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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한다고 말할 걸 : 님은 먼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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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곳에>는 신중현의 노래다.(법원의 판결로 작사는 아니다.) 김추자의 노래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전체적인 영화 흐름을 이끌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순이(써니)의 '님'은 누구인가가 궁금했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망설이다가/님은 먼곳에'
가버렸다. 노랫가사처럼 망설이지 않았다. 표현의 방식을 몰랐다. 물론 남편도 마찬가지다.

우리네 윗대의 사람들이 대부분 드랬듯이 그냥 '님'이다.

남편을 면회(?)하러 월남으로 떠나는 순이의 여정이다. 로드무비라 말 할 수가 있을까? 순이는 점점 자아를 찾아간다고도 이야기 할 수 없고 점점 변해간다. 상황이 순이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영화는 '왜?'라는 의문은 없다. 대부분 '그냥'이다. 왜 그토록 남편을 만날려고 하였는지에 대한 답은 정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만나러 간다'는 것이다. 만남은 쉽지않다. 우여곡절을 겪고 만난다. 힘들게 만난다. 만나러 감에 의미가 있기에 만남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점점 순이가 좋아진다. 순이도 '만나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목표 아래 강인해져 간다. 그렇게 만났더니 다음은 어쩔 줄 모른다. 그렇게 영화는 끝났다.

난 이준익감독의 영화를 대부분 좋아한다. 이 영화를 본 것도 아마 그에 기인한 것이 컸다. 그만큼 실망도 크다. 감독은 많은 것을 보여줄려고 한다. 월맹군(베트콩이라 말하고 싫다)이 '돈 벌러 온 밴드'라는 정진영의 말에 '박정희군대도 돈벌러 왔다'라고 말한다.  월맹군장군은 맴버들을 죽이지 않는다.(주인공이니까?) 그는 미군에게 머리를 맞아 죽는다. 미군의 눈매는 붉은끼가 돌며 광기를 느낀다. 아니 광기라기보다는 '약'을 한듯한 눈이다.

여기서 월맹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줄려고 했다면 나의 지나친 오바일까? 그런 대사는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그냥 순이가 남편을 맹목적으로 만나러 감에만 치중을 하였으면 더 좋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영화의 전부이니.

영화는 전반적으로 <왕의남자>와 <황산벌> 그리고 <라디오 스타>에서의 해학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진지하지도 않다.

그래도 잔잔한 이준익표 감동은 곳곳에 깔려있다. 아마도 이때문에 영화를 보지않을까. 그 정도면 베스트는 아니지만 나쁘지않다. 하지만 굳이 안보아도 된다는...

덧붙임_

영화에서 수애가 노래를 부르는데 김추자의 원곡을 넣엇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애잔한 느낌은 수애가 더 하지만 파워풀은 김추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님은 먼곳에 - 김추자

님은 먼곳에 다른 버전
김추자 노래 더듣기

덧붙임_둘

순이가 헬기를 타고 님은 먼곳에를 부르는 장면을 보니 <지옥의 묵시록>의 헬기 장면이 생각난다. 바그너의 노래를 틀며 광기에 찬 폭격을 하던 장면이 연상되었다. 아마도 그 장면의 오마쥬가 아닐런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덧붙임_셋

정경호(이름은 나중에 알았지만)를 보면서 어디서 보았는데 하였는데 <폭력서클>에서 강인하게 보았다. 머리를 길러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거기만큼 강렬하진 못하다.

덧붙임_넷

눈에 아니 귀에 거슬리는 것은 순이로 분한 수애의 말투다. 사투리를 했다 안했다가 한다. 설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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