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가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6번이 되었다. 현재의 지지율로는 당선권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도 힘들다. 1월에 쓴 글이니 시의적으로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보신당과 탈당파들과 그가 말하는 '부르주아 정객들'이 함께 진보를 말하는 통합진보당이 총선으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박노자가 이 시점에 이글을 썼다면 똑같은 견지에서 작성했을까?
박노자의 글을 (1월에) 읽었다. "민족주의적 등의 오류들을 당연 '오류'라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좌파에게는 독선이 아닌 이해와 관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이다. 박노자가 이 시점에 관용이 부족한 자신을 반성하는 연유가 무엇일까?
그의 말처럼 "좌파가 떠난 민노당이 유시민 류의 부르주아 정객들의 들러리가 돼버린 안타까운 노릇"임을 잘 알고 있는 시점이다. "그래도 좌파는 같은 당 안에서 남았다면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을 견제하여 그들의 이와 같은 치명적인 오류들을 예방할 수라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에는 회의적이다. 부르조아 정객의 들러리가 된 것은 그들뿐이 아니라 탈당한 지도부도 있다. 그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소련의 패망을 "사회주의의 패망"으로 간주한 것은 분명 근거없는 패배주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패배주의는 특히 1990년대에 국내 좌파를 황폐화시키고, "포스트 바람" 등 각종의 기형적인 현상들을 일으킨 것입니다. 역사를 긴 안목으로 봐야 할 좌파는, 왜 그렇게도 근시안적이었을까요?
그보다는 "진보신당의 독자적인 강화, 진정한 계급 정당으로서의 대중화 등이 유일한 선택"이다. "민족주의자/자주파들과 보다 진지하게 논쟁해서, 적어도 그들을 인간적으로라도 이해"해준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박노자의 후회'가 후회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과거에 장기적 시각과 이해력, 관용이 부족했던 데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같은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을 것"임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과거 그의 인터뷰를 보면 지금 그의 반성이 내제된 것이라는 생각을 떨출 수 없다.
덧_
원문을 아래 옮겨놓는다.
더불어 2003년 인터뷰 기사도 옮겨놓는다.
덧_둘
이 글을 발행 예약으로 해놓았는데 관악을구의 예비경선 사태(?)가 발생했다. 조급증 때문일까. 순수 통진당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커다란 악재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른 선거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보인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기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 진보당을 기준으로 하여도 50년, 좌파 정당으로는 20년정도이다. 혁명을 꾀하지 않고 합법으로는 긴 안목으로 봐야한다. 박노자가 말한 부르주아 정객들의 들러리가 되는 치명적인 오류가 되지않기를 바랄뿐이다.
나는 반성한다 - 박노자 (레디앙, 2012년 01월 07일)
"분당 긍정한 것 책망…자주파 대한 이해, 관용 부족"
어제 돌연히 독감에 걸린 뒤에 몇시간 동안 책을 읽을 힘조차 갖지 못해 그저 아이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아플 때에 반성을 하게 되는 법칙이 있는가요? 인지상정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저 본인이 아프면 과연 남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는가를 곧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 반성 관련으로는 여기에서 쓰기가 곤란하지만, 대(對)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어제의 제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자본주의가 힘을 잃어가는 오늘날에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의 좌파가 자본주의적 시장지상주의가 추락한 그 만큼의 "세 확장", 그 만큼의 성장을 하지 못한 이유들이 객관적인 현실에도 있지만, 또 동시에 분명히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반성을 치열하게 해야 좌파라고 누구에게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반성이 있어야 좌파는 좌파답게 대중화될 수 있을 것이고, 반성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나가는 만큼 결국 폐쇄적인 섹트로 전락할 위험은 큽니다. 반성의 주제들을 거칠게나마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1.
소련의 망국은 분명히 역사 희대의 비극이었습니다. 1989년과 1997년 사이에 러시아만 해도 1천명 당 사망률이 9명에서 16명으로 폭등해, 1980년대에 비해 약 3백만 명이 "추가적으로" 죽은 셈이었습니다. 영양실조와 알콜, 마약 중독, 각종 범죄, 체첸 독립운동에 대한 무력진압과 학살 등등으로, 고통스럽게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민중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 극소수의 관료와 관제 재벌, 정상배들이 구소련의 자원과 공장을 "사유화"(약탈)한 것이고, 기생적이고 극도로 폭력적, 반민중적 "신흥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한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 비해서야, 후기의 소련도 거의 낙원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과연 소련이나 동구라파 국가들의 망국/체제변환은 "사회주의 사망 신고"이었을까요? 푸틴의 마피아 자본주의에 비해서야 당연히 민중으로서 살 만한 사회이었지만, 스탈린 시절의 보수화와 혁명가들의 숙청, 관료화를 거친 그 사회는 이미 거의 이렇다 할만한 혁명성을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혁명성을 그대로 어느 정도 여전히 보유하는 쿠바와 같은 "현실 사회주의" 사회들은, 소련과 달리 망하지도 않았으며 망할 일도 없습니다. 스탈린 시기 이후의 소련의 사회적 체질로 봐서는, 고급 관료들이 약탈적 자본가로 변신해 "사유화"에 나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간의 문제이었으며, 이는 "사회주의 패망"이라기보다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궁극적인 "한 주기의 완주"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혁명 이전의 자본에 대한 사유제가 부활됐으니 "원점"으로 다시 온 셈이죠. 그런데 일국화된 뒤에 고립화, 관료화돼, 결국 변질되어 이렇게 자기부정된 러시아 혁명은 "원점"으로 귀환될 수 있어도, 이는 사회주의라는 세계적 이념의 패망을 의미하지 않으며, 의미할 수도 없습니다.
소련의 패망을 "사회주의의 패망"으로 간주한 것은 분명 근거없는 패배주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패배주의는 특히 1990년대에 국내 좌파를 황폐화시키고, "포스트 바람" 등 각종의 기형적인 현상들을 일으킨 것입니다. 역사를 긴 안목으로 봐야 할 좌파는, 왜 그렇게도 근시안적이었을까요?
2.
소련이나 북조선은 분명히 우리가 꿈꾸는 "사회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사회들입니다. 혁명의 점차적인 제도화, 관료화 과정도 있었지만, 아무리 혁명적 열정이 남는다 해도, 미제나 서유럽, 일본, 남한과의 같은 굴지의 야수들로부터 방어하느라고 국내총생산 20~25% 정도를 무의미한 "국방"에 써야 하는, 각종의 무역 제한으로 말미암아 최신의 기술에의 접근이 많이 차단돼 있는 (준)주변부 사회들은, 사람들이 조금씩만 일하고도 각자의 자유로운 자기 실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산주의적 낙토로 고립된 채 발전되기가 아주 힘듭니다.
그 엄청난 자원과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소련마저도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에게 약간의 여유만 있는 상대적 빈곤을 선사해야 했으며, 자원은 훨씬 없는데다가 국방비 비중이 훨씬 더 높고 고립이 훨씬 더 심각한 북조선은 비극적이게도 식량문제마저도 안정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일국적 현상이 아닌 세계적 현상이어야 하는 것이고, 지금 핵심부가 보유하는 기술력 이상의 생산력 수준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 즉 매일매일 사람을 파김치로 만드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각자가 하루에 2~3시간씩 사회적 노동을 한 뒤에 시를 쓰거나 산책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랑을 나누는 등 말 그대로 모두들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담보할 개인의 자기실현에 몰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되라고, 야수나 언제 간섭할지 모를 강대국에 둘러쌓인 동북아의 최빈국에 요구하는 건 분명 무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소련이나 북조선의 현실은 우리 이상과 많이 다르더라도, 그 현실을 여러 가지 이유로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운 여러 분파들의 진보주의자들에 대해서는 과연 그렇게까지 배타적으로 대할 필요는 있었을까요?
