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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5년 6월 1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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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발명>은 이탈리아의 역사학자·저널리스트가 자국 이탈리아의 뒷골목에서 세계 금융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서구 문명의 중심지였다. 문명의 중심이란 건 곧 돈이 오가는 길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가 서구 문명의 중심일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교황의 존재다. 각 가톨릭 국가에서는 바티칸으로 갖가지 종류의 화폐를 보냈기에, 교황청에는 자연스럽게 환전상이 활동을 시작했다. 은행 역시 환전상의 활동에서 그 기원을 찾는 학설이 있다. 환전상들은 수수료를 받아 돈을 버는 대신, 위조 화폐를 감시하는 등 공적인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국가는 환전상, 혹은 훗날 은행가의 장부가 공증서의 효력을 가진 것으로 간주했는데, 이는 신용거래의 역사가 시작됐음을 뜻한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해상무역은 보험을 태동시켰다. 바다 위에서는 풍랑, 해적, 선상 반란 등 한순간에 모든 자산을 잃어버릴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상존했기 때문이다. 16세기 들어 해상운송보험은 크게 성행했다. 심지어 수도회까지 보험에 뛰어들었다. 베네치아 주데카 섬의 수도회는 화물, 선박, 선원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주는 대가로 보험 원금의 0.08%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의 기독교 세계가 “돈은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여겼다는 데 있었다. 특히 이자수익을 추구하는 고리대금업은 끔찍한 죄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대출과 이자는 한 사회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윤활유와 같았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몇 가지 잔꾀를 통해 해결됐다. 예를 들어 대출 계약서에는 ‘무이자’를 명시했지만, 실제론 이자를 받는 대신 집이나 토지를 빌려쓰는 식이었다.

돈이 필요한 소시민들은 롬바르도라 불리는 이들을 찾았다. 오늘날로 치면 소액담보대출이다. 롬바르도는 유럽의 절반을 아우르는 담보대출 은행을 운영했다. 서민들은 롬바르도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멸시했지만, 권력자들은 내심 이들을 환영했다. 공권력은 이들에게 혐오스러운 고리대금업을 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벌금을 물렸는데, 이는 말이 벌금이지 사실상 면허세였다. 롬바르도들은 벌금으로 죄사함을 받은 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돈의 발명>은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잔머리’가 금융과 관련된 각종 제도와 기구들을 만들어냈음을 알기 쉽게 보여준다.

돈의 발명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김희정 옮김/책세상

중세 이탈리아 뒷골목에서 찾아낸 돈과 금융제도의 기원
이탈리아 뒷골목에서 시작된 돈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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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중국의 힘을 빼기 위해 스탈린이 기획하고 지휘한 전쟁이었다.’

한중친선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최근 펴낸 ‘6·25전쟁과 중국’에서 전쟁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조지프 스탈린의 6·25전쟁 전략은 김일성을 미끼로 삼아 전쟁을 촉발해 미군을 불러들이고 중국을 끌어들여 한반도를 미·중 대결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중 접근을 차단하는 ‘이이제이’ 전략을 완성하려는 속셈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성공하려면 북한군의 남한 점령이 성공해서는 안 되며 시간을 끌면서 미·중이 진흙탕싸움을 하도록 해야 한다. 결국 전쟁은 스탈린의 의도대로 아무런 결론 없는 전쟁으로 귀결되었고 한반도는 초토화했다. 이 전 장관은 일본 도쿄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해 이 책을 냈다.

이 전 장관이 책에서 밝힌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스탈린이 전쟁 의도를 직접 고백한 것이다. 1950년 8월 27일 필리포프(스탈린의 가명)가 프라하 주재 소련 대사를 통해 클레멘트 고트발트 체코 대통령에게 전한 비밀 전문 내용이다. 당시 동유럽 공산권에서는 왜 스탈린이 미군의 한반도 개입을 용인했느냐는 비판론이 비등했다. 이에 스탈린은 1950년 6월 27일 한국 파병을 결정하는 유엔안보리 회의에 소련 대표가 참석하지 못하도록 한 저의를 고트발트에게 설명해야 했다.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은 ‘6·25전쟁과 중국’에서 6·25는 소련의 스탈린이 중국 마오쩌둥을 견제하기 위해서 기획한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조지프 스탈린(왼쪽)과 마오쩌둥.

