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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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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최초의 질문은 사람이 하니까 - 질문커뮤니티 “생각은 답에서가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세상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며, 새로운 생각을 제안한다.그러나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그럼에도, 최초의 질문은 사람이 한다.AI는 질문에 답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그는 무한한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문장을 이어붙이며, 그럴듯한 논리를 만든다.그러나 그 모든 작동의 시작점에는 하나의 물음이 있다.누군가 묻지 않으면, AI는 결코 말문을 열지 않는다.“왜?”, “무엇을 위해?”, “이건 옳은가?”이런 질문은 단순한 정보 요청이 아니다.그건 세계를 다시 바라보려는 의지의 발화다.질문은 불편함에서 태어나고, 불완전함에서 자란다.완벽하게 만족한 존재는 묻지 않..
불에 몸을 맡긴 사람, 세상에 불을 남기다 -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며 불에 몸을 맡긴 사람, 세상에 불을 남기다—11월 13일,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며“불에 몸을 맡겨 지금 시커멓게 누워버린 청년은 결코 죽음으로 쫓겨간 것은 아니다.” — 이성부, 「전태일君」불타오르는 한 사람의 몸을 그저 ‘죽음’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 불은 세상을 향한 항의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지막 외침이었다.배운 것을 잊지 않는 청년이었다.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전을 공부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 법은 현실과 너무나 멀리 있었다.동료 재단사와 함께 ‘바보회’를 만들고 평화시장의 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모두 거절되거나, 중간에서 사라졌다.11월 7일..
재즈 드러머 Jack DeJohnette 별세 잭 드조넷(Jack DeJohnette), 1942년 8월 9일 ~ 2025년 10월 26일 재즈의 가장 위대한 거장과 함께 연주한 스릴 넘치는 미국 재즈 드러머, 피아니스트, 작곡가지휘자나 신성한 악보의 통제를 벗어난 즉흥음악에서, 연주자의 직감에 따라 방향이 돌연 바뀌곤 하는 그 세계에서 드러머는 종종 ‘직관적 항해자’로 불린다. 그런 재즈의 본질을 가장 창의적이고 본능적으로 구현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잭 드조넷(Jack DeJohnette)이다. 드러머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이자 밴드리더였던 그는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드조넷의 이력은 20세기 후반 재즈의 가장 위대한 이름들로 빛난다. 시카고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R&B부터 프리재즈까지 폭넓게 연주했다. 시카고 창조적 음악가협회(AACM..
야수의 피를 지닌 한 시인이 영면했다 - 박남철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야수의 피를 지닌 한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박남철. 이성복, 황지우와 함께 1980년대 한국 해체시를 대표하던 인물이다.1980년대는 리얼리즘과 민중시가 대세이던 시대였다. 시가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고, 문학은 윤리의 도구로 동원되었다. 그런 시대에 그는 모든 금기를 정면으로 부수며 시를 해체의 언어로, 불화의 선언으로 바꾸었다.“이 좆만한 놈들이…” — 독자를 향한 도발그의 시 「독자놈들 길들이기」는 제목부터 전투적이다. 독자놈들 길들이기 —박남철 내 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 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
죽음을 기록하는 이유, 부고가 남기는 사회적 기억 - 부고의 사회학 죽음을 기록하는 이유, 부고가 남기는 사회적 기억현대 사회에서 부고 기사는 점점 그 의미가 희미해지는 듯 보인다. 휴대폰 문자로 부고 소식을 받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유명인의 죽음 역시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빠르게 정보가 흐르는 시대에, 굳이 부고 기사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하지만 부고는 단순한 뉴스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의 삶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리매김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미국 뉴욕 타임스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슬픔의 초상화’라는 기획 보도를 통해 같은 해 말까지 1천800개에 달하는 부고 기사를 발행했다. 이 기록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동체의 상실을 세밀하게 담아내며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Portraits of GriefE..