2008년 이전의 구 민노당의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은 북조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계급문제를 등한시한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었지만, 좌파는 정말 그들과의 타협의 여지도 없이 선을 그어야만 했을까요? 분당은 불가피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좌파가 떠난 민노당이 유시민 류의 부르주아 정객들의 들러리가 돼버린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부르주아 정객들의 손을 머뭇거림없이 잡아주는 것은 분명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의 엄청난 오판이고, 그들의 어떤 근본적인 판단 오류를 보여주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좌파는 같은 당 안에서 남았다면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을 견제하여 그들의 이와 같은 치명적인 오류들을 예방할 수라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미 과거의 일이라 소용없는 이야기지만, 그 때에 분당을 긍정한 제 자신의 언행을 저는 지금 책망하고 싶습니다. 잔류 민노당이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치의 늪으로 빠지고 만 지금으로서야 진보신당의 독자적인 강화, 진정한 계급 정당으로서의 대중화 등이 유일한 선택이지만, 4년 전의 일은 많은 면에서 후회스럽게 느껴집니다.
3.
산업화된 세계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오래동안 일하고, 비정규직들이 가장 많은 나라에서는, 절실한 계급문제 대신에 다소 관념화돼 있는 "민족" 문제를 앞세우고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히 좌파가 할 일은 아닙니다.
노동자들에게 지옥뿐인 야수 남한의 주도로 "통일"이 되는 것은 잘못하면 북조선 민중들에게 대재앙이 될 위험성이 높습니다. 결국 남한과의 평화 공존 체제 속에서 북조선이 독립적으로 발전돼 가는 가운데 지금 중국이나 월남 민중이 파업 등을 통해서 하듯이 북조선 민중들도 그 통치층들에게 사회적 정의 구현을 요구해가면서 그 자율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은 아마도 민중 본위로 사고되어지는 "통일" 문제의 당분간의 최선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좌우간, 좌파의 "통일" 논의 기조에는 추상적인 "민족"이 아닌 구체적인 노동계급의 권리와 복지, 독립적 역량 강화가 깔려 있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자주파의 "통일지상주의" 등의 오류에 위와 같이 반대해도, 미제에 의해서 군사보호령이 되고 만 나라에서 지식인이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어떤 민족주의적 울분을 십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군사적 점령에다가 요즘 매판적 성격이 아주 강한 남한의 지배엘리트들이 영어를 모든 사회적 진출, 신분상승의 기분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사실 많은 이들에게 그저 민족적 모욕감만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좌파가 반대해야 할 것은 영어를 쓰는 나라들의 민중이 아니고 남한을 비롯한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자들이지만, 좌우간 한반도의 식민지적 과거까지 생각하면 계급 문제들이 "민족적으로" 오해될 소지들은 여기에서는 많습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자/자주파들과 보다 진지하게 논쟁해서, 적어도 그들을 인간적으로라도 이해해주어야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하지 못한 저는, 지금 이 부분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합니다.
민족주의적 등의 오류들을 당연 "오류"라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좌파에게는 독선이 아닌 이해와 관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속단 대신에 장기적인 역사적 비전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장기적 시각과 이해력, 관용이 부족했던 데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같은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을 것을 인제 자신에게 서약할 따름입니다.
*
박노자 "광화문에 전태일 동상이 세워졌으면" - 2003.01.09(목) 한겨레신문 인터뷰 (지승호)
1월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후문 근처 커피숍에서 박노자 교수를 만났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는 박노자 교수는 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해 각종 강연 등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시간을 내주었다.박노자 교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 노무현 당선자에 대한 생각, 양심적 병역거부, 북핵 문제, 이순신 동상, 최근 진중권씨의 발언 등에 대한 생각들을 솔직하게 전해주었다.
지승호(이하 지) - '정신적으로는 이미 민주노동당원'이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당선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노자(이하 박) - 한국을 하느님이 구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지금이 비상사태중에 아주 큰 비상사태구요. 미국의 극우들은 전쟁으로 내부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때문에 지금 당장은 바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북한을 새로운 먹이로 삼아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유지하려 할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한국에 극우 정권이 등장할 경우 한국은 엄청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한국이 전쟁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미국의 침략에 가담하게 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적어도 온건보수 노무현이 이긴다는 것은 나라를 구하는 거죠. 저는 물론 정신적으로 사회주의자지만, 우린 아직까지는 유럽같이 편안하고. 마음대로 사회주의할 수 있는 그런 환경에 있지 못합니다. 아직 극우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고, 이제는 한나라당이 지리멸렬될 것 같아 다행이지만, 이번 같은 경우 노무현이 되었다는 것이 나라운명을 결정지은 것 같아요.
지 -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노무현이 민주당 쪽에서는 뛰어난 리더이지만, 이회창을 이길만한 카리스마는 아닌 것 같다"고 하셨는데, 노무현 당선자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 - 지금은 상황이 여러 가지로 바뀐 겁니다. 한쪽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고, 한쪽으로는 여중생 사건과 관련해서 대중들이 미국에 대한 의식을 현실화시키고 있죠. 대중들의 정신이나 의식속에서는 이제 미국이라는 존재가 한반도의 남반부를 점령한 존재라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미국을 극복해야한다는 현실을 다들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다들이라고 하긴 그렇고, 상당수라고 해야죠.(웃음) 상당수가 그렇게 된 것 같고, 이런 상황에서는 노무현의 깃발이 전쟁을 막고자 하는, 한반도의 정상적인 발전을 보장하고자하는 여러 세력들을 결합할 수 있는 깃발이 될 수는 있죠. 노무현 본인의 카리스마와는 무관하게 여러 건전한 온건한 보수, 온건 진보세력들을 결합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은 이기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거죠. 교조적으로 보면 안될 것 같아요. 만약에 노무현이 이기게 된 2~3% 표 중의 상당 부분이 민노당 지지자들의 표였을 것입니다. 만약에 민노당의 지지자들이 그런 정치적 지혜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어떤 위험한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 -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웃음)
박 - 만약 극우들이 되었다면 공작정치에 시달리게 되었을텐데, 지금 적어도 국정원의 공작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진보정당에 있어서도 좋은 일이죠.
지 -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둘인 것은 사치다'라고 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사회당 입장에서는 섭섭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박 - 홍세화 선생께서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제가 볼때는 둘이 합당하는게 마땅한 이치인 것 같은데, 합당하지 못하는 것은 이념적인 이유보다는 80년대로 소급되는 여러 운동권 계열들의 개인적 관계와 누적된 여러 가지 관계에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진보정치의 미숙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의를 위해서 80년대까지 올라가는 누적된 감정을 청산했으면 좋겠는데. 아닙니까?(웃음)
지 - 그 부분도 동의합니다.(웃음) 그런게 있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에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자기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단지 DJ와 같이 있는 것이 싫어서'라는 이유로 한나라당에 있지 않았습니까? 정치란게 개인적 관계보다는 대의를 위해 해야하는 것이 원칙일 것 같은데요.
박 - 한국정치는 너무 오랫동안 보스들이 가신들을 지배해왔지 않습니까? 한쪽에서는 부동산이나 재산 가진 사람들이 지역 토호가 되고, 너무 개인적 관계 위주로 돌아가다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지 - 정치라는게 대의보다는 가까운데서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하구요.