애초 스탈린의 전쟁계획서에는 서울 점령까지만 적시돼 있었다. 실제 소련은 김일성에게 약속한 한강 도하 장비를 제때 제공하지 않았다. 아울러 북한군 지휘부는 서울을 점령한 후 3일간이나 주춤했다. 김일성은 겉과 속, 말과 행동이 다른 스탈린의 지시에 불평했다.

김일성이 여세를 몰아 단시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갔다면 조기 승리도 가능했다. 그렇게 됐다면 미군의 부산항 상륙이 불가능해져 스탈린은 자신의 의도대로 전쟁을 끌어갈 수 없다. 미군이 들어오고, 중공군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김일성이 너무 빨리 부산을 점령하거나 완전히 승리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전쟁 초기 소련은 북한군 지원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 공군력을 제공하지 않았고 방공무기나 최신 도하장비를 주지 않았다. 스탈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을 반겼으며, 10월1일 유엔군이 38선을 넘자 마오쩌둥에게 파병하라고 요구했다.

6·25전쟁은 스탈린이 중국의 힘을 빼 마오쩌둥을 제압하기 위한 책략이었다. 김일성이 전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한반도 공산화 통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고, 그는 스탈린 ‘장기판’의 졸에 불과했다. 스탈린에게 마오쩌둥은 공산혁명 초기부터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스탈린은 옛 유고의 요시프 티토가 떨어져 나간 이후 거대 중국을 가장 우려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영토 갈등이었다.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이후 스탈린 생일 축하차 모스크바를 방문한 자리에서 스탈린에게 요구했다. 신장위구르 지역, 만주와 북한 땅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이들 지역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참전 대가로 소련에 떼어준 점령지였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싫어했고 중국의 힘을 뺄 궁리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이 새롭게 동맹을 맺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동맹을 위해 1950년 1월 한반도와 대만을 미국의 방어지역에서 제외한다는 ‘에치슨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스탈린은 이런 미·중동맹을 깨기 위해 한반도에서 미·중이 싸우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6ㆍ25전쟁과 중국
이세기 지음/나남출판

中 제압 위해… 스탈린 6·25전쟁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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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나 취향은 물론 모든 예술 양식은 계급과 계급 간의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는 전장이다. 실내악의 발전이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 능력과 상응하며, 현악 4중주의 탄생이 민주주의의 발전과 시민 계급의 사적인 정서를 반영했던 것처럼, 18세기의 지배계급은 오페라의 두 장르 가운데 오페라 세리아(비극)를 오페라 부파(희곡)보다 더 선호했다. 영웅이나 높은 신분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비극은 당대 상류계급의 가치와 지배의 미덕을 나타내 주었으나, 희극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촌극으로 여겨졌다."(152쪽)

"많은 일본인들은 천황과 천황 숭배가 아주 옛날부터 오늘과 같은 고정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유구히 이어져 온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동서양의 역사를 고찰해 보면, 일본인만큼 군주를 함부로 다룬 나라는 없었다. 천황은 폐위되거나 암살되었고, 유배형을 받거나 살해를 피해 유배지의 섬에서 도망차기도 했다. 애초에 일본 천황에게 '신의 현신'이라는 오늘날의 후광은 있지도 않았으며, 도쿠가와 시대(1600~1868)까지만 해도 일반 백성들은 천황의 존재조차 몰랐다."(250쪽)

소설가 장정일이 2006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던 인문학 독서 에세이 '장정일의 공부'(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개정판을 냈다. 이번 개정판은 내용상 약간의 수정과 보충을 했으며, 초판에 없던 부록 '장정일이 공부한 책 목록'을 추가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학 졸업 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학벌은 학창시절 성실성 여부와 인재를 판단하는 기준이지만, 대학이나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공부는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평생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만연한 학벌주의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한때(청소년기)의 고역'이 되어버린 공부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우리가 잊고 있던 공부의 진짜 목적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세속적 성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공부의 가치를 격상시킨다. 문학가로 살며 정치나 사회 이슈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궁금증을 풀고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광수, 모차르트, 미국의 극우파, 조봉암, 엘리자베스 1세, 바그너 등 23개 화두를 정하고 관련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나간다. 장정일의 공부 과정을 따라가며 진보, 보수, 친일파, 민주주의, 전체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늘 논란이 되는 개념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며 무비판적인 사유 체계도 바꿀 수 있게 된다.

