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재즈, 그 안에 우뚝선 '거인' 의 삶
[한겨레 2004-07-09 17:27]
콜트레인의 예술·실천 통해 본 재즈와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
“흑인 연주자가 나팔을 불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즉흥연주가 되고 새로운 창조가 된다. 그것은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것, 즉 그의 영혼인 것이다. 재즈는 미국에서 흑인들이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가 1964년 뉴욕의 한 정치 집회에서 한 말이다. 이 자리에 청중으로 앉아 있던 재즈 연주자 존 콜트레인은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늘날 피부색을 불문하고 전세계 애호가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재즈는 사실 백인의 억압과 인종차별로 고통받던 미국 흑인들 속에서 탄생한 음악이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미국흑인들, 즉 아프로-아메리칸은 재즈를 통해 예술적 창조성을 마음껏 뽐냄으로써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편견과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것이다. 그 한가운데에 50·60년대 재즈계를 주름잡은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이 있다.
192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햄릿에서 태어난 그는 악기 연주에 능한 부모 덕에 어릴 때부터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다. 흑인과 백인이 격리돼 살아가는 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진작부터 인종차별에 이골이 났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필라델피아 공장에서 일하다 색소폰을 처음으로 접했다.
재즈 연주자의 길로 들어선 그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건 1949년 디지 길레스피 밴드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만든 <카인드 오브 블루>와 솔로 앨범 <자이언트 스텝스>는 재즈사에 남는 명반으로 꼽힌다. 그가 결성한 퀄텟(4인조 밴드)이 1964년 발표한 <어 러브 슈프림>의 커다란 성공 이후 그는 즉흥연주의 극치인 ‘프리 재즈’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운동과 맬컴 엑스의 급진과격 운동으로 대표되는 흑인 민권운동이 한참 달아오를 때, 그는 백인 인종차별주의자의 테러에 대한 분노를 <앨라배마>라는 곡으로 표출하고 민권운동 후원을 위해 연주회를 여는 등 저항운동에 동참했다. 특히 프리 재즈를 통해 자유를 향한 욕구와 열정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1967년 불과 마흔의 나이에 그가 건강 악화로 숨지자 프리 재즈는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마치 마틴 루터 킹과 맬컴 엑스의 피살이 민권운동의 해체로 연결된 것처럼. 그러나 그의 음악과 그 안에 담긴 저항의 정신은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존 콜트레인을 비롯한 재즈의 역사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를 나란히 담은 이 책은 음악애호가와 사회운동가 모두가 탐낼 만하다.
< 출처: 네이버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