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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2년 9월 3주 새로 나온 책

1931년 일제 관동군이 류탸오후(유조호) 폭파사건을 날조해 만주침략(만주사변)을 본격화한 다음해에 세운 괴뢰국가다. 폭파사건이 일어난 날이 9월18일이고 그날은 중국인에겐 국치일이다. 중국 전역에서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문제로 사상 최대의 반일시위가 벌어진 지난 18일이 바로 그날이다.

1945년 8월 해체된 만주국이 남긴 유산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박정희(1917~1979)와 기시 노부스케(1896~1987), 그리고 그들이 만든 전후 일본과 대한민국이라는 게 이 책 내용이다. 바꿔 말하면 전후 한·일의 원류가 만주국이라는 얘기다.

경북 문경에서 훈도(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박정희가 죽음으로써 일제와 천황을 받들겠다고 맹세하는 비장한 혈서를 신징(지금의 창춘)에 있던 만주군관학교에 보낸 건 1939년 초. 그게 유별났던지 <만주신문>(1939년 3월31일치)은 ‘혈서로 군관(장교) 지원’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그 덕인지 박정희의 대구사범 재학시절 교련 교관이었던 관동군 아리카와 게이이치 대좌(대령) 등이 손을 써 그는 결국 그 학교에 들어갔다.

“만주국은 내가 그린 작품”이라고 호언했던 기시는 그때 만주국 총무청 차장이었다. 총무청 장관은 최고위직인 국무원 총리 바로 아랫자리지만 만주인들 몫으로 준 총리는 실권이 없는 자리여서 사실상 최고실세였다. 그 밑에서 실무를 장악하고 있던 기시가 만주국이 자기 작품이라고 큰소리친 건 허언이 아니었다. 기시는 그때 만주국을 군부 엘리트와 관료, 닛산과 같은 일본 재벌이 지배하는 철저한 중앙통제형 개발독재체제의 실험실로 만들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식의 계획경제, 수출 주도, 농촌진흥, 중화학공업 육성 등 전후 일본과 한국의 압축적 정치·관료 주도 성장전략과 한국의 새마을운동,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조회, 군사교육, 충효교육, 국민교육 헌장, 퇴폐풍조 단속, 반상회, 고도국방 체제를 위한 총력안보체제 따위의 통제장치들이 모두 만주국 실험을 거친 것들이었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그런 만주국의 등장 과정과 실체, 그것이 전후 일본과 한국 국가전략에 끼친 영향, 그리고 그 중심에 섰던 한·일간 주요 인맥들을 분석한다. 거기서 포착해낸 핵심적인 특징은 연속성이다. 연속성은 한국과 일본의 체제와 사람(인맥) 사이, 그리고 각각의 전전·전후 사이에 시공간 종횡으로 관철된다. 말하자면 전쟁 전 일제와 전후 일본이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고, 그 지배세력이 다르지 않으며, 한국 또한 그것과 닮은꼴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양자관계 역시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겉모습은 달라졌을지 모르나 본질상 단절되지 않은 연속체와 같다는 얘기다.

기시가 총무청 차장을 할 무렵 도조 히데키는 관동군 헌병대사령관에서 참모장으로, 이어서 육군 차관, 대신으로 승승장구했다. 박정희가 만주에 간 1940년 2월께 기시는 상공차관이 되고 이어 들어선 도조 내각의 상공대신으로, 국무상, 군수차관으로 출세해 전쟁수행에 앞장선다. 따라서 기시와 박정희는 만주에선 직접 만나지 못했다.

만주군관학교 예과 졸업식 때 푸이한테서 금시곗줄을 받은 우등생 박정희는 1941년에 이름을 ‘다카기 마사오’로 바꿨고 그 다음해엔 더욱 일본색 짙은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꿔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에 편입한다. 우등 졸업 뒤 관동군 견습사관이 되고 1944년 7월에는 만주국군 보병 8사단에 배속됐다가 그해 12월 소위로 임관됐으며 1945년 7월에 중위로 진급한다. 그들의 주요 임무가 조선인 항일독립운동세력 박멸이었다.