"미완의 근대가 문제라면 우리는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하나의 가정과 결론을 가지고 있다. 즉 일제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우리 식의 내재적 발전을 이루었을 거란 편의적인 가정과, 지금 겪고 있는 파행은 모조리 잘못 이식된 일본 잔재 때문이란 결혼이 그것이다."(108쪽)

"자신의 철학적 이념을 히틀러를 통하여 구현하고 싶어했던 하이데거는 끝내 정치적 오류를 시인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총장으로 선출되기 전에 오랜 동료였던 야스퍼스를 향해 '우리는 현 상황에 개입해야만 한다'고 말했던 이 철학자는, 스스로 정치적 오류를 시인하는 것이 곧 철학적으로도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으로 확신했을 게 분명하다."(279쪽)

장정일은 서문에서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라며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부의 내용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시안에 불과하고,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감히 '장정일의 공부'라는 제목으로 내놓는 것은, 원래 공부란 '내가 조금 하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다 하면 당신이 할 게 뭐 남아 있는가?"라며 "이 책을 읽어 줄 젊은 독자들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보고 나서 '여기서부터는 내가 더 해 봐야지'하고 발심(發心)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걸 느끼게 하지 못했다면, 전적으로 내가 부족한 탓이고"라고 덧붙였다.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지음/알에이치코리아(RHK)

"공부는 자발적인 욕구로 하는 것"…'장정일의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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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일신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있다. 흔히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오니즘으로 팔레스타인을 침략해 전쟁이 발생했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일본의 중동 지역 전문 연구가 우스키 아키라 교수는 저서 ‘세계사 속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종교 대립이 아닌 국제분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팔레스타인 분쟁을 단순한 종교 대립으로 다루지 않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지역의 대립을 일으킨 세계사적 구조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저자는 유럽 기독교 사회의 유대인 박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유럽 기독교 사회가 만들어낸 유대인 문제의 결과물이라는 게 핵심이다.

기독교는 유대교를 종교로 부정하면서 차별했다. 특히 ‘십자군 전쟁’을 거치며 유대교를 무슬림과 내통하는 불순세력으로 인식, 더욱 박해했다. 저자는 이 같은 유럽 기독교의 유대교도 박해가 훗날 모든 비유대계 시민을 차별하는 유대 민족국가를 탄생시켰다고 분석한다. 이어진 ‘미소 냉전’ 체제가 비극을 불렀다. 미국은 공산주의를 봉쇄하려는 목적으로 중동전쟁에 관여했고, 이에 대응하는 소련은 중동에 공산주의 정권을 설립,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무장단체가 결성돼 이슬람식 저항 운동이 태동하게 했다는 접근법이다. 저자는 미국이 이들 이슬람 무장단체를 군사 지원하며 훗날 ‘탈레반’이 자라나는 밑거름을 제공하는 자충수를 뒀다고 비판한다.

중동전쟁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막을 내린 뒤 유엔(UN)은 팔레스타인을 옵서버 국가로 인정했으나,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같은 분쟁 당사국과 관련국은 인정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미 팔레스타인 민족국가가 독립하면 문제가 어떻게든 풀릴 수 있었던 시기는 지났다고 진단한다. 최근 ‘이슬람 국가’(IS)가 극성을 부리면서, 중동 전체에 대한 혐오감이 짙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오늘날 유대인을 싸잡아 비난하며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양 일반화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과 중동 평화를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유대교 교의를 일괄적으로 부정했던 초기 기독교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왜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는지’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밑바닥에서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사 속 팔레스타인 문제
우스키 아키라 지음, 김윤정 옮김/글항아리

'십자군 전쟁'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인?
뒤집어보는 팔레스타인
국제 분쟁 최전방 팔레스타인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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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우스 스캔들'은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BBC 역사 프로그램 진행자 루시 워슬리가 농가에서 궁전까지를 망라하는 집의 역사를 다룬 TV 시리즈 '벽이 말할 수 있다면'에 참여한 뒤 내놓은 책이다.

침대의 역사, 속바지, 질병, 성병, 수면의 역사, 침대 살인, 목욕의 몰락과 부활, 화장과 화장실, 욕실의 탄생, 양치질, 하수 설비의 기적, 화장지의 역사, 잡동사니의 역사, 난방과 조명, 누가 청소를 할 것인가, 공손한 미소와 매너, 죽음과 장례식, 요리에 익숙했던 남자, 부엌의 정체, 악취의 매서운 위력, 냉장고, 소스의 정치적 결과, 힘겨운 설거지 등 가정생활에 얽혀있고 때로는 낯 뜨겁지만 그만큼 더 매력적인 인간의 생활사를 그리고 있다.