박 - 민노당 당원 사이에서도 사회당과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이념 차이가 있지만, 그렇게 까지 큰 것은 아니거든요. 민노당 같은 경우 스펙트럼이 다양해요. 그 안에 사회당 정도되는 사람들도 있구요. 합당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관계문제죠.
지 - 아직 한국에서는 정당 가입 안하셨죠? 노르웨이에서는 '사회주의 좌익당'에 가입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박 -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민노당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대의에는 전부 동의하는데, 내부적으로 민주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전 이부분에 대해서는 조사한 것도 없고, 연구한 것도 없어 잘 모르겠는데요. 비쳐지는 이미지는 여러 가지 정파들이 존재하고, 그 정파 사이의 역학관계가 아주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막은 잘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비춰지는 면이 있습니다.
지 - 월드컵때 파시즘의 혐의를 많이 두셨습니다. '노동자들로서의 계급의식이 없는 점과 얼마 안 있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의 시위에 냉소적이었던 점' 등을 지적하셨는데, 월드컵으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경계해야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 - 요즘 정몽준씨가 보이는 행태를 보면 월드컵에 있어서는 정치적 쇼에 가까웠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정몽준 개인을 위한 쇼이기도 했고, 국가의 홍보차원의 쇼이기도 했다는 것은 지금 보면 뻔히 보이는 얘긴데, 그것으로 자신을 얻었다고 크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 대 국가 대항전으로서의 축구가 허위적이라는 것은 이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4강, 2강, 우승해봐야 그 국가의 내부사정하고는 관계없는 거고, 그 당시에 우승한 나라는 브라질이라고 기억하는데, 우승한 브라질도 내부적인 문제가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나라입니다. 수천만명이 기아상태에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룰라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놓은게, 2만명의 기아자를 위해 긴급한 식량을 조달해주겠다는 공약을 내놨는데, 그런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거기서 축구는 계급문제를 호도하는 선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빈민들에게 사회적 신분상승의 가능성을 보이면서 그들의 계급적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역할도 하죠. 그러니까 브라질 사정을 보면 축구가 자신감을 심어준다기 보다는 여러 가지 허위의식을 심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라질 사회주의자들도 그렇게 보거든요. 한국 같은 경우에도 결코 한국의 국내사정이 진정으로 좋아졌다고 보는데서 오는 진정한 자신감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월드컵이 있다고 해서 한국 내부의 갈등관계, 모순관계, 예컨대 비정규직 노동자라든가 외국인 노동자 문제라든가 그런 문제들이 추호도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문제들이 악화될데로 악화되어 가고 있어요. 그런데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웃음)
지 - 사실 이쪽이 옳다고 해서, 반대쪽이 꼭 틀린 것은 아니거든요. 딴지 총수 김어준은 월드컵과 관련해서 '박노자의 말이 옳지만,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즐기고 있는데 가서 훈계할 필요는 없었다. 박노자의 얘기를 듣다보면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고 했는데요. 그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근데 그 당시에 재미있는 것은 학생이나 진보정당에서는 월드컵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거리를 두고 있었던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아요. 경희대에서 학생들 대자보를 보니까 '월드컵이라는 게 국가와 기업이 만든 쇼'라고 비난하는 것이 있었구요. 사회당, 민노당 학생 모임들이 월드컵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요. 제가 얘기한 부분이 그런 분들을 위해 얘기한 측면도 있죠. 그런 분들이 분명히 있었고, 그만큼 한국 사회가 성숙되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가 즐기고 있다'는 말이 폭력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외국인 노동자 같은 경우 뭘 즐기겠습니까?(웃음)
지 - 주위를 환기시킨다는 측면에서 필요할 것 같아서 저도 월드컵을 비난하다가 엄청난 공격을 받았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월드컵때 내가 백인이라 내가 한 발언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박 - 그것은 제가 어느 대학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어느 학생이 질문을 한 겁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는 것이 당신이 백인에다 유럽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든 적이 없었냐?'구요. 제가 그 질문 들어보니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면이 있지도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글쎄 그런 면이 한국사회도 미국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고, 지금이야말로 한국사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신감을 얻는 것 같아요. 월드컵때보다는.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대해서도(사실 동맹관계가 되어 본적도 없고, 예속관계였지만) 비판적인 시각이 사회에 빨리 퍼져가고 있고, 대미관계 재정립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미국에 대한 현실적으로 복잡한 비판적인 의식이 대중화된 이 시점에서야말로 백인들에 대한 사대주의라든가 그런 것이 많이 근절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망발적인 행동을 많이 하니까 더 이상 패배주의해봐야 한국으로서는 유리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사대주의적인 노선이 뭘 의미하느냐 하면 미국의 대북한, 다음 목표가 될 수 있는 대중국 공격노선에 동의한다고 하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한국으로서는 자멸이고, 사대주의가 어떤 건지 사람들이 깨닫는 것 같아요. 지금 같아서는 엄청난 자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지 - 지난 번에 쓰신 글 중에 '지금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정책을 쓰고 있는데, 현재의 미국 경제상황으로 볼 때 엄청난 사치다'라고 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박 - 그럼요. 엄청난 사치죠. 미국의 경제는 지금 갈수록 적자가 누적이 되고, 무역 적자는 이미 천문학적인 고지에 이르고 있고, 미국이 실제로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요. 수출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어요. 미국이 아직까지 경기가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외국자금이 많이 들어오고, 달러가 국제화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자금은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는 거구요. 그런 상황에서 전쟁이 미국 경제를 당분간 살릴 수도 있죠. 전쟁특수라는 것이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에 전쟁이 장기화되면 비용이 클 것이고, 그 비용이 지금도 허덕거리고 있는 미국경제를 파산직전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미국 분석가들의 이야기죠. 그 이야기는 임마누엘 왈레스타인 같은 지식인이 얘기하고 있는데, 미국이 결국에는 제국에 대한 비용이 과다하게 사용되어서 결국은 파산되고, 세계적으로 헤게모니의 상당부분을 상실하게 되고, 10~15년 동안 미국 헤게모니의 상당부분이 상실될 것이라고 그렇게 내다보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상당히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구요. 더 이상 한국이 사대주의로 매달릴 필요가 없는거죠. 이제 한국이 그런 자각이 있고, 대미관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죠. 사실 한국으로서는 가장 잘 관리해야될 관계는 북한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대중, 대일 관계죠. 그것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미국이 빠져나가다보면 안보문제를 지역적으로 해결해야할 것 같고, 제일 중요한 건 중국과 일본이 평화공존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지 - 월드컵때 스님이 승리를 기원하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우리에게는 승병같은 전통이 있는데요.
박 - 그것은 전통이 아닙니다. 승병은 국가가 시켜서 한 것이고, 전혀 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호국불교라는건 일제 시대때 만들어진 용어구요. 호국불교라는 건 조선시대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죠. 스님들이 나라 백성을 위해서 기도한다, 스님들이 중생을 위해 기도한다는 그런 개념이었죠. 지금 한국 불교의 위기가 깊습니다. 한국불교의 위기는 불교가 근대화되기 전에 자본화가 되어 버린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합리적인 시민사회를 위한 근대적인 종교가 되지는 못했는데, 자본화가 많이 되어 있어요. 결국에는 승려의 질이 많이 떨어지고, 사회인식이 안된 상태에서 종교의식이 너무 엷어졌어요. 축구같은 놀이에 열광하는 걸 보니 신앙심의 문제예요.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겁니다. 송광사같은 데는 TV가 없어요. 공부하는 절이면 그런 짓 안하죠. 절마다 달라요.
