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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희망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 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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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잼이 다섯 종류가 전시된 A 마트와 20여 가지가 전시된 B 마트가 있다. 어느 곳에서 딸기잼이 많이 팔렸을까? 선택의 폭이 넓은 B 마트가 많이 팔렸을까? 결과는 A 마트이다. 왜냐하면, 선택해야 할 종류가 너무 많은 B 마트에서는 선택을 고민하다가 구매를 미룬다.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은 너무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면 하나하나 따지며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한다.

헤밍웨이의 저작권이 만료(? 완료)되어 무수한 번역본이 나왔다. 갑자기 번역본이 많이 나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나도 결국 합리적이지 못하기에 선택을 포기하였다. 시간이 흘러 별다른 번역이 있겠느냐는 생각에 영문판을 같이 준다는 책을 선택했다. 여러 번역본을 두루 읽을 여력도 그럴 생각도 없다. 그저 읽을 뿐이다.

여러 작품 중에서 무엇을 읽을 것이지도 고민이다. 선택해 읽은 것이 <노인과 바다>이다. 아마 이 책은 중학교 무렵 삼중당이나 마당문고이거나 아니면 어느 전집류로 읽었을 것이다. 이것도 읽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읽었다는 점이다. 다만,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때의 기억과 책을 읽은 지금의 느낌이 비슷하다. 다들 명작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명작인지 다른 이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저 한두 번 쯤은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을 뿐이다. 아직도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안소니 퀸 주연의 영화이다.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과 노벨상을 받았으니 대단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다들 이렇게 말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나도 그렇게 말해야 할 것처럼 생각된다. 헤밍웨이의 거의(?) 말년작이기에 연륜이 배어 있다. 어부 산티아고에서 헤밍웨이를 읽었다. 꼭 헤밍웨이라기보다는 노년(지금으로 따지면 많지 않은 나이지만)의 독자가 산티아노에 투영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나이가 많든 아니면 어리든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것이다.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어려운 난관에서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단지 나만이 나를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이 작품에서 너무나 많이 알려진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는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다지는 독백이다. 자신을 위로하고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말로 자신과 이야기를 한다. 또한 상황에서도 "희망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은 죄이다"고 말한다. 이러한 점이 혼자인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한 번씩 입에 올리며 자신을 생각을 다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이 아직도 읽히고 그래서 나도 읽은 이유일 것이다.

혼자뿐이라는 것을 헤밍웨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티아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며칠 간의 사투에서 끊임없이 대화한다. 자신과 물고기 그리고 자신의 전리품을 노리는 상어와도. 허공에 외치는 대화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산티아노는 잘 알고 있다.

헤밍웨이가 산티아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면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이 그려낸 인물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는 결국 혼자 뿐이었다. 헤밍웨이를 따를 것인지 산티아노를 따를 것인지는 모두 읽는 이의 선택이다. 빨간약과 파란약이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 모두 자신의 몫이다.

덧_
독자에게 좋은 번역본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평단이나 출판계에서 밥을 먹고 사는 이의 직무유기이다. 늘 주례사비평을 일삼는 그들에게 뭘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울 따름이다. 또한 출판계의 위기를 조장하며 책 팔아주기를 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몇 가지 번역본이 나오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내어 책을 권하면 좋을 터인데 이럴 가망성은 전혀없다. 죽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의견을 낼 교수, 평론가도 없을 것이고 그것을 기획하거나 편집하여 낼 잡지도 없을 것이다.

물론 몇 년전인가 교수신문에서 "최고의 번역서..." 이런 기획으로 연재를 하고 책을 낸적이 있었다. 그나마 좋은 시도이기는 하지만 교수라는 한계와 고전이라는 틀에 얶매여 시대성을 반영하지 않은 점도 있었다. 약간의 논란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시도가 매년 있으면 독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노인과 바다 세트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더클래식

노인과 바다 (반양장)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문학동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민음사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장경렬 옮김/시공사


덧붙임_
어느 번역본이나 내용을 전달받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않나. 번역본에 대한 논란이 크게 없으니...

덧붙임_둘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번역해 각각 펴낸 두 교수에게 차이점을 묻다

덧붙임_셋 2012.04.18
헤밍웨이가 이 책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글을 보다.

이건 제 평생을 바쳐 쓴 글(노인과 바다)입니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면이 담겨져 있고 동시에 인간의 정신세계도 담고 있지요. 지금으로서는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입니다. (찰스 스크리브너에게,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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