워슬리는 "주택을 구성하는 네 개의 핵심적인 방(침실, 욕실, 거실, 부엌)을 거쳐 오면서 사람이 침대, 욕조, 탁자, 화덕 등에서 실제로 했던 일을 탐색하고, 소스 휘젓기, 모유 수유, 양치질, 자위 행위, 옷 차려입기, 결혼 등 온갖 행위를 살펴봤다"며 "'하우스 스캔들'에는 사소하고 이상하고 기발하며 얼핏 잡다해 보이는 세부 사항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혁명과 같은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보여 주는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사람이 많은 시간을 보냈던 집의 공간을 탐험하면서 각각 방의 건축학적 역사에서부터 실제로 침대 위에서, 욕조 안에서, 테이블과 난로 앞에서, 조리대 앞에서 어떻게 생활하였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이를 통해 과거의 침실은 사람들로 붐비는 다소 공적인 장소였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오로지 취침과 성생활을 위한 곳이 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전한다.

욕실 또한 얼마 전까지는 따로 분리된 공간이 아니었고,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개인의 위생 관념이 욕실 공간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통찰도 보여 준다. 거실은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기면서 생겨난 공간으로, 집주인이 손님들에게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워슬리에 따르면, 음식은 정치적인 것이고 부엌은 예로부터 식품 안전, 운송, 기술, 계급과 성별을 둘러싼 극심한 싸움의 현장이었다. 씹기와 소화의 역사에는 가공식품의 거듭된 성장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우스 스캔들
루시 워슬리 지음, 박수철 옮김/을유문화사

먹고 자고 싸고 노는 집의 내밀한 역사
100여년 전 침실은 잠과 섹스 공간이 아니었다
짐작도 못했던 집의 역사와 비밀…'하우스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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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가 220인승 비행기를 48인승으로 개조한 까닭은 뭘까. 월급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책정되는 걸까. 최저임금을 강요하면 일자리가 줄어들까….

생활 속 다양한 경제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 나왔다. 모셰 애들러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의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이야기다. 이 책 주제는 집세, 교육비, 의료보험, 월급까지 망라한다. 비행기 좌석과 관련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독점기업은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재화 가격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소비자의 구매 의향을 조사해 최대 이윤을 뽑아낼 수 있는 선에서 값을 매긴다. 이때 정해진 가격은 완전경쟁시장의 균형가격보다 높다. 구매 가능한 모든 소비자에게 재화를 팔았는데도 생산량이 남는다면 독점기업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낮은 소득수준 등의 이유로 해당 가격에 재화를 살 생각이 없는 특정 소비자 그룹에 기존 공급과 별개로 싼값에 파는 것이다. 이 경우 약간의 이윤을 포기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생산량이 넘치더라도 추가 공급을 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미 최대 이윤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 소득 격차가 작으면 독점기업이 부유층에게만 제품을 판매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 반대로 격차가 크면 가난한 사람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 부자와 비교해서 훨씬 낮다. 이렇게 되면 독점기업 입장에선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중산층 이상 계층만 상대하는 쪽이 이득이다.

이와 관련해 싱가포르항공은 초대형 항공기 A380 좌석을 모두 단독 침대로 바꿨다. 그 결과 승객을 471명밖에 수용하지 못하게 됐다. 프랑스 에어오스트랄 항공사의 같은 제트기가 840명을 태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 선택이다. 2008년 파산하긴 했지만 220인승 비행기를 48인승으로 개조한 EOS항공 사례도 있다.

중산층까지 배제한 셈이다. 물론 대부분 항공사는 부유층과 중산층 승객을 모두 태우기는 한다. 중산층 승객이 없다면 현재 운항 중인 비행편을 모두 채우기에는 승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부유층 승객은 특혜가 제공되지 않으면 중산층 승객과 똑같은 비행기를 타면서 돈을 더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협소한 일반석과 넉넉한 일등석이 공존하는 현상이 생긴다. 공연 시장도 이와 비슷하다.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모든 좌석에 같은 가격을 부과한 공연은 전체 73%나 됐다. 하지만 2003년엔 26%로 줄었다. VIP와 일반 관객을 분리해 각각 다른 값을 매기는 현상이 일반화됐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VIP 티켓값은 가장 많이 올랐고, 가장 저렴한 관람석은 제일 적게 올랐다. 이 덕분에 영국, 미국 록스타들은 1992년부터 10년간 공연 횟수를 14% 줄였지만 소득은 20% 올랐다.