지 - 쾌도난담에서 '중도 많고, 목사도 많고 하지만, 종교가 없다. 소련보다 더 무신론적이다. 현실을 거의 절대시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그런데 한국처럼 교회가 많은 나라가 없거든요. 그렇게 종교에 집착하는 것은 어떤 보상심리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박 - 보상심리라기 보다는 여러 가지 사회학적 설명이 있는데, 하나는 집단결집력이 한국사회만큼 중요한 곳이 없어요. 모든 사회들이 어느 정도 그렇지만, 한국사회 같은 경우 공식적인 시스템이 잘 안돌아가요. 어떤 일을 해야할 때 공식적으로 못할 일이 많아요. 취직도 아는 사람 채용하면 편하고, 결혼도 연애결혼이라지만 거의 소개에 의존하잖아요.
한국 사회 같은 경우 공식적 시스템이 안돌아가는만큼 개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해지죠. 이것은 세계사회학에서 얘기하는건데,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는 종교적 색채가 있는 네트워크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미국에 이민가면 다 기독교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커뮤니티 센터가 교회니까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한인들이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고, 수만리 떨어진 그곳에서 네트워크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해요. 한국같은 경우에는 생존문제까지는 아니지만, 교회들이 사실은 시골 장터들에 모여 우정을 다짐하는 그런 역할을 대신하는 거죠. 말하자면 동네 회관인 셈입니다.(웃음) 어떤 면에서는 도움받을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는 동네 회관인데, 어떻게 보면 종교 공부하고, 착한 말씀들으면 좋죠.
지 - 한국의 민족주의가 위로부터 강요된 '자본주의적 국가주의'라고 하셨는데,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런 측면이 드러났다고 보십니까?
박 - 이번 월드컵에서도 국가는 사이비 민족주의적인 상징체계를 가동시킴으로서 대중들을 총동원하는데 성공했고, 대중들이 총동원된다는 느낌도 없이 동원된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성공이라고 봅니다. 대중들이 동원이 아닌 자발적인 참여라고 생각했는데, 동원의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사실은 소수예요. 우리가 몇강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담론이 한국 민족주의 상징체계에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어요. 백년전부터 이미 한국 민족주의의 목표가 국가의 부강이었고, 지금 북한에서 하는 얘기만 봐도 부강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고, 부강이라는 것이 한국 민족주의의 최초의 목표였고, 최고의 목표였죠. 그래서 우리나라가 몇강이 된다는 것은
민족주의적 상징력을 동원한거죠. 국가는 그런 상징체계를 잘 동원했고, 민중들이 참여로 착각될만한 그런 동원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죠. 국가뿐만 아니고 국가와 힘을 합친 보수신문, 방송, 학교도 상당히 역할을 한 셈이죠. 교수들이 신문에 글쓰고, 교수의 권위를 걸고 월드컵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는 역설을 하는 글을 쓴 것은 교수 권위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큰 몫을 한거죠. 먹물들이 책임의식도 없이 한 것이죠.
지 -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를 그때 월드컵때 있었던 광장의 경험이 이것으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있거든요.
박 - 물론 젊은 사람들의 경우 습관이 되어서 모이는 것이 무섭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기본적인 심리는 상당히 달랐다고 봐요. 이번 여중생 사건 같은 경우 보편적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감정을 자극한 점이 분명히 있었고, 생명존중 가치에 대한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 면도 있었고, 한미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월드컵 같은 것은 '우리가 이겨야 한다'는 거고, 88 올림픽과 비교해도 달라진 것이 없어요. 하지만 이번 경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를 점령하고 있고, 사실 우리가 아직 미국 밑에 있는 것이고, 미국이 우리에 대해서 하등의 배려가 없고,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거죠.
그리고 그 깨달음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의식이 뭐냐하면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한다면 우리까지 희생시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미국의 정치에 있어서는 우리의 가치는 하나도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거죠. 이번 같은 경우에는 한국 역사상 아주 획기적인 분수령이예요. 여중생 사건은.
지 - 노당선자가 지난해말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자제를 요구한 바 있고, 조중동은 '것봐라. 당선자도 자제하라고 하지 않느냐'고 하고 있는데요.
박 - 그것은 100% 외교적으로 대통령이 해야할 말이고, 자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해야할 말이 있고, 대중들이 해야할 일이 따로 있는거죠. 아직까지 한미관계가 동맹관계인 이상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어요. 대중들은 꼭 따를 필요 없고, 따를 대중들도 아닌 것 같아요. 한국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만큼 성숙해졌다고 봐야겠죠.
지 - 사실 저도 그런 말을 듣고도 '말을 뒤집냐?'하는 식의 극단적인 비판을 안할만큼 시민사회가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박 - 이미 한국에도 그런 의식이 있는거죠.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해야할 말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대통령이 시민들보고 반미데모를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웃음)
지 - 촛불시위를 한국의 민족주의와도 어느 정도 연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박 - 물론 그런건 한국 사람들이 민족주의적인 세뇌를 많이 당하잖아요. 학교에서나, 신문을 읽을때나 '우리 민족'에 대한 언설들이 풍부하잖아요. 그런 세뇌를 많이 당하니까 그런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있고, 작동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촛불 시위는 제가 아까 말한 것처럼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에 대한 열망과 관련이 있고, 그 가치를 미국이 깔아뭉갰다는 억울함이 분명히 있는 것이고, 미국이 도덕적이지 못하고, 비윤리적이다, 미국이 그런 가치를 저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민족주의라기 보다는 유교적인 가치 같아요. 아주 한국적인 도덕주의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죄지은 사람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 미국같은 나라에 우리민족의 생존을 더 이상 맡길 수 없다, 우리의 생명을 무시한다, 미국이 맘대로 우리의 생명을 저당잡고 있다, 더 이상 우리 안보를 미국에 맡길 수 없다고 자각을 한 것 같아요. 그것은 민족주의가 아니고, 현실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라고 매도할 성질은 전혀 아닌 것 같고, 이번 시위는 달랐어요. 31일날 직접 시위에 참여해봤거든요. 가보니까 '이라크 공격 반대'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규탄하는 사람도 많았고, 평화.반전운동의 성격도 강했습니다. 그것을 민족주의로만 볼 수 없을 것 같구요. 이미 한국의 수준이 달라졌습니다.
지 - 장갑차 사건에 대해 어느 정신과 의사는 '그 분노 안에는 우리 민족의 순결한 딸을 잃었다는 가부장적인 분노'도 한켠에 깔려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박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위 참석한 사람 보면 실제로 중고생이 많았잖아요. 중고생 같은 경우 '친구를 잃었다, 우리 가족을 잃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죽었다, 미순이와 효선이를 자기와 동일시하면서 어쩌면 나도 미군 탱크에 깔려 죽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미군이 우리 나라 사람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생긴건데, 제가 보기에는 그게 민족주의가 아니고, 올바른 현실인식이라고 봐요. 미군의 주둔이 오히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지 - 그런 우려도 일정 부분 필요할 수 있지만, 지나친 해석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박 - 한국인들이 지나친 민족주의의 세뇌를 받았고, 민족주의의 주입을 많이 받았고, 가부장적인 제도가 아직까지 존재하니까 그런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크게 봐서 그 시위의 의미는 다른데 있다고 봐요. 그런 부분 있을 수 있는데, 역사적 의미는 다른데 있지 않나 싶어요.
지 - 유시민씨가 "박노자는 기막하게 밝은 눈과 예민한 후각을 가진 지식인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명색이 비판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내가 40년을 넘게 살면서 두리뭉술하게 인식하고 있는 문제들을 불과 10년을 산 박노자가 너무나 분명하게 끄집어 낸다는 사실이다"라고 했는데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나 본인에게 특별한 능력이 어떤 부분이 있다고 보십니까?
