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김광수경제연구소, 세금혁명당, 나는 꼼수다 이다. 이 중 선대인이라는 이름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것은 단연 ‘나는 꼼수다’이다. 딴지일보에서 김미화, 우석훈 그리고 선대인이 만든 팟케스트이다. 그 이전에는 몰랐다.
“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일어난 건가요?”라고 경제학자에게 묻는다면 장황하게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말 예상하지 못했는가?”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발생하기 이전에는 모두 낙관했다. 그 정도의 부실은 미국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막상 사건이 일어나자 모두 파생상품의 문제점과 헤지 펀드의 문제점에 관해서만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정작 그 상품 때문에 막대한 부와 수익을 챙긴 자가 누구인지, 그 옆에 방조하고 조장한 게 바로 경제학에 관련된 사람들이다.
경제학자와 기상학자는 모두 예측을 잘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상학자는 내일 또는 길어야 수개월을 예측하기에 잘못되었을 때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수년, 수십 년 후를 예측하기에 검증할 수 없다. 그러기에 비난 또한 없다. 단지 예측할 수 없는 (예측하지 못한, 절대 할 수 없는)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기에 급급하다. 경제학자의 예측을 듣고 움직이는 것은 눈을 가린 상태에서 뒷좌석에 앉은 사람의 말을 듣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는 조롱 섞인 말도 있다.
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수익이 높은 기업을 운영하려 할 때 경제학자를 채용하지 않는 이유를 아는가. 경제학자는 멋진 이론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론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 적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경제학자는 그 시점을 알지 못한다.
금값이 고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다. 언론에서는 금이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에 가장 효율적인 재태크라고 말한다. 금괴를 매수하는 개인이 많아진다고 떠든다. 더불어 경제학자가 금의 효용성을 원론적으로 말한다. 언론은 교묘히 편집해 대중으로 하여금 금을 사라고 권한다. 지금이 내림세가 맞는다면 큰 손의 손털기를 대중에게 떠맡기는 술책이다. 물론 그들의 말처럼 더 오를 수 있다. 단기적으로. 하지만 그들의 예측이 잘못되었다고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아니 물을 수 없다. 투자의 책임을 전적으로 투자자의 선택에서 일어남을 늘 강조한다.
이럼에도 앞으로의 경제 상황에 관한 책을 읽었다. 더러 맞는 말도 많다. 하지만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이다. 환율이 오르면 서민 주머니를 털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익을 높여줄 뿐이다. 그들만큼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지. 저환율을 유지해야 그들의 이익이 서민의 주머니에 채워지는 건가.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책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 속에서 살아갈 사람에게 몇 가지 생활 원칙을 조언하고 있다. 이것도 읽는 이가 적당히, 알아서, 잘 취사선택해야 한다. 모든 책임은 글쓴이가 아니라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괄호 안의 부언은 나의 생각이다.
1. 기대 수준을 낮춰라. (더 낮출 게 있나. 역대 정부에 많은 기대 한 이가 얼마나 될까?)
2. 어쨌거나 많이 요구하라. (요구한다고 될까? 이렇게 말하면 패배주의에 젖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 봐야 입만 아프다.)
3. 위기 가능성에 대비하라. (위기를 말하는지 희망을 말하는지 오리무중이다. 늘 예측은 좋은 쪽과 나쁜 쪽을 모두 말한다. 그래야 면피를 하기 때문인지.)
4. 그래도 희망의 나무를 심자. (어설픈 희망은 절망보다 더 심한 절망을 낳는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기개발서와 뭐가 다른가. 열심히 노력하고 희망을 품어라. 그러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끈을 놓지 마라.)
만일 누가 네가 하고 싶은 말인 뭐냐고 묻는다면 그들과 같은 대답을 할 뿐이다. 이런저런 현상과 상황이 예상되니 알아서 잘 처신하기 바란다고.
行間/밥 먹여주는 경제경영
박근혜 정부의 경제 속에서 살아갈 사람에게 주는 몇 가지 조언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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