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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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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성한 백발에 인자한 팔자 주름, 세로줄이 들어간 청색 양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영정 사진이 조문객을 맞았다. 2010년 12월 5일 0시 40분경, 리영희 선생이 향년 8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차남 건석 씨는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됐고, 3주 전부터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병세가 깊었던 탓인지 장례식장은 차분했다. 뇌출혈로 인해 펜을 들 수조차 없어 임헌영 선생과 함께 구술로 적어내린 자서전 〈대화〉(2005)의 마지막 장. 선생은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영면 이 주일의 죽음 -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 일요신문 진보신당의 최연소 여성 대변인이자 젊은 진보 정당인이었던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35)가 지난 2013년 3월 8일 새벽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박 부대표 죽음의 원인은 세간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부대표가 기간제 교사직과 학원 강사를 거쳐 정계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녀가 싱글 맘과 군소 정당에 대한 편견과 얼마나 오랜 사투를 벌여왔는지 짐작케 한다. 박 부대표는 무엇 때문에 ‘꿈을 공유하기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라 했던 이들을 뒤로하고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영결식 모습과 페이스..
부고광고는 종이에 심는 비석, 신문에 남긴 기록, 역사 그 자체 ‘스티븐 P. 잡스가 수요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애플 사의 공동 창립자였던 그는 뛰어난 선견지명으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고 음악, 영화, 그리고 이동통신 분야에서 디지털 시대를 앞당기며 문화혁신을 주도했었다.’뉴욕타임스에 실린 부고기사를 묶어 펴낸 윌리엄 맥도널드의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 중 일부다. 이처럼 죽음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대표적 방식인 부고기사와 함께 ‘부고광고’ 연구를 통해 죽음 알림에 주목한 논문이 발표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콘텐츠대학 교수와 함께 ‘100년 동안 한국 부고공고에 나타난 죽음 알림의 내용 분석’이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한국광고학회 2024년 8월 광고학 연구 제35권 4호에 게재됐다. 그를 만나 ..
‘한국학 거장’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별세 올해 초까지 매년 한 권 이상의 책을 낸 김열규 교수. 그는 “요즘 사람이 공부를 통해 자신의 영혼이 자라고 우거지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한국학 분야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혈액암으로 투병하다 2013년 10월 22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81세.고인은 1932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그는 병약했다.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었다”고 할 정도였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도 그의 자리는 책상이었다. 당번과 함께 그는 늘 열외였다. 조회 시간도 체육 시간도 그랬다. 그만큼 약했다. 대신 고인은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 몸은 약했지만 생각의 근육을 키웠다.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라고 회고한 적도 있다.고인은 문학과 여행을 좋..
마땅한 곳으로 돌아감 -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미리 쓰는 부고(訃告)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미리 보내는 부고장’을, 그것도 나 자신의 것을 나 스스로 쓰자니, 손이 떨린다. 컴퓨터 자판기에 얼핏 손이 나가지 않는다. 초등학교 이후로 다니던 각급 학교에서 시험지 받아든 순간이 이 지경이었다면, 오직 낙제만 거듭했을 것은 뻔하다. 만만치 않는 머뭇댐을 간신히 가라앉힌 끝에 겨우, 쓰게 되는 게 이 부고장임을 우선 강조해두고 싶다. 일찍이 무슨 일에 손대게 되면서 이토록 미적댄 적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한데 막상, 첫 글자를 쓰게 되면서 그 머뭇댐이 겁먹은 것이나 질린 것만은 아니기를 스스로 다짐 두고 싶어졌다. 뭔가 뜻깊고 보람된 것이 되기를 바라고 싶어지기도 했다. 예로부터 죽음을 두고는 ‘돌아간다’고 했다. 그것은 으레 가야 할 곳..
남이 쓰는 부고 대신 자신이 미리 써서 삶과 사랑을 기록하기 이것은 너무 늦게 도착한 부고다. “내 아내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인 안동 김 씨이다. 향년 22살. 그중 8년을 나와 함께 살았다. …아아! 당신처럼 현숙한 사람이 중간의 수명도 누리지 못하고 아들도 두지 못했으니, 천도라는 것이 과연 있는지 믿기 어렵다. 곤궁하던 시절에 나는 당신과 마주 앉아 작은 등불을 켜서 밤을 밝히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내가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울 것 같으면 당신은 그때마다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게으름 부리시면 제 부인첩이 그만큼 늦어집니다.’ 그때야 어찌 알았겠는가. 18년 뒤에 이 부질없는 문서 한 장을 당신의 영전에 바치게 될 줄을! 그 영예를 누릴 사람은 조강지처 당신이 아니니. 당신이 이일을 안다면 필시 한숨 쉬며 서글퍼할 테지. 아아, 슬프다!” 허균은 아내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니까 - 부고기사 최근 출간된 ‘부고의 사회학’(이완수 지음 · 시간의 물레)은 일간지 부고 기사에 담긴 사회적 가치관과 권력관계를 분석했다. 짧으면 몇 줄, 길어 봐야 200자 원고지 몇 장에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모두 담을까. 고인이 저승에서 편지를 쓸 수 있다면 기자의 메일함은 이런 내용으로 가득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니까!”최근 재개봉한 영화 ‘클로저’의 댄(주드 로)과 앨리스(내털리 포트먼).“부장인 해리가 사망자를 알려주면… 내일 판 교정지를 보며 마지막 수정을 해요. ‘완곡어법’을 써가면서. 알코올중독자는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게이는 ‘개인 생활에 충실했다’, 튀는 게이한테는 ‘사생활을 만끽했다’….”지난달 재개봉한 영화 ‘클로저’에서 신문사에서 부고 기사를 쓰는 주인공..