하지만 일제 패전과 함께 기시와 박정희는 물없는 물고기 신세로 전락한다. 기시는 에이(A)급 전범이 돼 3년간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 갇힌다. 박정희도 무장해제당한 패잔병이 됐다. 그들을 살린 건 일제 패전 뒤 일본과 남한을 점령한 미국과 냉전, 그리고 만주 인맥이었다. 기시는 도조 등 에이급 전범 7명이 교수형을 당한 바로 다음날 전격 석방돼 1957년 총리 자리에까지 오른다. 기시를 살린 것은 나중에 외상이 되고 한일협정 때 일본대표로 활약하는 그의 평생 부하 시나 에쓰사부로, 기시의 친동생으로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되는 사토 에이사쿠 등과 미국이었다. 일본군 박정희를 한국군으로 세탁하고 군 좌익숙청 때 남로당원으로 처형당할 뻔한 그를 살린 것도 백선엽, 정일권, 김창룡, 이선근, 김정렴 등의 만주 인맥, 그들과 손잡은 미국이었다.

‘쇼와의 요괴’ 또는 ‘수괴’로 불린 기시는 그 뒤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직후 물러날 때까지의 약 3년 동안의 총리 재직기간을 포함한 7년여의 길지 않은 시간에 미국의 뜻대로 전후 일본정치의 방향을 정한 보수합동 체제(55년 체제)를 만들었고, 미국 의존 안보체제를 굳혔으며, 일본 고도성장의 기본틀을 짜, 만주 봉천 총영사관보 출신인 요시다 시게루 정권 이후의 일본국가 진로를 결정했다.

냉전 덕에 공직에 복귀한 일본 전범자들이, 역시 냉전과 한국전쟁 덕에 살아난 그들의 수하였던 한국 지배자들과 다시 만나는 건 1961년 박정희 쿠데타 직후였다. 한일국교정상화와 한국 경제개발에는 이를 자국 안보문제와 관련한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한 기시와 그 주변에 형성된 일본 육사와 만주군관학교 또는 만주국 관료 출신의 만주 인맥이 깊숙이 개입했다. 책 내용대로라면 기시는 자신의 만주국 ‘후배’ 또는 ‘제자’들이 그려낸 대한민국 또한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일본 자민당 장기집권의 대미를 장식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기시의 외손자이며, 아소 다로 전 총리는 요시다의 외손자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자원한 것이며, 한국 근대화가 일제 식민지배 덕이라는 따위의 망언을 일삼는 이들이 이른바 친한파·지한파로 알려진 만주 인맥의 직계후손들이다. 그들은 조상들이 주도한 패전 전 ‘대동아공영권’의 제국 일본을 되찾아야 할 이상향으로 여기는 듯하다. 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정권도 거기서 거기다. 단절 없는 연속성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강상중.현무암 지음, 이목 옮김/책과함께

박정희와 기시의 공통분모는 만주국… 그들은 ‘제국주의의 귀태’였다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 만주국이 남긴 닮은꼴 두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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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기원전 7000년부터 가축의 젖을 먹기 시작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고대 스키타이인이 암말의 항문에 공기를 불어넣은 후 젖을 짜냈다는 기록이 있다. 본래 '밀크(milk)'는 게르만어 '메올크(meolc)'에서 왔다. '젖을 짜다'라는 뜻. 한국·중국·일본에서는 밀크를 '우유(牛乳)'로 번역하지만 인류가 마신 동물의 젖에는 소젖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밀크는 양젖·염소젖·말젖·야크젖·순록젖 등 인류가 가축으로 키운 포유동물의 젖 모두를 뜻한다. 그런데도 왜 '밀크=소젖'이란 뜻이 상식이 됐을까.

신간 '밀크의 지구사'는 바로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19세기 이래 진행된 우유의 산업화 때문이다. 소젖은 양도 많고 생산도 편리하다는 장점 덕분에 다른 포유동물의 젖을 제치고 밀크의 대명사가 됐다.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밀크는 식량과 물이 귀한 시기에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칼슘과 라이신, 비타민D 등 다양한 영양소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동물의 젖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세계 인구의 75~80%가 생유(生乳)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포유동물 대부분은 풀이 풍부한 계절에 새끼를 낳기 때문에 봄과 여름에 젖 분비기가 몰려 계절별로 밀크 생산량의 변동이 심하고 부패하기도 쉬웠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생유를 발효시켜 알코올성 요구르트 음료로 마시거나 끓여 먹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생유를 즐기지 않았던 문명이다. 대부분의 밀크가 마을과 도시 밖 목장에서 생산돼 신선도를 유지하기 힘든 데다 야만인과 교양 없고 촌스러운 유목민이나 먹는 음식이라고 비하했기 때문이다. 밀크 소비의 왕은 단연 아일랜드 사람들. 중세 아일랜드의 풍자시 '매콩글린의 환상'에는 밀크를 묘사하는 다양한 구절이 나온다. "매우 진한 밀크, 그리 진하지 않은 밀크, 진득한 밀크, 중간 정도 진한 밀크, 노란 거품이 부글대는, 씹어야 삼킬 수 있는 밀크…."

