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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낀 한마디

외래어 표기에서 관용을 허용함이란 적당히 알아서 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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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을 루쉰으로 부른다. 아니 루쉰을 노신으로 부른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외국어 표기법의 혼란으로 같은 이름을 다른 이름처럼 부른다. 이름뿐 아니라 지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부르는 이름이 그나라 사람이 자국민이 말하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을까? 아니다.

특히 중국 지명과 인명은 더욱 그러하다. 《노신 평전》(실천문학사)의 역자 김태성의 '일러두기'는 무심코 넘기기말고 곱씹어 생각해야 한다. 잉글랜드(아니 이것도 유나이티드 킹덤으로 불러야 맞다)는 영국, 아메리카는 미국으로 부른다. 반면 중국은 차이나가 아니라 중국으로 부른다. 일본도 재팬이나 니폰이 아닌 일본으로 부른다. 왜일까? 이유를 알 수 없다. 일관된 규칙이 없다. 독일은 독인인데 프랑스는 불란서로 부르면 안된다. 무슨 기준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정하고 있다. 잘못된 표기법으로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

외래어표기법은 "현지에 해당하는 국가에서 쓰는 언어 표기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웃기는) 규정이 존재한다. 바로 "관용을 따른다"는 규정이다. '관용'이라고 쓰고 '알아서 적당히'라고 이해하면 그 뜻을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면 "중국 및 일본의 지명 가운데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라는 조항이다. 원칙은 아니지만 관용이 있으면 허용한다는 것이다. 관용의 기준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적당히 알아서' 표기하면 된다.

김태성의 뜻을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취지는 공감한다. 특히 "번역과 출판은 해석과 전달을 위한 것이지 외국인의 인증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해가 먼저이다. 즉 표기는 소통을 위한 것이지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명과 지명의 혼동으로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인식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인것 처럼.

이 책은 옮긴이의 뜻에 따라 중국어의 인명 및 지명 표기에 있어서 한국어 발음을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세계적으로 인명과 지명을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나 이는 대부분의 언어가 소리 언어이기 때문이다. 뜻 언어인 중국어의 특성을 무시하여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번역과 출판은 해석과 전달을 위한 것이지 외국인의 인증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중국어의 인명 및 지명 표기는 발음과 뜻을 함께 전달 할 수 있는 우리 식 표기가 바람직하다. 예컨데 '北京'을 '북경'으로 읽을 경우 '북쪽의 도성'이라는 의미가 분명해지지만 '베이징'으로 표기할 경우 소리만 알 수 있을 뿐 그 이름에 내포된 의미는 알 수 없다.

3. 중국어의 발음체계와 우리말의 발음체계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말 표기로는 중국어의 세분화된 발음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것도 큰 이유이다. 중간음의 처리도 혼란을 야기한다. 예컨대 발음하는 사람에 따라 베이징, 뻬이징, 베이찡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어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역자의 다른 책 일러두기 中

중국어 인명과 지명의 표기는 우리가 한자어를 읽는 발음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1978년 중국의 개혁 · 개방 이후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현재 알려지고 있는 인물들은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한다. 다만 노신의 경우, 루쉰으로 일반화하여 점점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독자의 편의를 위해 이 책의 제목에 한해 '루쉰(Lu Xin)'으로 표기한다.

보고 듣고 느낀 한마디
_201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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