한 르네상스적 완전인에 대한 뒤늦은 부고 기사 - 에릭 시걸 Erich Wolf Segal (June 16, 1937 – January 17, 2010) 고전문학자 에릭 시걸은 소설 『러브스토리』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대중소설이 이 정도의 기품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전문학 가르치기 · 대중소설과 영화 각본 쓰기 · 달리기가 삶 자체였다고 할 정도로 그는 다재다능했다. 문학의 가장 흔한 주제는 사랑이야. 대중소설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본격소설에서도 그렇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 기다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것도 결국 사랑 얘기야. 좀 짧은 소설로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이것 역시 사랑 얘기지. 사랑은 소설을 비롯한 산문에서보다는 시에서 더 자주 다뤄지지만, 소설도 태반은 결국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 연극도 마찬가지고. 대중소설..
부고기사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에 부합하도록 재구성된 죽음이어야 한다 한국식(式) 부고기사한국 일간지 부고기사는 내용적 측면에서도 다른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문화학적 요소가 적지 않다. 첫째는 성(Gender) 편향적이다. 남성을 여성보다 우선적으로 다룬다. 고인이 남성이면 여성에 비해 다뤄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부고기사의 이런 성 편향성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발견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가부장적 문화가 유독 강한 한국 사회에서 자주 발견된다. 유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유가족의 아들이나 사위가 딸이나 며느리보다 더 중요한 가족으로 소개된다.둘째는 직업(Occupation)과 직위(Social Status) 중심적이다. 한국은 추모형 부고기사든, 단신 부고기사든 망자와 유가족의 직업과 직위가 중요한 정보로 강조된다. 소위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직업군이 선택적으로..
사나이, 아버지, 그리고 배우… 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이 있는 한, 작별인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쉼 없이 긴 연극 같은 삶이었다. 막간을 둘 새도 없이 배역을 달리하며 무대 위의 성실함으로 삶을 채웠다. 60여 년의 배우 인생을 뒤로하고, 지난 11월 7일 배우 송재호가 영면했다. 향년 83살. 1년 가까이 지병으로 투병했지만 마지막은 평온했다고 전해진다. 에서는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당대의 열혈 청년으로, 드라마 에서는 인자한 아버지로, 에서는 묵직한 기둥이었던 수사반장으로, 에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간직한 노인으로 출연하며 송재호는 배역을 따라 나이 들었다.혹여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둔감했던 관객에게조차, 송재호의 푸근한 미소는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 스며들어 미더운 약속처럼 기억된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
음식인류학의 아버지, 시드니 민츠 93세의 나이로 타계하다 Sidney Wilfred Mintz (November 16, 1922 – December 27, 2015) Sidney Mintz, Father of Food Anthropology, Dies at 93 (Sam Roberts)음식인류학의 아버지, 시드니 민츠 93세의 나이로 타계하다 (샘 로버트)출처: 뉴욕 타임스 / 2016년 1월 1일 Sidney W. Mintz, a renowned cultural anthropologist who provocatively linked Britain’s insatiable sweet tooth with slavery, capitalism and imperialism, died on Sunday in Plainsboro, N.J. He was 93.도발적으로 영..
이력서 같은 부고기사 지난(2011년) 4월 25일 타계한 배우 김인문의 부고 기사다. 고인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이 기사도 정말 아쉽다. 기사에는 한 시대를 살아 간 예인의 삶과 죽음이 무미건조하고 상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고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자료만 들춰보고 얼마든지 써낼 수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죽음이란 어떤 의미에서 가장 큰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는 한 사람이 평생 밟아 온 삶의 궤적이 압축되어 담겨 있다. 죽음은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극적인 계기이며, 그렇게 돌이켜 보는 고인의 삶의 과정이 죽음이라는 드라마의 플롯이 된다. 또 감정 반응을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정서적 사건이기도 하다.보통 사람의 죽음도 그럴진대, 잘 알려진 사람의 죽음에는 이러한 요소가 더욱 많다고 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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