박 - 특별한 능력이라기 보다는 일정 부분 저한테 도움이 된 것은 소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국가주의라든가 국가주의 주입체제라든가 폭력적인 군사주의가 민중을 순치시키는 방식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소련에서 목격을 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여기도 똑같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거고, 그런 비교 대상이 있으니까 그런 경험들을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한거고, 제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지 -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러면서.
박 - 그런 것은 재미있지만, 비결이라고 할 것 까지는
지 - 가끔 조선일보가 진보진영에게 그런 호통을 많이 치지 않습니까? '니들은 왜 북한 인권에는 신경안쓰면서.. 여중생 죽음에는 분노하면서'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요.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후(한숨) 뭐라고 합니까?(웃음) 서해교전같은 경우에는 아직 정확한 전말을 모르는 거죠. 북한이 하필이면 도발을 했다면 왜 도발을 했는지, 거기에는 지난번 서해교전의 복수심이 있었던 것 같은데, 최초의 서해교전때 한국이 북한에 대해서 조금더 많은 이해를 보여줬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북한 군부의 문제도 있는 것 같구. 그런데 북한 인권에 왜 신경을 안 쓰느냐? 문제는 북한에서는 아직까지도 정확한 인권 개념이 성립이 안된 상태입니다. 북한이 한국 초기 민족주의 모습을 많이 반영한 그런 식의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는 인권 개념이 전혀 안되어 있고, 국권이죠. 북한은 극단적인 국권주의 사회예요. 북한이 인권개념이 없는 거고, 일반인들도 인권의식이 희박한게 아니라 거의 없어요. 엘리트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 사회 외부로부터 인권을 비판하는 것이 그 사회 내부에 도움이 될른지 조금 약간 걱정이 되는거죠.
우리가 북한 인권을 위해서 걱정하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고 북한 사람들의 의식이 달라질건지. 그리고 실제로는 북한 정권을 외부적으로 비판을 하면 북한 정권의 경우 극단적으로 예민한 민족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고, 외부적인 비판을 비난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외부에 의존하는 사회도 아니고, 상당히 닫혀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외부의 비난이 결국에는 북한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지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합니다. 북한을 비판해봐야 북한이 더 닫힌 사회가 되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고, 북한에 대한 비판이 그 희생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의심이 갑니다. 다만 희생자들이 많은 걸 알고 있고, 도와주고는 싶은데, 다만 조선일보처럼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조선일보의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들이는건 그쪽 입장에서는 오해도 아니고, 올바른 현실인식이라고 생각해요. 북한 같은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거든요. 너무 복잡하게 꼬인 문제예요. 북한이라는 사회는 너무나 오랫동안 외부를 적대시해왔기 때문에 적대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하는 그런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북한 인권 상태가 지옥적인건 사실입니다.
지 - 어떻게 보면 당연한건데, 우리 내부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면서 평화공존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상대방을 서서히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옳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쪽 상황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정작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박 - 북한 같은 경우에는 어떤 게 가능하느냐 하면 만약에 그쪽 지배체제와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면 양심수를 돈주고 빼온다든가 양심수 석방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런 것 할려면 신뢰가 많이 쌓여야 하고, 신뢰가 쌓이려면 조선일보처럼 하면 안되는 거죠. 북한을 힘으로 밀어붙여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신뢰가 쌓여야 하는거죠. 신뢰가 쌓이려면 비공식적인 채널이 원활하게 움직여야 돼요. 북한의 실력자를 비공식적으로 만나서 설득을 할 필요도 있구요. 실제 대북외교 해본 사람은 그런 검토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고도의 외교죠.
지 - '혈세라는 말은 있는데, 혈급이란 말은 없다'라고 하셨는데, 언어라는 것이 어느 정도 그 사람들의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육체노동을 하시는 분들에게 돈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절실한 경우를 많이 보는데요. 국가보다 기업의 착취(?)에 덜 저항적이란 뜻인가요? 아니면 기업의 착취가 훨씬 교묘하다는 뜻인가요? 그것을 일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박 - 그런 것이 분명히 있죠. 기업이라는 것은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한국의 초기 민족주의부터 봐온거죠. 한국의 초기 민족주의자들은 기업인들을 영웅시했어요. 기업인들이야말로 부강한 국가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본거고, 초기 민족주의자들은 직접 기업을 만들기도 했고, 물산장려운동 과정에서는 물건을 만들고 팔기도 했잖아요. 한국 초기 민족주의자들은 기업인을 신성시하고, 노동자를 신성시하지 않았어요. 그런 이중적인 기업, 노동관이 한국의 민족주의 담론에서 큰 역할을 했어요. 기업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신성한 나라의 일꾼이고, 기업인들이 애국자들이고, 지난번 김영삼 정권때 몇몇 재벌기업주들이 잡혀가자마자 이수성 국무총리가 '그 사람들은 애국자이고, 그 사람들을 잡아가면 안된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애국자고, 노동자들이 그를 위해서 다치고 죽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요. 그것은 한국 엘리트들의 기업, 노동관이죠. 지금도 많이 바뀌지 않은 것 같구요.
지 -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제기를 국내에서 가장 먼저하셨는데요. 그럼 군대가면 '비양심적인 거냐?'라는 항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그것은 서구 언어를 직역한건데, 문제는 병역거부를 서구에서는 여러 가지 근거를 두고 하거든요. 제가 아는 덴마크의 한 사람은 '국가가 왜 나를 동원할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 난 국가에 그런 권력을 준 적이 없다. 난 동원되기 싫다'는 논리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거든요. 서구사람들이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들은 다양하죠. 그 중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 양심이나 정치이념적 양심을 가리키는 거고, 그 외에도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냥 귀찮아서 거부할 수도 있고(웃음), 성격이 내성적이라든지 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병역을 싫어할 수 있는 이유는 많은데, 그중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가리키는 거죠. 한국같은 경우 아직은 '국가가 싫다, 국가가 나를 동원할 권리가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이질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지 - 한국에서 내신 두권의 책이 베스트셀러인데요.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박 - 이유라기 보다는 시의 적절했던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서는 10대, 20대들이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이 강해져가고 있는 것이고,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재인식과 세계관의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말씀드렸듯이 대미관이 달라졌고, 한국이 지속적으로 아시아와 관계가 강화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대중수출이 대미수출보다 커졌잖아요. 아시아 사람들이나 제 3세계 사람들에 대한 멸시적인 인식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재검토를 받고 있죠.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시의에 맞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도 몇 년전부터 이루어지고 있고, 여러 가지 상황적인 흐름이 있는데, 그것과도 맞아떨어진 것 같구요.
지 - 북유럽의 부패정도가 가장 낮고 극우들이 오랜 독재를 했던 남유럽은 상대적으로 부정부패가 심하다고 하신적이 있으신데요. 한국이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해야한다고 보십니까?
