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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1월 2주 새로 나온 책

"마키아벨리는 지금 지하에서 슬피 울고 있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이다."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르네상스 창조경영' 등 전작을 통해 르네상스 연구에 집중해온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1469~1527)를 위한 변명'을 시도한다.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 즉 '통치술 전반에서 권모술수를 부리는'이라는 뜻으로 사전에 등재된 '사악한 인간'이란 굴레를 벗기고 '약자를 위한 수호성자'로 복권(復權)시키겠다는 것. 이미 시오노 나나미를 비롯해 많은 학자·저술가가 내린 평가를 뒤집어보겠다는 도전인 셈이다.

분명 마키아벨리는 "대중이란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군주론)는 '모진 말'을 했다. 그러나 "대중은 군주보다도 훨씬 은의에 돈독하고, 총명함과 부동심에 대해서도 군주보다 훨씬 신중하며, 변덕도 적고 정직하다"(로마사 논고)고 적은 것도 마키아벨리다. 모순된 언설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

책에 따르면 마키아벨리 스스로는 전혀 '권모술수'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그는 29~44세엔 공화정 피렌체의 고위 관리로 활약했고, 44세부터 죽을 때까지는 실업자 신세였다. 저자가 주목한 점은 그의 조국 피렌체는 늘 외침을 걱정해야 하는 약소국이었고, 마키아벨리 자신도 권력을 휘두를 위치에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외교담당이었던 그는 늘 프랑스국왕과 당시 중부 이탈리아를 제패한 교황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따라다니며 평화를 구걸해야 했다. 메디치 가문이 복귀한 후엔 관직에서 쫓겨났고, 암살 음모에 연루된 혐의로 '날개 꺾기 고문'을 6차례나 당했다.

마키아벨리의 신산(辛酸)한 삶의 버팀목은 평생을 함께한 고전이었다. 프랑스와 협상할 때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담판할 때는 투키디데스의 '역사'를 읽은 그였다. 그는 실직한 후에도 하루 4시간씩은 공직시절에 입었던 관복(官服)으로 갈아입고 고전을 읽었다. 그런 인문학적 통찰이 '군주론' 등 저작을 일궈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군주론'은 정치이론서나 처세술이 아닌 처절한 '구직을 위한 포트폴리오'일 뿐이라는 것이다. 수도자 한 명을 위대한 예언자로 떠받들다가 순식간에 등을 돌려 불에 태워죽이는 포퓰리즘과 다양한 외교현장을 체험한 마키아벨리가 당대 영웅들의 부침(浮沈)을 고전에 비추어 분석하면서 약소국 피렌체가 강대국들 틈에서 먹히지 않을 방법을 적은 안내서였다.

 인쇄를 거절당해 필사본으로 보관하던 '군주론'을 드디어 헌정하는 날, 로렌초 데 메디치는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키아벨리 곁에 있던 사람이 바친 사냥개만 어루만졌다고 한다. 심혈을 기울인 저작이 졸지에 '개만도 못한' 처지가 되자 마키아벨리는 '집권한 리더'가 아닌 '집권 가능성 있는 리더 후보'를 찾는다. 피렌체의 젊은 리더들과 공부 모임을 하면서 완성한 저작이 앞서 인용한 '로마사 논고'. 결국 약소국과 약자의 생존법을 설파한 것이 마키아벨리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그 충고를 외면한 피렌체는 결국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 교수의 새 시도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완전 복권'보다는 '부분 복권'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군주론'을 집필한 교외주택에서 본 피렌체 모습 등 발로 뛰어 찍은 사진들 그리고 우리 상황과 빗대어 왜 지금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점은 기존의 책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마키아벨리
김상근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권모술수에 능했던 독설가… 마키아벨리 "내가?"
사악한 이론가? 마키아벨리 누명벗기기
마키아벨리가 `권력慾의 화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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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주체 사이에 “경제성장률 제로 시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비주류에서나 목소리 높여 주장하던 말이 이제는 주류에서도 언급되는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실제 세계 주요국 경제는 성장률 제로에 가깝다. 한국도 지난해 3분기 성장률은 0.1%로 사실상 제로였다. 성장률 제로 시대의 도래를 주장해온 비주류의 발언이 점점 더 힘을 얻는 형국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류에서는 “성장할 수 있다” “성장만이 살길”이라며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주문한다. “경제 부흥”과 같은 지난 시대의 구호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반면 비주류는 이제 “성장 지상주의는 끝났다”며 제로 성장을 전제로 한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리처드 하인버그(탈탄소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The End of Growth)는 제로 성장 시대가 왜 올 수밖에 없는지 그 근거를 조목조목 보여준다. 그러고는 “지금 당장” 정부, 기업, 개인은 제로 성장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너지 부문 세계적 전문가인 저자는 <미래에서 온 편지>와 <파티는 끝났다>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하인버그가 제시하는 제로 성장률 시대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석유 등 천연자원의 고갈이다. 환경파괴가 심화되면서 치솟는 환경 관련비용 문제도 있다. 계속 불거지는 심각한 환경문제를 해결하자면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 통화·금융·투자시스템이 무너지는 금융 붕괴는 제로 성장 시대의 또 하나의 근거다. 빚더미 꼭대기까지 차오른 각국의 정부·민간 부채와 자원 부족·환경오염 사고 증가에 따른 비용 등으로 금융붕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우리는 영원히 성장하는 체계를 구축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난 150년간 값싸고 풍부한 화석연료 덕에 성장이 가능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 관료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지금까지처럼 신기술 개발, 끊임없는 혁신 등 ‘대체’와 ‘효율’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대체와 효율의 한계까지 지적한다. 이 책의 큰 장점은 성장 시대의 종말을 논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로 성장 시대를 대비하는 방안들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로 성장 시대에는 지금처럼 소비하고 파괴하면서 계속 살기는 불가능하기에 먼저 경제·사회 체제와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여러 가지를 언급한다.

