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 정부라 많은 야유를 듣던 참여정부가 MB정권을 만드는데 제일 많은 기여를 하였다. 수혜를 온 몸에 입은 MB정권이 출범한지도 벌써(?)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인수위때부터 수 많은 개혁(?)안을 내놓아 적지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는데, 그 이후는 부적절한 대응으로 혼란만 더 가중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여정부를 아마츄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의문이다.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가 참여정부와 MB정부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를 내놓고 있다.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말하듯 잃어버린 10년도 되찾은 정권도 아닌 '합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제 말만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어떤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출발점을 제시하는 것이 제 목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3쪽)"며 우리에게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또한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을 가지기를 원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듯 딴지로 치부하기 위한 사전 초석이다. 비판하는 사람에게 대안 제시의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만일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비판만 한다고 치부하면 입을 막으려는 물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246쪽) 이 부분은 내 의견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의료사고 발생시 의사의 과실을 환자가 증명하여야지만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대운하, 종부세(종합부동산세), 교육정책(삼불정책) 그리고 영어 공교육에 관하여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던 것에 대하여 '정신차려'라 말한다. 또한 모르고 지나치고 있는 것이 정책에 대한 일방적인 잘못된 홍보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그 홍보를 지정이라 알고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교육정책에 관해서는 대학의 이기주의가 일부 부유층과 어울려 일어난 현상이다. 훌륭하게 교육할 능력도 없으면서 입학할 시점에서 좀 더 준비가 잘된 학생을 뽑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은 보기 흉할 따름이다. ... 3불정책 타령만 하고 있는 한 우리 대학의 후진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202쪽)

MB정부가 사회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문제점이 점차 더 나올 것이다, 참여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더 나빠지랴?'라는 심정이 많다. 그것이 선거로 방영된 것이다. 하지만 더 나빠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도 보다 더 크게 나빠질 수 있다. (10쪽) 이러한 예상이나 예측을 무시하고 정책을 오락가락하는 꼬라지란 참으로 어이가 없는 행동이다. 사람이란 늘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이나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은 안된다. 한번 들러선 길 끝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정책을 편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저자도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배워나가는 법이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 무언가 배울 수 있으려면 실패를 인정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고 성공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현 정부는 결코 성공작이라 말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정부와 정부를 편드는 사람은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324쪽)

이 책을 읽다보니 김창완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왜 그 시가 갑자기 생각나는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야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에 읽고 기억하던 시다. 아마도 이 책이 제목 '쿠오바디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정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요?
풍뎅이의 기도 - 김창완

하느님, 종아리를 모두 꺾으시옵고
하느님, 모가지를 비트시옵고
하느님, 뙤약볕 아래 발랑 뒤집어 놓으시옵고
하느님, 전능의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시는 하느님,
왼쪽으로 돌까요 오른쪽으로 돌까요?

그러면, 정말 그러면
버려진 이 땅도 짊어지고 날아갈 수 있을까요?

알라딘 서평단 설문


덧붙임_
알라딘서평단에서 받은 책.

덧붙임_둘
나(저자)는 본디 우측에 가까운 성향의 소유자 였는데 어느날 사회가 오른쪽으로 많이 흘러 상대적으로 왼쪽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 이 말이 사회적 우경화되어 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이야기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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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데굴대굴 2009/06/01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책은 다들 평이 좋군요. 일단 살 목록에 넣어는 둬야겠습니다.

01_

안정효 선생이 새로운 소설을 발표한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재미있는 내용이다. 안정효 선생에 대하여 막연하게 알고 아니 모르고 있던 내용이 너무 많다. 인터뷰(? 나는 대담이라고 하고 싶다.)는 지나친 가감만 하지않는다면 사람을 알고 느끼기에 좋은 형태다.

생애 최대의 작품 탈고 앞둔 소설가 안정효이란 제목으로 인터뷰를 하였지만 '최대'라는 말은 아직 이르다. 아직 구상중인 작품이 많을것을 인터뷰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 모두는 가객 조용필의 말처럼 '죽을때까지 현역'이다.

덧붙임_

항우는 너무 빨리 포기하여 잔수에 강한 유방에게 천하를 주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후일이 있다.

02_

[정리] 마인드맵과 컨셉맵 : 한가지만으로는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없다. 상호 보안재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코비와 GTD를 적절히 사용하여야 하듯이.

03_

한국에 한국 경제학자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현실을 말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학계의 중심에 있거나 이런 내용이 연구나 교육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경제학 연구와 교육이 한국 경제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경제뿐만 아니라 경제학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사람이 더욱 적다. - 홍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시사인의 컬럼에서 거론된 "사람들은 묻는다, 왜 경제학은 그렇게 무력하냐고 - 경제학을 위한 변명"에서 복거일은 "경제학이 시원스러운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경제 활동과 같은 사회적 현상이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또한 "주류 경제학은 정태적 이론이어서, 빠르게 움직이는 경제를 단기적으로 포착할 따름"이라고 한다. '주류'경제학의 태생적 한계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 내가 그리 이해한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컬럼의 "한국 경제학계의 경우,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이나 위기 탈출구를 제시해 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한국 경제의 현안이 주류 학계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더욱 더 설득력이 있다.

'한국경제의 진단' 보다는 그들의 '자리보존'이 더 시급한 것이다.

04_

그린비의 포스팅 덕분에 먼지를 털 책들이 자꾸 생기고 있다. 파블로 네루다를 보았다. 기억 저편에 있었다. 아니 언제 알았느냐고 다시금 나에게 반문하는 듯 하다.