한동안 밀크는 '하얀 묘약'으로 칭송됐다. 순수한 이미지라 신의 음료라 여겨졌고, 병든 이를 고치는 약으로도 숭배됐다. 소를 숭상하는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물소젖을 종교 정화의식에 썼으며, 이집트에서는 암소 모습을 한 여신 이시스에게 밀크를 바쳤다는 신화가 전한다. 치료제 역할도 했다. 해독제부터 피부 가려움증 억제제, 눈 연고 등에 쓰였고, 켈트 문화에선 소젖이 결핵 치료에 이용됐다. 클레오파트라는 피부 노화 방지를 위해 당나귀젖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와 '우유 신화'는 무너진다. 유럽과 미국 도시에서 우유는 매우 위험한 식품이 된다. 질병과 사망의 주원인이었고 특히 아기들에게 더 위험했다. 우유 소비가 늘면서 도시에 낙농장과 외양간이 생겼고 배달망이 구축됐지만 대중의 건강에는 비극이었다. 낙농장은 지나치게 많은 소를 길렀고 환경도 지저분했다. 불결한 환경에서 키운 소는 대부분 질병에 걸렸고 이런 소에게서 짠 우유는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됐다. 양조장 지게미를 먹여 키운 소의 쓰레기 우유, 밀가루와 분필 등을 섞은 가짜 우유, 표백 우유 등으로 인해 밀크는 더럽고 해로운 '하얀 독약'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후 낙농장 감독, 저온 살균 등의 방책으로 우유는 가장 손쉽게 영양을 얻을 수 있는 완전식품으로 탈바꿈한다. 각종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1924년 미국 시카고 보건국은 분유를 연료로 넣은 기관차가 객차 다섯량에 고아 200명을 태우고 달리는 광고를 내보냈다. 우유가 영양 높은 완전식품임을 홍보한 것. 우유마케팅위원회는 파티 직전이나 직후에 우유를 한 잔 마시면 다음 날 숙취를 예방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20세기 후반부터 아시아 몇몇 국가에서는 우유 소비량이 빠르게 늘어났다. 우유가 지닌 '선진국' 이미지 때문이다.

프리랜서 작가이자 언론인인 저자는 '묘약'에서 '독약'이 된 밀크의 역사와 이면을 각종 에피소드와 사진 자료를 곁들이며 들려준다. 책 말미에는 감수를 맡은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한국 우유의 20세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우유가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우유 공급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우유가 일본인뿐 아니라 식민지 조선인들의 육체를 서양인처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식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영양의 식민화'였다. 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지난 100여년 동안 경험해온 우유의 생산과 소비 과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구사적 맥락에서 전개됐다"면서 "이것은 '우유의 식민화' 과정이었다"고 분석한다. 해방 이후의 우량아 선발 대회, 1960년대 이후 태어난 '우유 키드' 이야기 등 우유에 얽힌 추억의 사연들이 흥미롭다.

밀크의 지구사
해나 벨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말젖·양젖도 있는데… 왜 '밀크=牛乳'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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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가 수세에 몰린 1943년 가을. 이탈리아 예시의 한 빌라에 나치 친위대가 들이닥쳐 곳곳을 뒤졌다. 목표는 한 권의 고서적. 하지만 찾던 책은 다른 곳으로 옮겨진 뒤였다. '코덱스 아에시나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저작 '게르마니아'의 15세기 양피지 필사본이었다. 책을 찾지 못하자, 친위대 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러는 분통을 터뜨렸다. 약 2000년 전 고서의 사본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1924년 9월 '게르마니아'를 처음 읽은 하인리히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우리 조상의 당당함, 순수함, 고귀함 등의 영광스러운 이미지에 넋을 잃었다. 우리는 다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가 말한 '우리 조상'은 '게르마니아'에 묘사된 부족, '게르만족'이었다. 훗날 나치 2인자가 된 그는 이 게르만족의 '순수 혈통'을 위해 미혼녀에겐 '검증받은' 아리안 남성과의 출산을 장려하고, 전쟁 영웅에게는 중혼(重婚)을 허용하려 했다. 나치에게 '게르마니아'는 '바이블'이었고, 600만 명 대학살의 '근거'였다. 하지만 오독의 결과였다. 독일인으로 미국 하버드대학 고전학 교수로 있다가 최근 스탠퍼드대로 옮긴 저자가 자기 모국에서 진행된 '곡해'의 역사를 추적했다.