‘성장’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기, 지역 차원의 공동체 활성화와 사회적 결속력 높이기, 나눔과 협력의 도모 등이다. 이런 것들은 “제로 성장 시대라는 힘든 시기에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된다. 그는 “경제성장이 종말을 맞는다고 해서 세상까지 종말을 맞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오히려 더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으니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 세상을 꿈꾸자는 제안이다.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노승영 옮김/부키

성장시대의 종말… 나눔과 협력의 ‘새롭게 살기’를 배워야 할 시간
자원고갈·환경오염·금융위기… 경제성장의 종말
성장이 멈추는 그날…세상은 어떤 얼굴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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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하자고들 한다. 법치주의, 좋다. 사람이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법이 사람을 만드는 세상이 아닐까. 법치주의란 말이 온갖 정치적 수사로 동원·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 제목만 봐도 이 책의 저자 내지 내용을 일찌감치 소개할 필요가 없어진다. 기실 한국에서 법치주의는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법을 들이대고는 인권이나 정의를 무참히 짓밟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처럼 법치주의는 종종 권력의 입맛대로 변질돼왔다. “법의 지배”를 들먹이며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갖고 가려는 일본 정부의 볼썽사나운 행태 역시 거슬린다.

이처럼 현실은 ‘법의 지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판사 출신인 저자 역시 이를 주목한다. 그는 서구 헌정사와 관련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법의 지배 사상이 자리잡아온 역사를 말한다. 평생을 법조계에 몸담은 법률가이지만 어렵게 논하지 않는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바라본다. 영국 등 자유민주국가에서 법의 지배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기 쉽게 풀어간다. 특히 그는 미국과 영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와 그에 따른 입법과 사법 행위들이 법의 지배 원칙을 파괴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테러를 핑계로 반인권적인 법을 통과시키고 테러 혐의자(외국인)를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구금하고 공평하지 못한 재판을 행하며, 심지어 고문까지 가하는 상황들이 단적인 예다.

저자는 아울러 이라크 전쟁이 어떻게 유엔 안보리 결의와 국제법에서의 법의 지배를 침해하면서 전개됐는지를 분석한다. 안보에 대한 우려와 기술 발전이 인권을 무시한 감시사회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고는 “어디까지가 정부의 정당한 이해관계이고 어디부터가 부당한 감시인지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점점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 출간에 앞서 저자는 이라크 침공이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며 미국과 영국이 마치 “세계의 자경단”처럼 행세했다고 비판해 주목받기도 했다.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를 가르는 것은 법의 지배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물론 법의 지배가 만병통치는 아닐 터. 하지만 그는 국적, 인종, 피부색, 종교 그리고 빈부격차 등으로 분열돼 있는 지금 세상에서 법의 지배는 “가장 훌륭한 통합 요인” 중 하나이며, 보편적·비종교적인 신념 체제에 “가장 가깝게 근접한 가장 위대한 것”으로 판단한다.

법의 지배의 진정한 의미를 명료하게 정의한 저자는 법을 운용하는 사람의 심성, 인품, 전문성, 소양을 거듭 강조한다. 최근 진보는 물론 보수 측으로부터도 공격받고 있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떠올리게 한다. “사법적 판단을 수행하는 자는 지방정부, 일체의 기득권 세력, 여론, 의회의 견해, 언론매체, 정당, 압력단체,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 특히 자신의 상급자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역사학을 전공하고서 20여년간 변호사로 활동한 후 고위 법관으로 발탁된 저자의 이력도 눈길을 끈다.

법의 지배
톰 빙험 지음, 김기창 옮김/이음

법치주의의 난폭한 파괴자, ‘자유민주국가’ 영·미를 꼬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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