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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11월 13일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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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領域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班指의 무게와 총탈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장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_《전태일평전

 

또다시 11월은 오고, 13일이다. 반세기 가까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늘 거기에 있고, 이들은 아직도 이곳에 있다. 아름다운 청년이 있던 이곳은 여전히 이곳이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이 아닌 달이다. 11월은 '결코 죽음으로 쫓겨 간 것'이 아닌 아름다운 청년의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고 있다.

 

 

전태일君
_이성부

불에 몸을 맡겨
지금 시커렇게 누워버린 청년은
결코 죽음으로
쫓겨간 것은 아니다.

잿더미 위에
그는 하나로 죽어 있었지만
어두움의 入口에, 깊고 깊은 파멸의
처음 쪽에, 그는 짐승처럼 그슬려 누워 있었지만
그의 입은 뭉개져서 말할 수 없었지만
그는 끝끝내 타버린 눈으로 볼 수도 없었지만
그때 다른 곳에서는
단 한 사람의 自由의 짓밟힘도 世界를 아프게 만드는,
더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의 뭉친 울림이
하나가 되어 벌판을 자꾸 흔들고만 있었다.

굳게굳게 들려오는 큰 발자국 소리,
세계의 생각을 뭉쳐오는 소리,
사람들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아무도 지켜보지 않았지만

불에 몸을 맡겨
지금 시커멓게 누워 있는 청년은
죽음을 보듬고도
결코 죽음으로
쫓겨 간 것은 아니다.

 

전태일
_정호승

쓰러진 짚단을 일으켜 세우고
평화시장에서 돌아온 저녁
솔가지를 꺾어 군불을 지피며
솔방울을 한 줌씩 집어던지면
아름다운 국화송이를 이루며 타오르는 사람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하늘과 가까워져
이제는 새벽이슬이 내리는 사람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_정희성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 아메리카 원주민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

 

덧붙임_
전태일 詩는 이성부의 것밖에 몰랐다. 오늘 정호승의 전태일을 보았다. 《새벽편지》에 있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래도 <전태일>은 이성부의 것이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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