한 줄 부고에 묻힌 삶, 언론은 어떻게 기록할까 한 줄 부고에 묻힌 삶, 언론은 어떻게 기록할까신문이나 온라인에서 흔히 보는 부고 알림은 대개 이렇게 한 줄로 끝난다.“○씨 별세, ○씨 부친상=○일, ○장례식장, 발인 ○일 ○시. ☎️ ○○-○○-○○”전직 대통령, 정치인, 연예인처럼 널리 알려진 사람의 죽음은 긴 기사나 영상으로 남지만, 일반인의 죽음은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이 조명할 대상은 의미 있는 삶을 남긴 이들이겠지만, 현실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형식도 단조롭다.그럼에도 최근 몇몇 기자들은 덜 조명된 죽음을 발굴하고 기록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가만한 당신, 못다한 말“(길게 읽고 오래 생각할) 긴 부고가 필요한 까닭”어떤 이의 죽음을 맞아 그의 삶을 알리고 기억하려 쓰는 글을 부고라 한다. 죽음은 모두 같지만..
산재 사망 야간노동자 148명의 기록 담은 서울신문 '달빛노동 리포트' 우리가 잠든 사이, 스러진 사람서울신문 12일자 1면은 평소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죽음으로 채워졌다. 골판지 제조업체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택배 기사. 올해 상반기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야간노동자 42명의 부고가 전면을 가득 메웠다.그 위를 두른 검은 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우리가 잠든 사이, 야간노동자들이 스러집니다. 올 상반기에만 148명. 통계 숫자에 가려진 그들의 죽음과 고달픈 밤의 여정을 전합니다.”밤이 깊어도 그들의 노동은 멈추지 않았다. 새벽까지 재봉틀을 돌렸던 전태일, 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서 사망한 김용균 씨, 그리고 이름 모를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삶은, 그들의 죽음은, 우리가 잠든 사이 사라졌다.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이번 기획에서 화려한 그래픽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고인이 없는 부고기사 누구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하는가조선일보 부고기사 분석에서 드러난 ‘죽음의 불평등’부고는 한 인간의 마지막 기록이다. 그의 이름, 생전의 직업, 남겨진 가족. 신문의 한 칸짜리 짧은 알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 사회가 누구의 죽음을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조선일보의 부고기사에서 이 태도의 방향을 드러냈다. 박순찬 조선일보 기자와 김영욱·정재민 카이스트 교수는 《한국언론정보학보》에 실린 논문에서, 2020년 상반기 동안 조선일보에 실린 단신 부고기사 939건과 2023년 하반기 부고 의뢰 경로를 분석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조선일보의 부고는 ‘고인’보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쓰인다.고인의 생전 직함이나 이력을 담은 경우는 전체의 24.4%에 불과했다. 대..
금정굴 진상규명 이끈 마임순 전 회장 별세 향년 73세 마임순, ~ 2025년 9월 16일, 향년 73세 어둠 속에서 빛을 판 사람 — 마임순 회장을 기억하며그녀는 평생 삽을 들고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거짓이라 불린 역사의 땅을 파서, 진실의 조각을 하나씩 들어 올렸다. 그 이름, 마임순. 금정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의 얼굴이자, 한 세대의 고통을 증언한 사람. 그가 2025년 9월 16일, 일산백병원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였다.그의 인생은 처음부터 ‘빨갱이 시댁 며느리’라는 낙인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그는 그 이름 아래 숨지 않았다. 오히려 그 낙인 속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냈다. 억울하게 죽은 시댁의 사람들을 위해, ‘국가의 거짓’을 밝히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고양 금정굴 사건은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
생각을 키우는 세 가지 질문 - 왜? 그래서? 정말로? - 질문커뮤니티 생각을 키우는 세 가지 질문 - 왜? 그래서? 정말로?질문은 끊임없이 생각을 자극한다. 누군가의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답하기 위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질수록 생각은 점점 깊어진다.일본의 대표적인 카피라이터 우메다 사토시(梅田悟司)는 생각을 확장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반복하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T자형 사고법’이라고 부른다. 그가 제시하는 세 가지 질문은 ‘왜?’, ‘그래서?’, ‘정말로?’이다. 단순하지만, 이 세 가지를 제대로 사용하면 생각은 깊어지고, 넓어지고, 되돌아보게 된다.1. 왜? — 생각을 심화한다‘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가?’이 질문은 사고의 근원을 파고들게 한다. 우리는 종종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표면적으로..
