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이라는 말을 번역, 전파(?)한 최재천은 “사람이 쉽게 쥘 수 있는 말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전략”이라 했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참 편한 ‘성공적인 전략’이다. 저자 캐서린 매이어는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을 ‘어모털리티Amortality’라 한다. ‘어모털리티’한 종속,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어모털족’이라 부른다.
‘어모털족’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개념을 파악하는 게 우선 해야 할 일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나이는 유동적이다 못해 혼란스러운 것이 되었다.” 나이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의 수가 크게, 그리고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나이에 어울리는지는 별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또한 “인생의 모든 선택이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열려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한다.” 이들이 바로 ‘어모털족’이다. 즉 “10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거의 대체로 똑같은 일을 하고 소비하는” 사람이다.
‘어모털리티’는 이미 확실하게
존재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단지 일부만이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보통 나이를 더 의식하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이에 대한 분별이 사라짐으로써 더 강하게 나타난다. 저자의 주장으로는 ‘어모털리티’는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임계점에 다다랐고, 모든 세대에 걸쳐서 빠르게 확산해 있다. 하나의 신드롬이자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어모털리티’라는
유행병은 그 영향을 살펴보면 대체로 양성이지만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특정한 경우에는 악성이 되기도 한다. 삶 전체에
걸쳐서, 정확히 말하면 그 삶이 생기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걸쳐서, 될 수 있는 한 길게,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점점
늘어가는 현상을 뜻한다. 또한 ‘어모털리티’는 삶 전체에 걸쳐서, 정확히 말하면 그 삶이 생기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걸쳐서, 될 수
있는 한 길게,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점점 늘어간다.
저자는 “나이를 잊고자 하는
상태로서,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사춘기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라는 ‘어모털리티’의 정의에 대해
가장 중요한 특징을 빠졌다고 말한다. 바로 어모털족은 “무덤이 바로 뒤에까지 와서 하품하기 전까지는 죽음이란 존재를
무시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에 어울리는 행실에 대한 규범이나 제한은 더는 (적어도 어모털족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전통’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쉽게 전복되곤 한다.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와 같은 인생의 각 단계를 설명하는 개념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도 나이와 노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10대란 개념은 1944년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1944년에 미국의 마케팅 종사자가 14세에서 18세까지의
연령층을 가리키는 이름을 상품에 갖다 붙이면서 돈을 챙겼다. 또 성인기라는 말은 1870년에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포함되었다.
인간의 생을 구분하여 명명한 시기가 별 의미 없으며, 필요에 때문에 생겨난 개념이다.
황혼, 또는 은퇴 이후를
구분하여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게 온당한가. 저자도 말하지만 내가 스무 살 무렵에는 오십 넘은 사람은 정말로 늙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어모털족에게 은퇴는 결코 매력있는 제안이 아니다. 2050년까지 인류 가운데 ⅕ 은
60세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인생 단계를 그때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어모털족은 지금의
사고에서 바라본다면 이상한 족속이지만 편의상 구분이 이제는 바뀌어야 하고, 지금 그 과정 중이기에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어모털족의 존재 여부를 말하기보다는 노령화하는 현상을 당연시해야 한다. 먼저 ‘노령화’라는 말부터 바꾸어야 한다. 늙었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무엇보다 늙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을 마치 정당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모털족’,
‘어모털리티’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현상이고 세계가 노령화 사회로 변하는 게 아니라 전보다 좀 더 오래 살 뿐이다.
개인은 앞으로 많이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도 지금까지 연령대에 맞춘 마케팅은 다시 점검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각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서 기업 활동이나 마케팅에 적용했던 각종 이론과 데이터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라 말한다. “소비자는 더는 나이로 분류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나이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어모털족’의 존재를 인정하든 아니든 지금 사는 인류는 백 년 전의 인류보다 오래 살고
있으며, 백 년 후 인류는 지금의 인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잣대는 항상 바뀌었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어제의 잣대로
오늘을 평가하지 말며, 오늘의 잣대로 내일을 예측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