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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누구의 총리였을까 – 김남주의 ‘어떤 관료’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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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시대를 따라 바뀐다.
어떤 사람은 시대를 거슬러 저항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시대가 어떻게 바뀌든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한덕수는 그런 사람이다.
군사정권이었든, 문민정부였든,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늘 공직에 있었고, 늘 관료였다.
마침내 윤석열 정권에서 다시 총리가 되었다.

처음엔 그게 대단한 경력처럼 보였다.
경험이 많고, 행정에 정통하고, 균형 잡힌 어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의 일관됨은 국민을 향한 충성심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복무였다는 걸.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 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를 다시 꺼내 읽는다.
시인은 말한다.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시 속의 관료는 시대를 초월한다.
식민지에도 있었고, 군정에도 있었고, 유신에도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들은 옷만 갈아입었을 뿐
충성의 대상은 언제나 ‘윗사람’이었다.

한덕수는,
윤석열 정권이 언론을 누르고, 검찰을 앞세워 정치를 집어삼키고,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조차
침묵했고, 정권을 옹호했고,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늘 성실하게 말했고,
늘 공정하다고 주장했고,
늘 법과 정책을 앞세웠지만,
그 모든 태도는 결국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것이었다.

김남주는 시의 마지막에서 말한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오늘 이 자리에서 확신한다.
내란에 가까운 폭정을 펼치는 정권 아래서도
그는 ‘총리’라는 직함을 달고
성실하게, 정직하게, 공정하게
그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그는 누구의 총리였는가?”

그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대신 대답하자.

“국민의 총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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