타키투스는 네로 황제(37~68년)의 폭정 속에서 청년기를 났다. 원로원에 진출한 후에도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공포 정치에 시달렸다. 96년 마침내 폭군이 암살당하자 펜을 들었다. 그 결실이 '게르마니아'. '게르만 민족의 기원과 관습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민족지(誌)였다. 30쪽도 안 되는 소책자에서 게르만 지역 부족들을 묘사했다.

"그곳(게르마니아)에서는 사치와 악덕과 타락을 경계했다.(…) 단순함이 도덕성을 높이고 유혹이 적다 보니 일탈할 기회도 적어, 간통 사건은 극히 드물었고, 있더라도 처벌이 극도로 가혹했다." "게르마니아의 여러 부족은 이민족과의 결혼으로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로, 오로지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닮지 않은, 별개의 순수한 종족으로 존재한다."

정작 타키투스는 게르만족이 산다는 라인강 근처에는 가 본 적도 없었다. 문헌 자료와 전언을 토대로 게르만족의 초상을 그렸던 것. 오히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타락한 로마였다. 북부 지역 '야만' 부족을 통해 로마인이 잃어버린 자유, 용기, 도덕성, 규율, 단순함 같은 미덕을 말하려 했다.

수백 년간 잊혔던 게르마니아는 1425년 말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필사본이 발견되면서 다시 숨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기 '로마 고전 발굴 사냥'의 소득이었다. 중세 시대만 해도 합스부르크 왕가나 바이에른 족보는 있어도 독일인의 계보란 없었다. 하지만 '게르마니아'는 상황을 바꿔놨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술탄에 맞서 독일인을 결집할 필요가 있었던 피콜로미니(1458년 교황 비오 2세에 즉위)에게'게르마니아'는 좋은 근거였다.

16세기 독일 민족주의자들도 타키투스를 불러냈다. 종교개혁가 루터도 민족주의 정서를 게르마니아에서 찾았고, '법의 정신'을 쓴 몽테스키외도 게르마니아에서 독일 정신의 영감을 얻었다.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도 게르만족의 미덕과 독일 민족의 재건을 노래하려는 것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 와서 게르마니아는 '성전(聖典)'의 반열에 올랐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1권의 가제가 '게르만 혁명'이었다. 1936년에 통과된 '독일인 혈통 및 명예 수호법'에 따라 유대인과 독일인 간 결혼이 금지됐다. 정작 나치 정권 지도부조차 '완벽한 아리아인'의 신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힘러는 두개골이 길쭉해 보이도록 머리 양옆을 밀고 다녔다.

나치가 망한 후에도 '게르만의 신화'는 가시지 않았다. 나치 유산을 비판한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조차 1979년 "예나 지금이나 독일인의 공감대에는 뭔가 진정한 게르만적 요소가 보존돼 있다"고 했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이토록 근거 없는 확신을 낳을 수 있는가. 저자는 지식의 '전염 병리학'으로 설명한다. "사상은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인간의 정신을 숙주 삼아, 내용이나 형식을 복제하고 변형해 가다가, 한데 모이면 이데올로기를 형성한다." 결국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가 '가장 위험한 책'이 된 것도 원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역대 독자들의 '곡해와 오독'의 산물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꼼꼼한 문헌 해석과 고증을 토대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 '민족주의 신화'라는 근대의 '환부'에 메스를 들이댄 수작이다.

가장 위험한 책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 지음, 이시은 옮김/민음인

30쪽짜리 이 책 600만명 죽였다
민족의 특별함 믿는 건 자연스럽다… 단, 허구적 요소 있는 건 염두에 둬야
나치의 ‘순혈주의’를 위해 봉사했던 책 ‘게르마니아’
나치즘 낳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해부
게르만 민족국가를 부추기는 모든 시도는 사기
600만 명 죽음으로 몬 나치의 광기 이 책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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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을 위한 팸플릿 같은 조언을 담은 이 책은 올해 미국서 출간됐다. 하지만 많은 내용이 논란거리다. 지구온난화를 둘러싸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입장 차이가 해소된 것은 아닌데,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반(反)과학으로 몰아붙이는 태도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무니가 보수주의자의 특징으로 꼽은 권위주의, 폐쇄성, 변화에 대한 저항을 국내 일부 좌파 진영에서 종종 확인할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미국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 책을 보고 꽤 흥분했을 것 같다. 원제는 '공화당원의 뇌(The Republican Brain)'. 저자 크리스 무니(Mooney·35)는 뇌과학과 심리학 등의 최신 연구 결과를 끌어대며 보수주의자들의 사고가 반(反)과학적이고, 덜 유연하며 폐쇄적인 경향이 있다고 난타한다.

