의 심한 술 세례에 의해 혜영은 죽고 만다. 그녀를 곱게 단장시켜 묻으러 끌고 가는데, 슬픈 우리 가락이 흐른다.
이장호는 창녀와 절름발이, 뚱보 등 사회 소외계층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고, 스스로 자살하는 영화감독을 연기하면서 군사정권하의 검열과 자유표현에 대한 억압에 대하여 저돌적으로 저항하였다. 동철과 혜영이 꿈꾸는 판타지 장면, 뚱보가 피서지에서 인간 샌드백으로 돈버는 장면 등의 우화적 표현을 통해 천민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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