김남주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서 네루다를 처음 만났으니 어언 20년이 지났습니다. 또 한동안 잊고있던 詩를 여기서 보게되는군요.
집에 가면 먼지를 털고 보아야 할 책이 두 권이 늘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그리고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덧붙임_ 이진경님의 책도 블로그 덕분이 먼지를 털었습니다. 지금의 활자와 달라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익숙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과거는 언제나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조금만 보면 서글퍼짐을 느끼게 하니까요..

현재의 익숙함이 좋지만 항상 반가운 것은 아니다.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쉬움으로 남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덧붙임_

로쟈님의 리뷰를 보면 네루다에 관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 글보다 중요한 것은 시집을 읽는 것이다. 이해가 가지않아도 시집 한장을 읽는 것이 리뷰 열 편을 보는 것보다 낫다. 각기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05_

시사인의 검은 대륙에 버려진 한국의 핏줄은 우리의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또 가른 기사 나는 한국인의 성노예였다를 보면 허탈한 생각이 든다. 전세계적에 한국계 사생아에게 그들이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인에 따르면 수도 몬로비아에 한국계 사생아가 10여 명 있고, 나라 전체를 통틀어도 20명이 채 안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 까닭은 한국인의 무책임한 처신 때문이다. 가족 상담가로 활동하는 베네딕트 리브스 씨(30)의 말이다. “30년간 광산산업을 했던 독일인들은 사생아 수백 명을 양산했지만, 철수할 때 대부분 본국으로 데려갔다. 미국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은 정말 무책임하다. 자식을 두고 도망간 후에는, 교육비는커녕 생활비조차 부치지 않는다.”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코리아에 대한 증오를 갖지않게 하는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06_

유인촌 장관의 욕설이 자격 논란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장관은 사과했다. 시사인의 고재열기자의 글 내가 유인촌 장관에게 들었던 욕설에서 처럼 "유 장관은 깜냥이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문화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등 야당에서 유 장관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욕설 파문만 가지고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좀 부족한 감이 있다. 장관으로서 그가 보여준 문화행정의 결과를 놓고 사퇴를 주장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니가 공식적인 그것도 신성한(? 신성한지는 모를일이다. 그밥에 그 나물인것을..) 국회에서 욕을 했으니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같이 억지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격'과 '역량'을 가지고 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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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장하준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컬럼을 보았다.

"착한 경제학자는 있을지 몰라도 착한 경제학은 없다."라고 하면서 장하준교수에게는 문제가 없고 집행하는 무능한(?) 정부와 정치꾼들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시장과 세계화를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계의 시각에서 장 교수가 비주류인 건 사실이다. 빈부격차 등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주류는 교육과 직업훈련 일자리를 통한 해결을 찾는 반면, 비주류는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반대를 주장한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에선 시장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학자가 많아야 15%여서 ‘이단(heterodox)’으로 불린다.
장하준교수가 주장하는 것들이 주류가 아니다. 주류의 흐름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내세우고 비주류는 이에 반대한다.

포퓰리즘의 큰 특징은 정권이 선거에 의해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데 있다. 경제에선 시장은 물론 재정적자를 무시한 분배정책으로 나타나고, 정치에선 헌법과 사법제도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무시한 비자유적 민주주의로 군림한다. 민주주의가 자유의 제도화를 뜻한다면 그 제도를 박살내고 정권의 자유만 추구하는 게 포퓰리즘이다.

시장이 경제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재정건전성 정책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의 요구이니 ‘세입을 초과한 지출’도 해야 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지난날 남미를 말아먹은 포퓰리즘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손에서 중요한 결정을 빼앗아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들의 손에 넘기는 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다.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좋을까? 아직 참여정부의 임기가 몇 개월 남아있지만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 할 것이다. 장하준교수의 주장을 참여정부의 일관된 내용과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같은 칼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도구가 될 수 있고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칼이 아니라 그것을 휘둘러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정부 개입을 강조한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죄가 없다. 그러나 무능한 정부를 모신 죄 없는 국민은 피해가 막심하다. 만일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이 당선돼 장 교수 주장대로 보호주의를 채택한다면 당장 우리나라가 피해를 볼 판이다. 착한 경제학자는 있을지 몰라도 착한 경제학은 없다. 되는 경제학(주류)과 안 되는 경제학(비주류),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정치꾼이 있을 뿐이다.
글을 쓴 김순덕 부국장은 '되는 경제학(주류)와 안 되는 경제학(비주류)'라고 평하였지만 고한 평가라고 보인다. 신자유주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를 비판한 장하준교수의 보호주의도 어떤 면에서는 타당한 논리가 된다. 장하준교수의 이론을 참여정부에서 적용하고 실패(?)하였기 때문에 이런 논조가 나온지 모르지만 무리가 잇어 보인다.

어찌되었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출처 : 장하준과 ‘착한 경제학자들’(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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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올해 노벨상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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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매스킨 교수언제부터인가 경제학에 복잡한 수학공식과 물리학공식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용어는 철지난 좌파 경제학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용어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된 연구는 그 이후 정치와 경제의 상호관계를 파헤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 시장가설에 맞는 시장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자기들만이 아는 암호를 동원하여 이론으로 구현해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온 듯하다. 이런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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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foog 2007/10/17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하준 교수는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 전체를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 여하튼 명쾌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점잔빼지 않고 솔직한 그의 화법이 맘에 듭니다.

    • BlogIcon 한방블르스 2007/10/17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책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여 말을 할 수 없지만 비주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를 인정하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