'교육을 많이 받고 유식한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설득이 안 된다.' 무니가 말하는 '똑똑한 바보효과'다. 이 효과는 우파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보수주의자는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사실과 부딪쳤을 때, 진보주의자보다 더 강하게 자기 신념을 방어하며 특히 정치 분야에선 새로운 증거 때문에 마음을 바꾸는 경우도 더 적다는 설명이다. 여론 조사 기관 퓨(Pew)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에 대해, 교육을 많이 받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교육을 덜 받은 공화당 지지자보다 더 회의적이었다. 대졸 학력의 공화당 지지자 중 19%만 인간 때문에 지구가 온난해지고 있다고 동의한 반면, 고졸 이하 학력 공화당 지지자들은 31%가 동의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교육을 더 받을수록 기후 과학을 더 수용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도발적인 주장은 보수주의자는 뇌 구조부터 진보주의자와 다르다는 내용이다. 보수주의자의 뇌는 편도체(扁桃體)가 발달했고, 진보주의자의 뇌는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d Cortex)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편도체는 공포나 위협에 반응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전대상피질은 전두엽의 일부로서 교정 반응이 요구되는 실수와 오류를 감지하는 작용과 연관돼 있다. 런던대 대학생 90명을 대상으로 MRI 조사를 했더니, 보수주의자들은 오른쪽 편도체가 더 크고, 진보주의자들은 전대상피질에 회백질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훨씬 더 많은 단결력을 보여줘야 한다. 투덜거리는 반대 의견이나 내분을 줄이고 충성심과 공동의 목표를 늘려야 한다… 당신은 보수주의자들이 조지 W.부시에게 보이는 똑같은 충성심을 오바마에게 보여줘야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점만 취한다면, 둘 다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는 보수적이면서 동시에 진보적일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진화하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지금 문제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두 측면을 반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똑똑한 바보들
크리스 무니 지음, 이지연 옮김/동녘사이언스

보수와 진보는 뇌구조부터 다르다
보수-진보주의자 뇌구조부터 다르다
보수와 진보주의자들 뇌는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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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번역'과 '반역' 글자 하나가 주는 차이,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호기심을 자아낸다. 책 '번역과 반역의 갈래에서'는 깊이 있는 인문지식과 통찰을 무겁지 않게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풀었다. 저자는 원래 신학 책 전문 번역자인데, 이번에 독특하게도 직접 책을 써냈다.

번역 이야기지만 사실은 반역 이야기다. 갖가지 부조리와 불의로 얼룩진 현실을 뒤집어 정의와 평화, 성숙한 인간애와 참된 화해가 있는 세계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번역한 책에서 발견한 생각들을 '반역'이라는 양념으로 숙성시켜 맛있는 이야기로 구워냈다. 역사와 사회현실, 정치와 경제, 책과 번역, 문학과 철학, 신학과 신앙, 음악과 영화, 심지어 무기에 관한 지식까지 넘나들며 이야기보따리를 한껏 풀었다.

또 번역자로서 살아가는 현실과 번역론, 그리고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귀중한 해외 고전들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때론 쓴웃음도 지어지고, 가슴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웃음도 나온다. 아울러 그동안 번역한 책 중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회 현실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시사점들을 제공했던 책들을 언급한다. 다시 한 번 우리의 현실을 명쾌하게 진단하고 독자들에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귀띔해준다.

이 책은 24개의 에세이들을 다양한 사진자료와 함께 정성스럽게 모아놓은 인문서이다. 이미 책을 본 사람들은 유익한 지식이 많이 담겨있으면서도 웬만한 스릴러나 블록버스터보다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전문 번역자가 저자로 나섰다는 것 자체가 반역일지도 모를 이 책은 이번 가을에 양서를 기다린 독자들에게 뜻밖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번역과 반역의 갈래에서
박규태 지음/새물결플러스

가슴아픈 현실에서 웃음을 길어낸 '반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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