박 - 지향해야 한다기 보다는 민중들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지향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넓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거죠. 북유럽 사회가 세금으로 돌아가는 사회고, 최저세율이 40%입니다. 대중들이 이 정도의 부담을 감수해야하는 것이고, 그런 부담이 무료 의료와 무료 교육을 위해 사용되려면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거고, 그런 합의가 성립되려면 진보정당이나 진보주의자들의 선전작업도 필요하고, 대중들이 유럽사회를 보다 잘 아는 계기도 필요할 것 같고, 실제로 무료의료, 무료 교육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는 계기도 필요할 것 같고, 지금과 같은 돈먹는 하마식의 교육체제가 안된다는 자각도 필요할 것 같아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한국이 그런 사회를 지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 - 우리 정서가 사실 남유럽쪽(이탈리아, 스페인)의 정서와 비슷한 것 같은데요. 시끄럽고, 가족끼리 모이는 것 좋아하구요.(웃음) 그쪽이 차분함보다는 열정적인데 가깝지 않나요? 그것이 부정부패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 - 한국사람의 가족주의 같은 경우 한국인의 출생률이 북유럽보다 훨씬 낮아요. 노르웨이의 출생률이 한 부부당 1.77명인데, 한국은 1.3명이예요. 출생률이 이미 북유럽보다 훨씬 낮고, 핵가족화된 것도 몇 년 지난거고, 가족 단위가 급격하게 축소되어 가고 있어요. 한세대나 두세대가 지나면 가족주의가 상당부분이 사라질 것 같은데, 그럴 경우 복지망을 대대적으로 넓힐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가족이 상당부분 복지부담을 안고 있었는데, 가족주의가 파괴되면 아무래도 복지주의로 가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젊은이들의 행동양식을 보면 비행기 탈 때 떠드는 사람들은 다 4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예요. 젊은이들은 얌전해요.
지 - 맞아요.(웃음)
박 - 젊은이들이 오히려 공공장소에서는 차분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아저씨들이 공짜술 먹고, 떠드는 경우가 많죠.(웃음)
지 - 선거전에 '노.정 연합은 실수'라는 칼럼을 쓰셨잖습니까?
박 - 그럼요. 지금봐도 정몽준이란 사람은 극히 수상하고, 극히 국민을 기만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재벌치고도 삼류 재벌이예요. 옆에 있는 사람 패고 그런다고 하던데, 재벌 2세치고도 삼류예요. 노무현씨가 그런 사람하고 손잡은 것은 저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이죠.
지 - 아까 노무현이 된 것은 우리 민족으로서는 행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노정연합을 노무현이 선택했다기 보다는 국민들이 선택한 거거든요. 자꾸 합치라고 하니까 그걸 받아들인건데요. 결과적으로 좋았지만, 위험한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었는데요.
박 - 아주 위험한 선택이었죠.
지 -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는데요. 현실정치인으로 결과적으로 볼 때 잘한 선택이었지 않습니까?
박 - 결과적으로 볼 때 잘한거지만 정몽준씨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었어요. 제가 볼 때 그 사람의 정상적인 지지율이 5%예요.(웃음)
지 - 그럼 가만히 놔뒀어도.....
박 - 월드컵때 부풀어졌는데, 가만히 놔둬도 정상적으로는 5%를 넘지 못할 거라고 봅니다.
지 - 선거결과를 두고 농담삼아 이야기하는데, 이게 우리한테 보이지 않는 손 뿐만 아니라 발까지 나서서 도와준게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웃음)
박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 - 그 칼럼에 대해서 너무 낭만적인 생각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그 칼럼에 대해 서프라이즈 공희준 편집장은 '소녀진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요.(웃음) 그 글로 인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혹시 보셨나요?
박 - 못봤습니다.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제가 노무현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호감을 갖고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말하자면 기대걸고 있는 사람이 좋지 않은 적과 손을 잡는데 대해 개인적인 실망이 있었던거죠. 노무현 지지층을 분석해보면 다양해요. 호남부동표들이 있고, 충청권표들이 더러 있고, 서울의 진보지향적 지지표들이 있는데, 진보적인 지지층 같은 경우 정몽준씨와의 연합을 극히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 - 안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었고, 저는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이라는 정당을 제외하고, 이회창과 정몽준을 선택하라면 누굴 선택할지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박 - 이회창보다 정몽준이 낫다는 근거를 알 수 없었고, 낭만적 생각이라기 보다는 제가 생각했던 것은 진보 지지층이었어요.
지 - 책의 인세를 외국인 노동자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 예. 그럼요.
지 - 그럼 생활은 교수 월급으로?
박 - 뭐. 생활 걱정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지 - '진보에는 국경이 없다'는 얘기도 있는데, 굳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 - 나중에 조금더 나이들면 한국에서 살고싶어요. 일할때는 좋지않은데, 직장 문제도 있고. 제가 은퇴할 나이가 되면 산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어요. 그때는 한국이 달라질 것 같기도 하구요. 제가 여기 자주 오고 하니까 편하기도 하고.
지 - 귀화한국인으로서 월드컵때의 히딩크 신드롬을 어떻게 보셨나요? 귀화를 시키자는 논란까지 있었는데, 그 후 몇 개월이 지나니까 대표팀감독으로서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 같은데요.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는 이런 것을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보십니까?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그걸 냄비근성이라고도 보십니까?
박 - 그걸 냄비근성이라기 보다는 아까 제가 말씀드렸지만, 월드컵이란 현상 자체는 커다란 기만적 쇼였고, 히딩크의 역할도 언론에 의해 엄청나게 부풀려진 것 같아요. 사실 히딩크 말고도 한국이 4강에 들 수 있는 요소가 많았거든요. 전체적으로는 국력이 커졌고, 선수의 수준도 달라졌거든요. 어쨌든 히딩크는 언론 플레이에 의해 각광 받은건데, 그것은 국가와 자본, 정몽준이라는 사람이 조작한 쇼였죠. 쇼는 끝난지 오래고, 정몽준씨는 정체를 밝혔고, 더 이상 자본과 국가는 월드컵과 히딩크를 조명하지 않으니까. 월드컵 행사 자체가 그런거죠.
지 - 그럼 대중이 그 기만을 알아차리고 제 자리로 돌아간 것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더 이상 세뇌하지 않으니까 잊어버린 거라고 보십니까?
박 - 알아차린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일부는 알아차렸지만, 진보정당 같은 경우 처음부터 월드컵에 회의적이었어요. 대부분이 알아차린 것 같지는 않지만, 더 이상 세뇌하지 않으니까, 정몽준씨도 더 이상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고.(웃음) 대중들을 가만히 놔두니까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부터 월드컵을 그렇게 봤고,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 -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왜 민심이 김대중을 떠났느냐? 김대중이 진보니 인권이니 들먹이면서 제대로 한 것이 별로 없고, 국가보안법도 철폐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를 거의 맹신하면서 도입한 결과"라고 하셨는데요. 언뜻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을 앞도적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문제는 한나라당이 언행일치는 아니잖아요. 말로는 북한을 지키고, 말로는 주체적인 외교를 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만을 대대적으로 하면서 조중동을 통해서 상당히 기만적인 이미지를 선전하는 것이고, 한나라당에는 이미 대중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채널이 많이 가동이 되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에는 대중들을 매수할 수 있는 비공식 채널들이 많아요. 지구당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표를 모으는 등의 수법이 있고, 한나라당이 떠난 민심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는데, 여중생 사건이라든가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먹히지 않았던 거죠.
지 - 한국의 유교문화가 '시대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과 비판, 자기성찰의 전통이 깊다'고 하시면서 이 미덕은 지금도 그대로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박 - 그럼요. 맞습니다. 문부식 선생 보십시오.(웃음) 그 분의 이름도 부식인데, 김부식하고 같지 않습니까?
지 - 이문열씨 같은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본다면.