살림의 언어로 남은 시인, 김지하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살림의 언어로 남은 시인, 김지하—별세 3년, 오늘 그를 다시 기억하며김지하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2022년 5월 8일, 강원도 원주의 집에서 향년 81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지금도 여전히, 이 땅의 언어와 양심 속에서 살아 있다.그는 시인이었고, 사상가였으며, 시대의 양심이었다.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한 뒤1970년대 초 시 「오적」으로 세상의 위선을 벼렸다.권력과 재벌, 언론, 종교를 신랄하게 풍자한 그 시 한 편으로 그는 감옥에 갇혔다.하지만 철창 속에서도 그는 언어의 무기를 놓지 않았다.그가 남긴 「타는 목마름으로」는 자유를 향한 갈망의 상징이 되었고,..
문제 해결자보다 문제 발견자가 더 창의적이다 - 질문커뮤니티 문제 해결자보다 문제 발견자가 더 창의적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답을 찾는 데 있지 않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대부분의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진짜 창의적인 사람은 문제를 ‘발견’한다. 문제 해결자보다 문제 발견자가 더 창의적이라는 말은, 창의성이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을 새로 만들어내는 능력임을 뜻한다.창의적인 사람은 해당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이 반드시 뛰어나지 않다. 오히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왜 이건 이렇게 되어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그들은 세상의 전제를 의심하고, 보이지 않던 틀을 다시 그린다. 그래서 창의성은 해결력보다 ‘발견력’에 더 가깝다.문제를 발견한다는 것문제를 발견한다는 것은 단순히 결함을 찾는 일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
기억합니다 - 한겨레가 떠나는 이를 추모하는 방법 가 어언 35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 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가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원고료를 드립니다.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mailto:People@hani.co.kr)). 기억합니다가 어언 32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
질문이 중요한 7가지 이유 - 질문커뮤니티 질문이 중요한 일곱 가지 이유 1. 질문을 해야만 답을 얻을 수 있다누구나 궁금한 것이 있지만, ‘바보처럼 보일까 봐’ 속으로만 삭이다 중요한 정보를 놓칠 때가 있다. 그러나 질문 없이는 답을 얻을 수 없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질문을 해야만 가치를 높일 수 있다.IBM의 설리자 토마스 왓슨은 “적절한 질문을 할 능력이 있다면, 절반 이상은 이기고 시작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2. 질문은 닫힌 문을 여는 알리바바의 주문이다살면서 우리는 많은 문을 만난다. 그 문 뒤에는 기회와 경험, 새로운 인연이 숨겨져 있다. 질문은 그 문을 여는 열쇠다.피터 드러커는 “컨설턴트로서 나의 강점은 아는 척하지 않고 질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공하는 리더는 집요하게 질문하며 지혜를 얻는다.3. ..
백기완이 없는 거리에서 - 김진숙 백기완(白基琓), 1932년 1월 24일~2021년 2월 15일 ‘아부지’를 미워하는 힘으로 버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미 ‘쓸데도 없는’ 딸이 셋이나 있던 아부지의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넷째 딸. 아부지처럼 안 사는 게 삶의 유일한 목표였던 나는 십대의 넘치는 에너지를 오로지 아부지를 미워하는 데 썼습니다. 중간에서 시달리다 못해 무당을 찾아간 엄마는 ‘둘이 한집에 살면 둘 중 하나는 죽는다’는 박수의 점사를 들고 와선 연속극에서처럼 머리에 띠를 매고 앓아눕고 마침내 저의 가출을 묵인, 방조하게 됩니다.엄마가 준 오천원을 들고 집을 나와 1600원짜리 부산행 기차표를 끊어 같은 한국이지만 말 한마디 못 알아듣는 부산에서의 노동자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고단하고 서러워 밤마다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는..
