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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지나가는 아가씨의 엉덩이를 걷어찼느냔 말야, 왜?
갑작스런 김형사의 신경질적인 고함소리에 남경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김형사는 조금전부터 폭력사건의 진술조서를 받고 있었다.
- 저놈의 가죽장화때문에...
김형사의 고함소리쯤 안중에도 없다는 식으로 심드렁히 대담하는 피의자는 머리를 박박깍은 스물 대여섯의 청년이었다.
- 뭐 가죽장화가 어쨌다구?
김형사는 아직도 울고 있는 피해자의 미끈한 다리에 신겨 있는 가죽장화를 흘깃보며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죽장화였다.
- 그게 너무 길어서 ...
여전히 심드렁한 청년의 대꾸.
- 야, 너 술 취했어?
다시 신경질적인 김형사의 고함소리가 형사실을 울렸다.
- 천만에요.
- 그럼 이거 순 미친놈 아냐?
누군가 한구석에서 쿡쿡거리며 웃었다.
- 그래 가죽장화가 좀 길다고 지나가는 남의 처녀 엉덩일 걷어차?
좀 외설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남경사가 길고 멋진 장화를 신은 여인을 대할때 가끔씩 느끼는 충동은 바로 그 가죽장화만 남기고 그녀를 모조리 벗긴 후 흐으러진 정사나 벌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의 그런 충동은 삼십대 남자의 욕정탓이라기보다는 지나 가을 압수한 포르노 필름의 정사장면들 때문이었다. 거기서는 한결같이 여자의 스타킹이나 부츠를 벗기지 않은 채 일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게 묘하게도 선정적이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남경사는 약간 기이한 느낌으로 청년을 다시 쳐다보았다. 언뜻 보아서는 우직하고 고집스러워 뵈는 인상이었지만 이마의 골깊은 주름이나 눈부분의 짙은 음영은 어딘가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시선은 흰 형사실의 회벽 한 모서리에 공허하게 박혀 있었다.
- 그 한 켤레면 몇사람의 언 발을 녹일 수 있지. 바로 저 여자가 지나가는 그 길옆에도 맨발에 고무신만 신은 아이가 엎드려 동정을 구걸하고 있었오...
- 뭐? 참, 내 기가 막혀서. 야, 누가 너보고 그런 간섭하랬어?
- 아무도 간섭 안하기에 내가 좀 했우다.
- 정말 갈수록 태산이군. 야, 너 국립호텔(교도소) 맛좀 볼래?
- 벌써 여러번 다녀 왔우다.
- 별이 몇 개야?
- 헤아릴 수도 없우다. 이번에도 한바퀴돌고 그저께 나왔오.
- 이문열 <사람의 아들> 1979년 12월 6판
+
높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여자를 보면 불안하다. 왠지 한 쪽으로 넘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내 몸이 한 쪽으로 쏠린다. 그런 불안감을 해소시켜주고 싶다. 달려가 높은 하이힐을 발로 차 평평하게 해주고 싶다. 불안감은 사라지고 여자에게 균형을 주었다는 자긍심에 뿌듯하다. 하지만 여자는 내 생각과 다르다. 자신의 행동으로 남을 불편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여자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한다. 고성이 오가지만 남자는 무심하게 스쳐지나간다. 거리의 사람들도 스쳐지나간다.
도움을 원하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도움을 주는 것이 전지자가 행하는 선행이다. 무지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찾아내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누가되든지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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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상상으로 행하면 맘이 편해진다.
누구나 전지자가 되어 행하고 싶다.
사람의 아들 이문열 지음/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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