박 - 그 분은 지식인 아니예요. 장사꾼이죠.(웃음) 한국에서는 근대 초기에 그런 부류가 생겼어요. 일제시대때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중 매체가 생기고 나서 그 글들을 대중매체에 팔아 명성을 얻고,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기도 하고, 기득권에 영합하기도 하면서 양쪽에서 명성을 얻고, 결국에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전에는 대표적으로 이광수 같은 사람이었죠. 글 재주가 좋았고, 대중들의 취향을 잘 알아서 잘팔리는 글들만 써왔고, 그렇다고 해서 기존 체제에 별말은 하지 않았고, 그런 부류가 생겼어요. 그 사람들은 재주 많았지만, 진실성이 없었고, 유교적인 배경이 전혀 없었어요. 형식적으로 유교적 배경이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매문업자들이 일제시대때 생긴거죠. 이문열이 속한 부류가 그 매문업자의 부류지, 지식인은 아니예요. 매문을 아주 성공적으로 한 부류죠. 일본에서도 그런 부류들이 있는데, 비교되려면 비교될 수 있겠죠. 그 사람이 가장 성공한 매문업자 중에서도 재벌이예요. 매문업계의 재벌이죠.(웃음)
지 - 그 사람이 상당부분 지식인으로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강준만 교수 같은 경우에는 '지식인들이 반성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는데요. 조선일보 기고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주장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반성을 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박 - 반성이 없다기 보다는 기존체제와 유착을 해서 유착을 하면서 부와 명성을 얻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반성할 생각도 없고, 반성할 필요도 없었던 거죠. 반성을 하려면 체제를 건드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조선일보 등을 통해 명성을 얻을 수 없게 되는거죠. 그런 부류가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지만, 반성을 할 줄 아는 지식인들이 언제나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 - 사실 문부식씨 같은 경우에도 '반성을 하는데 좋은 데 너무 요란스럽게 했다. 결국은 조선일보에 이용되지 않았느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요. 문부식씨 같은 경우에는 그런 비난들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예전에 김지하씨나 박노해씨의 자기 반성이 진보진영에 많은 상처를 준 것은 사실인데요. 그런 반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조금 어려운 얘기입니다. 문부식씨 같은 경우 요란스럽게 한다는 비난이 타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부식씨는 대단히 필요한 경고를 했고, 그 경고 덕분에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한국의 소위 진보진영에서는 진보진영이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고려대학교에서도 프락치로 오인해서 사람을 죽이거나 구타한 사건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에서 문제를 삼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진보진영 내부의 폭력의 관계나 영향에 대해서는 눈감은 면이 많습니다. 마음 아프게 반성을 하지 않았거든요.
문부식씨가 그런 역할을 대신 한 것이구요. 진보진영을 위해서 좋은 역할을 한 사람이죠. 그것을 요란스럽게 할 가치가 분명히 있었어요.(웃음) 지금 같은 경우에는 한총련이라 해도 폭력을 쓰지 않아요. 그런 분위기에 문부식씨가 분명히 기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촛불 시위만 봐도 화염병이 등장하지 않잖습니까? 그 정도 좋아진거죠.
지 - 김진석 교수가 "한국의 극우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일상적 파시즘론자들의 비폭력론에 '서구적 기준의 보편적기준으로서의 오.남용'"을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박 - 제가 거기에 반론도 쓰고 했는데, 생산적인 논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악용할려면 분명히 악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문부식씨 경우에는 그렇게 된 면도 있는데요. 김진석 교수가 맞는 지적했지만, 비폭력주의가 결국에는 투쟁하는 진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도 사실이죠. 진보는 폭력을 삼감으로써 폭력에다 사용되는 에너지를 보다 생산적, 건설적으로 이용할 수 있구요. 폭력을 삼가는 것은 생명윤리의식을 깨우치는 것이고, 생명윤리 의식을 가진 진보라면 전쟁의 위험도 줄일 수 있고,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죠. 비폭력을 선언한 진보라면 보통 국제연대를 훨씬 잘하고, 다른 민족의 투쟁에도 관심이 많구요.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이라크 공격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그런거잖아요. 본인들도 폭력을 삼가고, 미국의 폭력을 비판할 도덕적 정당성이 생기는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화염병을 들고 시위를 했으면 달랐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비폭력이 진보진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촛불시위를 보면서 비폭력의 힘을 실감했죠. 그리고 그것은 서구우월주의라기 보다 무기를 흉기로 보는 것은 유교의 풍습이죠. 서구 문화에 있어서 폭력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폭력을 삼가는 것은 동양사상이예요. 김진석씨는 그런 면에서 조금 단견인 것 같고, 생산적인 논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 - 노르웨이에 대해 외견상으로는 선진국민인 듯 보이지만, 이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 3세계에 대한 차별, 뿌리깊은 인종주의,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 가능성 등을 포착하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자족하는 그들보다는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목소리에 더 큰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아까 북유럽, 남유럽의 예에서도 들었지만, 하고자 하는 열망이나 의지 등이 잘못되면 부패될 수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낙관적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박 - 낙관적이라기 보다는 노르웨이는 이미 일종의 소비낙원이죠. 노르웨이의 소득수준이 일인당 4만달러 정도고, 실제로 노르웨이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부분들이 한국과 비교못할만큼 큰거죠. 누릴 수 있는 특권이 크구요. 그만큼 자만심에 빠질 위험이 크고. 노르웨이의 체제라는 것이 안정된지 반세기가 지난 거고, 더 이상 그 체제는 발전이 없는 게 문제죠. 발전이 되려면 노르웨이 같은 체제를 세계에 확대시켜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제 3세계 문제해결에 나서야 하고, 빚도 탕감해줘야 하고, 돈을 그쪽으로 줘야하고, 제 1세계가 제 3세계에 저질렀던 폭력에 대한 보상도 해줘야 하는데, 노르웨이는 그런 부분을 하지 못하고 있고, 자기 복지에 안주하고 있어요. 풍요에 안주한 거죠.
한국 같은 경우에는 소위 얻어맞은 민족주의니까 얻어맞은 경험이 많고, 세계체제의 모순이 얼마나 큰건지 경험한거고, 세계 체제안에서 미국의 폭력이 얼마나 큰 건지 경험했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서 한국인들이 많이 아픔을 맛본 사람들이고, 아픔을 많이 맛본 사람들이 남의 아픔을 훨씬 잘 이해할 수가 있죠. 잘만되면 제 3세계문제 해결에 한국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아픈 경험이 많고, 그런데 대한 자각이 분명히 있어요. 한국이야말로 제 3세계 해방의 선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르웨이나 그쪽보다는 한국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지 -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비행기의 예를 드셨는데, 저는 젊은 사람들이 개인주의가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 개인주의가 나쁘지 않은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도 한다는 거거든요. 기성세대가 우리한테 가르쳐준건 '안맞으려면 힘을 길러 똑같이 때려주라'는 것이었잖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거든요. 촛불시위에서 이라크 침공하지 말라는 구호도 외치는 것만 봐도 그렇구요.
박 - 그럼요.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이런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가 학생들이잖아요.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고, 그런 면들이 평가를 받아야한다고 봅니다. 실제로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제가 볼 때 한국의 젊은이들이 개인주의로 가는 것은 여태까지 받았던 국가주의, 민족주의 주입에 대한 반대작용, 거부감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고, 당연히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대한 강압이 사라지면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힐 것 같기도 합니다.
지 - 아나키스트 같기도 한데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도둑보다 국가가 더 많은 살인을 하고, 또 가장 많은 공범을 만든다'고 하기도 했지 않습니까?