독점기업의 가격 정책이 윤리적 문제를 낳기도 한다. 특히 사람 목숨을 다루는 제약업계가 그렇다. 특정 기업이 개발비와 이윤 보전을 위해 의약품에 높은 가격을 매기게 되면 가난한 사람은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저자는 “제1세계와 제3세계 나라 환자 간에 구매력 차이가 크다 보니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1세계 수요를 맞출 만큼만 치료제를 생산하고 있다”며 “3세계 환자들은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는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 임금 책정 과정을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농부가 순무를 잡아당기고, 아내가 농부를 잡아당기고, 아들이 엄마를, 딸이 오빠를 잡아당겼다. 그래도 순무는 뽑히지 않았다. 부를 사람이 더는 없어 옆집 사람을 불렀다. 그렇게 해야 순무가 쑥 하고 뽑혔다. 그렇다면 순무를 어떻게 나눠 가져야 할까?”

저자는 ‘근로자가 생산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임금이 정해진다(신고전파)’와 ‘계급 간 협상에 따라 결정된다(고전파)’는 두 가지 임금이론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순무 생산 과정을 봐서는 기여분을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이들이 현실에 충실한 결말을 낸다면 목소리가 큰 누군가가 가장 큰 몫을 챙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모셰 애들러 지음, 이주만 옮김/카시오페아

VIP 티켓값이 ‘껑충’ 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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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2200만건의 중고차 매매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주행거리가 7만9900~7만9999㎞ 사이인 자동차는 8만~8만100㎞ 사이에 있는 차보다 평균 210달러 비싼 값에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7만9800~7만9899㎞ 사이에 있는 차들과의 가격 차이는 10달러밖에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행거리의 차이는 같지만 단지 앞자리 숫자가 8로 바뀌면서 가격이 대폭 떨어진 것이다.

사람들의 이런 경향을 ‘왼쪽 자릿수 편향’이라고 부른다. 자릿수가 많은 숫자를 볼 때 왼쪽 숫자에 가장 큰 비중을 둬 정보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런 편향은 중고차 시장에서처럼 금전적 손해를 보기도 한다. 판매업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속성을 이용해 1만㎞ 단위가 올라가기 전의 자동차를 내놓고 비싼 값에 팔곤 한다. 7만9999㎞ 자동차보다 8만1㎞ 차량을 210달러 싸게 사는 편이 합리적 소비인 것이다.

사고의 오류는 이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잘못된 판단 50가지 사례를 정리해 보여준다. 저자들은 “사고의 오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며 “잘못된 생각으로 돈을 축낼 뿐만 아니라 전 재산을 날리기도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행동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경제적 선택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본다. 행동경제학은 전통적 경제학과 달리 인간의 완전한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따금 보여주는 불합리한 행동의 배경에 어떤 논리가 숨어있는지 해명한다. 각각의 사례 말미에 간단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준다.

‘작은 선물’ 때문에 큰 소비를 하는 사례도 소개됐다. 학교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한 편지를 보낼 때 세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엔 편지만 보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룹에는 각각 엽서 한 장과 네 장을 동봉했다. 효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편지만 받은 그룹은 수신인 중 12%만 기금을 보냈다. 엽서 한 장을 받은 곳에선 14%로 늘어났고, 네 장을 받은 그룹은 21%가 기금을 냈다. 프랑크푸르트의 한 레스토랑은 고객에게 원하는 대로 뷔페 음식값을 내게 했다. 평소 가격은 7.99유로였는데 고객들은 평균 6.44유로를 냈지만 방문객이 60% 늘어나 이익은 30%가량 증가했다. 저자들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일단 받고 나면 애초에 원치 않던 보답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며 “모든 선물은 그것이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밖에도 정보 과잉에 따른 정보 처리의 오류, 왜곡된 비교에서 오는 ‘차별성의 편향’,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선택에 혼란을 느끼는 ‘선택의 역설’, 커다란 잘못도 반복해서 들으면 믿어버리는 ‘반복의 오류’, 똑같은 것인데도 자신의 소유라는 이유로 과오를 범하는 ‘보유 효과’ 등 다양한 사고의 오류를 제시한다.

저자들은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조언의 배후에는 적지 않은 낙관론이 깔려 있다”며 “우리는 학습능력을 신뢰하며 인간은 자신의 결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고의 오류
비난트 폰 페터스도르프.파트릭 베르나우 외 9인 지음/율리시즈

돈을 축내게 만드는 심리적 오류
공짜폰에 낚인 노예계약 등 50가지 ‘호갱’ 사례
왜 20000원보다 19900원에 선뜻 지갑 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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