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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아름다운 것은 꼭 같은 색깔이 아니더라도 모두 아름다우며, 추한 것은 꼭 같은 형상이 아니더라도 모두 추한 법이다 :《신어 新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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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정치 이념이 통치이데올로기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책 《신어》. 도덕적 순수주의를 중시하여 공자, 맹자 외에는 이단으로 여겨 순자와 그를 따르는 육가를 주류 유학자는 철저히 배척하였다. 순수 유학과 더불어 '유학 현실주의' 또한 유가사상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역자는 이를 "중국이 저 거대한 규모로 통합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나라 때 유가를 중심으로 사상이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말기에 나온 《순자》 등은 이러한 학문적 통합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이며, 육가의 《신어》도 그 연장선에 있다."라고 한다.

육가가 《신어》를 쓴 유래는 다음과 같다. 유방은 "나를 위해 진이 천하를 잃게 된 까닭과 내가 천하를 얻게 된 까닭, 그리고 예로부터의 국가적 성공과 실패에 대하여 글을 써주시오."라고 말했다. "육가는 국가 존망의 증험에 대하여 거칠게 서술하여 모두 12편을 썼다. 매 1편씩 상주할 때마다 고조가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좌우 신하는 만세를 불렀는데 그 책 이름을 《신어》라 부른다."

 

 

도를 품은 사람은 그에 맞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하고, 박옥을 가진 사람은 기술자의 가공을 기다려야 합니다. 도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야 제대로 발휘되며, 좋은 말은 훌륭한 말몰이꾼을 만나야 능력을 발휘하며, 현자는 성인을 만나야 제대로 쓰이며, 변론은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야 제대로 소통되며, 경서는 깨친 사람을 만나야 제대로 전파되며, 사리는 분별력 있는 사람을 만나야 제대로 밝혀집니다. 따라서 일을 관리하는 사람은 그에 맞는 규칙을 지켜야 하고, 약을 먹는 사람은 좋은 처방을 따라야 합니다. 좋은 책이 꼭 공자의 문하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며, 좋은 약이 꼭 편자의 처방에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도에 합치하는 것이면 모두 좋으며, 모범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잘 저울질하여 권력을 행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_<술사 術事>, 42쪽

성자를 지팡이로 삼으면 제帝가 되고, 현자를 지팡이로 삼으면 왕王이 되고, 인자를 지팡이로 삼으면 패覇가 되고, 의로운 사람을 지팡이로 삼으면 강자强者가 됩니다. 중상모략을 일삼는 사람을 지팡이로 삼았다간 나라가 멸망하고, 도적을 지팡이로 삼았다간 목숨을 잃게 됩니다. _<보정 輔政>, 46쪽

일하는데 어떤 사람은 매우 잘하는데도 잘한다는 칭찬을 받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잘못하는데도 잘한다고 칭송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이 잘못한 데다 논평하는 사람이 그릇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동이 세속의 요구에 부합되거나, 말이 세인의 귀에 순응하는 것은 모두 윗사람의 뜻에 영합하기 때문이요, 윗사람의 취지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_<변혹 辨惑>, 58쪽

세상이 쇠락해가고 도덕이 상실된 상황은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군주 자신이 그런 행위를 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입니다. 사악한 정치는 사악한 기운을 낳으며, 사악한 기운은 재앙과 이변을 낳습니다. _<명계 明誡>, 112쪽

《주역》에 "가옥이 튼실하고 그 위에 덮개를 눌렀으니, 지게문을 들여다보려 해도 고요하여 아무도 없는 듯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없다는 말은 그 어떤 사람도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다스릴 사람이 성현이 없다는 말입니다. _<사무 思務>, 123쪽

선한 사람은 반드시 그런 선량한 군주가 있기에 몰려드는 것이며, 악한 사람은 반드시 그런 불량한 까닭이 있기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공연히 지어지지 않으며, 화와 복은 제멋대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직 군주의 마음이 향한 바와 군주의 의지가 실천하는 바에 따라 결정될 따름입니다. _<사무 思務>, 124쪽

역자는 짧은 이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어 新語》는 도덕의 이상 국가를 꿈꾼 선진 유가의 정치 이념이 제국의 정치안정이라는 통치이데올로기로 전환해 가는 기초를 다져준 매우 중요한 책이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중시되지 않았던 것은 내용상 여러 사상이 융합되어 있거나 통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특히 맹자를 추종한 송나라 이후 성리학자가 도덕지상이란 순수성만을 강조해 순자 등 유가내의 현실주의자를 비판하면서 《순자》, 《신어》 등은 주류 유학에서 완전히 배척되었다. 하지만 순자, 육가로 이어지는 유학 현실주의자야말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가사상의 또 다른 한 축이었음을 상기하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짧은 책이지만 꼭 읽기를 권한다. 군주의 도리를 말하지만 리더의 도리와 통한다. 지도자가 없는 이 땅은 육가의 12편을 받아들인 유방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모든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른다. "아름다운 것은 꼭 같은 색깔이 아니더라도 모두 아름다우며, 추한 것은 꼭 같은 형상이 아니더라도 모두 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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