질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 - 질문커뮤니티 질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 “보는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질문하는 사람은 세상을 다시 만든다.”보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본다. 눈앞의 현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건 지각(perception)의 영역이다. 보는 사람은 주어진 정보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집중한다. 예를 들어, 어떤 세일즈맨이 매출이 떨어진 것을 본다면 그는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현상을 ‘본’ 것이다.그는 관찰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만, 아직 문제를 ‘발견’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아직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질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문제 발견자는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본다. 그는 단순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는 데서 멈추지 않는..
혁명가 존 몰리뉴를 기억하며 John Molyneux 존 몰리뉴, 1948년 9월 2일 ~ 2022년 12월 10일 마르크스주의 작가이자 활동가 존 몰리뉴(John Molyneux)가 12월 11일 더블린에서 74세로 세상을 떠났다.그는 평생을 국제사회주의 운동 속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영국의 국제사회주의자이자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 나중에는 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네트워크에서 활동했다.몰리뉴는 1968년, 전 세계를 휩쓴 반전운동과 혁명적 흐름 속에서 급진화된 세대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곧 국제사회주의 그룹의 핵심 이론가이자 가장 인기 있는 연사로 자리 잡았다.그의 첫 저서 『마르크스주의와 당』(1976) 은 마르크스, 룩셈부르크, 레닌, 트로츠키, 그람시가 남긴 혁명적 조직 이론을 분석하며, 지금도 조직 문제에 씨름하..
혁명가이자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저술가 존 몰리뉴 조사(弔詞) John Molyneux 존 몰리뉴, 1948년 9월 2일 ~ 2022년 12월 10일 존 몰리뉴가 2022년 12월 1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는 소식에 세계 곳곳의 사회주의자들이 충격을 받고 슬퍼했다. 향년 74세였다.존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체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학생과 청년 노동자 세대에 속한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저술가·활동가 중 한 명이었다.1968년 존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전신인 ‘국제사회주의자들(IS)’에 가입했다. 당시 사우샘프턴대학교 학생이던 존은 ‘베트남연대운동(VSC)’에 참여하고 프랑스의 1968년 5월 반란 당시 파리를 방문한 경험을 통해 급진화했다. 존을 IS에 가입시킨 사람은 IS의 창립자 토니 클리프였다.존은 이후 평생 동안 ..
지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질문커뮤니티 지금 당장 시도하기에 불편한 것은 무엇일까?What would make me uncomfortable to attempt right now? 나는 편안함이 위험한 감정이라고 믿는다.편안함은 달콤하지만, 동시에 정체를 불러온다.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지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나는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을 했다.이 단순한 습관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처음엔 세일즈가 너무 어려웠다.사람에게 물건을 권하는 일이 나에겐 낯설고 불편했다.그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상품 정보를 SNS에 올리는 것 정도였다.그러다 어느 날,나는 전화를 들고 불편한 상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그건 단지 일의 영역에서만이 아니었다.집 안의 편안함에 도전장을 내고운..
명예도 없이 사랑만 남기고, 백기완 선생을 기리며 백기완(白基琓), 1932년 1월 24일~2021년 2월 15일 혁명을 꿈꾸는 통일싸움꾼, 호통과 눈물의 이야기꾼 백기완 선생이 떠났다. 제 둥지를 부수고 날아오른 장산곶매처럼 남과 북을 갈라 치려는 모든 세력과 맞서 싸우고, 천둥 같은 호통을 권력자에게 날리며 밑바닥 민중을 눈물로 감싸주던 이였다. 심장과 폐를 무너뜨리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일터에서 천대받고 쫓겨나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눈에 밟혀,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김미숙·김진숙 힘내라.” 2019년 2월9일, 거듭되는 심장 수술과 치료로 쭉정이처럼 메마른 선생이 지팡이에 몸을 기대어 김용균씨 영결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눈물 맺힌 비통한 얼굴로 “돈이 주인이고 돈밖에 모르는 사회가 용균이를 학살했다, 도살했다, 참살했다”며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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