박 - 그건 사실이죠.(웃음) 한국에서는 가장 큰 폭력의 소스는 국가였습니다. 근현대사를 보면, 대내적인 폭력의 가장 큰 소스는 국가였죠. 작은 예를 들자면 지난 31일 시위에 나갔을 때 시위대는 얌전하게 행동했는데, 아이들 데리고 나와서 촛불들고 노래하고, 아무런 난동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시위자들보다 경찰수가 많았고, 경찰들이 시위현장을 완전히 봉쇄했고, 새로운 참가자들을 막으려고 했고, 시위 현장에서 나가려는 사람들까지 못나가게 했거든요. 여자들 옷을 잡아 당기고, 아이들을 아주 가혹하게 다뤘고, 시위자들이 약간이라도 미국대사관으로 진출하고자 하면 아주 거칠게 막았고,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시위자가 아니고, 경찰이었거든요. 가장 크게 폭력을 행사하는게 국가구나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지 - '오태양 거사의 출현은 한국의 사회생활, 의식에서의 하나의 혁명을 의미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까?
박 - 그럼요. 혁명이었죠. 자기 종교적인 양심을 갖고 국가와 맞설 수 있었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죠. 그런 사람들이 그전에도 카톨릭에도 있었고, 여호와의 증인 같은 경우에도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소수에서 하는 일인 경우가 많았고, 불자라는 다수에 속하는 사람이 불자로서의 양심을 갖고 국가에 맞선건 한국 불교에서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불자로서 국가에 맞선건 20년대 한용운 같은 스님들이 일제와 싸우면서 했던 일인데, 그 후로 불교쪽에서는 국가의 폭력에 맞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말하자면 한국 불교사상 큰 사건이었죠.
지 - 어느 인터뷰에서 "불법성을 착취의 도구로 사용하는 현재 한국제도는 세계의 여러 산업 국가의 제 3세계의 노동착취 매커니즘 중에서 전근대적인 '천민차별'을 가장 성실하게 재현시킨 것이다. 이 제도가 인격을 파괴시키는 효과는 엄청나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박 - 그건 사실이죠. 세계 어느 국가를 봐도, 일본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 불법 체류자의 비율이 50%가 넘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70%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불법 체류자들을 양산하는 건 뭘 의미하느냐 하면 완전히 무력한 아무런 권리도 없는 노동자들을 양산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국의 영세사업장에서 필리핀이나 동남아 노동자들이 매일 손찌검을 당하는 것이고, 폭언이라는 건 매시, 매초마다 있어요. 사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쓰는 문장 중에 '이 씹새끼'가 안들어가는 문장을 들을 수가 없어요. 자기들이 매번 듣는 이야기니까요.
그들이 사용하는 문장 중에는 정상적인 문장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근대 이하의 수준이죠. 제가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는 존대말을 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공장에서 존대말을 쓰지 않고, 본인들이 듣는 것이 존대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거죠. 필리핀 사람한테 들은 이야긴데, 몇 년 동안 본인한테 접근한 한국 사람 중에서 존대말을 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나이하고도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매카니즘이 한국인의 양심을 파괴하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는거죠. 이건 제가 알기로 어느 나라에도 없어요.
지 - 부정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공무원 노조, 언론, 정당 등이라고 하셨는데, 그것들이 허가되지 않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 - 글쎄 뭐 전교조는 10년 동안 고생했는데, 시대가 달라졌으니까 공무원 노조는 꾸준히 집회를 가지고, 투쟁을 벌인다면 노무현 집권 시기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무현의 성격으로 봐서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 관료 사회의 문제죠.
지 - 이순신 동상에 대해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최상천씨 같은 경우에도 '세종로에는 세종대왕 동상을 세워야 하는게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있기도 한데요. 거기에 관한 여러 문제제기가 있는데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논의들은 많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박 - 국가마다 민족주의를 만들고, 주입시키는 것이 국가마다 있는 부분인데, 그건 한국 뿐만이 아니구요. 과거 장군의 동상이 없는 유럽국가의 수도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떤 인물의 동상이 도시의 상징적인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은 주민들의 의식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주민들의 의식을 반영하기도 하고, 그 의식을 지배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러니까 도시의 상징적인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게 최고의 가치구나'하면서 그 동상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사상지배를 받는거죠. 장군 혹은 군인의 동상이 서울의 상징적인 공간에 있는 것을 보면 군대, 군인, 싸움에 대한 지고지순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무인이 아닌 문인이 거기 서 있다면 '국민의식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수도 있는 것 같아요. 세종대왕일 수도 있고, 예컨대 불국사를 만든 아사달이라든지 무명의 백성의 동상일 수도 있고. 국왕이라는게 또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저 같으면 개인적으로 전태일 동상이 서 있으면 해요. 그거야말로 한국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었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지 - 그 자리에 전태일 동상이 선다, 굉장히 상징적일 수 있겠네요.
박 - 상징적이고,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데, 만약에 전태일 동상이 거기 세워진다면 국민한테 주는 신호일거예요. '이제 정말 바뀌었다' '이제 정말 당신들이 주인이다'는 식으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주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요.(웃음) 전 전태일 동상이 세워졌으면 좋겠어요.
지 -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한다고 보세요? '북한은 개인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한 민족주의고, 남한은 대미종속을 전제로한 관제 민족주의'라고 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현실적인 고려도 필요할텐데, 미국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실제로 나이든 분들은 오히려 노무현이 되었기 때문에 전쟁날거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위기이자 오히려 이것을 잘 해결하면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한데요.
박 - 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북쪽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미국의 극우들도 말려야 되고,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을 설득할때는 남한을 차별화시켜야 되요. 남한이 이제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차별화 정책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에는 미국을 설득시킬지는 의문이지만, 그건 미국의 극우들과 관련이 되어 있는 부분이고, 적어도 민족과 남북한 사이의 신뢰가 구축되고, 남북한 사이의 공조가 강해지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구축이 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군축을 동시에 할 수 있을 거고, 남한이 십만 병력을 줄인다면 남한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북한도 10만 병력을 줄일 수 있어 엄청난 도움이 되겠죠. 북한의 국가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죠. 신뢰구축이 여러 가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남북한이 하나됨을 북한한테 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것 같구요. 잘할 것 같아요. 한국 외무부에서는 노하우도 많이 쌓여있고.
지 - 최근에 보인 진중권 씨의 여러 가지 행보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휴.(한숨) 참 얘기하기 힘든 부분인데요. 결국 그것까지 물어보시는군요. 제 생각에는 진중권씨가 한가지 착각하는 것이 한국과 독일을 착각하는 것 같아요. 독일에서는 좌파가 그렇게 행동을 해도 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정치발전에 있어 갈 길이 많이 남아있고, 극우들이 아직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진보주의자들의 목표는 극우헤게모니를 해체하는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이처럼 동지한테 상처를 주는 것은 비생산적이고, 극히 비정상적인 행동이죠.
그리고 한겨레는 백보양보해서 진보주의적 신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좋아요. 한겨레는 진보가 아니라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신문으로 볼 수도 있어요. 저 역시도 한겨레를 볼 때 진보주의적 매체라기 보기 어려운 면이 많아요. 전체적으로 자유주의적 노선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고, 온건 개혁성향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극우들이 득시글거리는 한국에서 자유주의적 매체를 팽개친다는 것은 전략, 전술상으로도 말이 안되는 것이고, 좌파 윤리상으로도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한겨레 독자들이 있는 것이고, 그 독자들이 진중권씨 글에 익숙해져 있고, 진중권 글에서 배운 것도 많은텐데, 그 독자들한테 서운하게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약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 - 386세대라는 단어가 대학 안나온 사람들은 시민도 아니라는 무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허위의식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박 - 한국 대졸들의 '우리는 바로 한국이다'는 의식에서 나온 말인 것 같은데, 고졸이 소수자가 된거죠. 고졸들이 보통 소수도 아니고, 불이익을 당하는 소수가 된 것인데, 한국은 대졸이라는 다수가 휘어잡고 있는 나라라고 보면 386은 소수에게 아픔을 줄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