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부 시인이 2월 28일 돌아가셨다.
뒤늦게 알게되어 검색하니 신문 몇몇에만 몇줄의 기사가 보인다. 詩가 죽었다지만 시인의 세계마저 죽은 것은 아니다.
시인의 명복을 빈다.
시인은 3번 째 시집 <백제행>의 후기에서 "어렵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승리가, 반드시 고통 속에서 쟁취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더불어 "그러기에 나는 나와 내 이웃들의 고통의 현장에서 한발자욱도 비켜설 수 없다"고 1977년에 말했다. 35년전 시인이 말하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곁에 있다. 그러기에 시인의 노래는 우리와 같이 할 것이다.
시인 김남주가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고 했다. 이 땅은 아직도 법法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세상이다. 이 땅은 아직도 詩가 필요한 세상이다.
그러기에 이성부 시인과 그의 시가 더욱 그립다.
만날 때마다
만나면 우리
왜 술만 마시며
저를 썩히는가.
저질러 버리는가.
좋은 계절에도
변함없는 사랑에도
안으로 문닫는
가슴이 되고 말았는가.
왜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들 외로움만 쥐어 뜯는가.
감싸 주어도 좋을 상처,
더 피흘리게 만드는가.
쌓인 노여움들
요란한 소리들
거듭 뭉치어
밖으로 밖으로 넘치지도 못한 채 .......
벼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울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전태일君
불에 몸을 맡겨
지금 시커렇게 누워버린 청년은
결코 죽음으로
쫓겨간 것은 아니다.
잿더미 위에
그는 하나로 죽어 있었지만
어두움의 入口에, 깊고 깊은 파멸의
처음 쪽에, 그는 짐승처럼 그슬려 누워 있었지만
그의 입은 뭉개져서 말할 수 없었지만
그는 끝끝내 타버린 눈으로 볼 수도 없었지만
그때 다른 곳에서는
단 한 사람의 自由의 짓밟힘도 世界를 아프게 만드는,
더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의 뭉친 울림이
하나가 되어 벌판을 자꾸 흔들고만 있었다.
굳게굳게 들려오는 큰 발자국 소리,
세계의 생각을 뭉쳐오는 소리,
사람들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아무도 지켜보지 않았지만
불에 몸을 맡겨
지금 시커멓게 누워 있는 청년은
죽음을 보듬고도
결코 죽음으로
쫓겨 간 것은 아니다.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 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이성부 지음/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