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에 이문열 소설 <익명의 섬>이 실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신경숙의 미국 진출이 성공적이라는 기사를 오래전에 보았다. 이번 기사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쁘다. 이문열이 보수주의 처지를 대변하고 페미니스트를 싸잡아 비판하는 등 한동안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다. 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론 보도는 전달의 의미가 강하다. 물론 단편소설이 번역되어 실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느냐마는 만일 민족시인이라 불리는 이의 시 몇 편이 번역되어 실렸다면 이런 반응일까? 또 부질없는 상상을 한다.
내용은 잘 알려졌다. 비교적 짧은 단편이다. 병신이라 불리는 깨철이는 그 마을을 유지하는 익명의 섬이다. 성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익명의 어떤 것이 필요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때, 착각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의 눈길에서 희미한 웃음 같은 것을 보았다." 깨철이의 '희미한 웃음'은 주인공인 나에게는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하지만 떠나는 순간에는 묘한 희열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익명의 섬이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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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녀에게도 대부분의 그 마을 아낙네처럼 혹은 2년 전 어느 날의 나처럼, 분출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폐쇄되고 억제된 性이 있다면, 역시 그 익명의 섬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후임자에게 충고하는 대신 밉살맞을 만큼 끈끈하게 그녀를 살피는 깨철이를 약간 쌀쌀맞은 눈길로 쏘아주었다. 그도 그런 내 눈길을 맞받았다. 그때, 착각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의 눈길에서 희미한 웃음 같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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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일면 충족시켜주는 빈틈없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면서 성 윤리의 허구성과 인간집단의 질서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덧붙임_
마당문고사, 1984년 5월 초판 1쇄 (111. 사과와 다섯 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