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된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이 한 권으로 묶여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5》에서 처음 접했지만 절판이었다. 개정판이 나오며 달라진 부분이 있다. 세 권이 한 권으로 묶었고 저자가 마일스 데이비스와 퀸시 트루프에서 마일스 데이비스로 바뀌었다. 마일스의 구술을 저널리스트인 퀸시 트루프가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데 개정판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마일스만 저자로 올라와 있다. 따져보면 첫 개정판이 아니라 두 번째 개정판이다.
절판된 후 개정판이 나왔지만, 어디에도 출간을 알리는 곳이 없다. (출판사에는 고맙고 미안하지만) 이런 책이 절판되지 않는 세상이면 좋겠지만, 이 땅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절판 소식을 접하기 전에 책꽂이에 한 권씩 있으면 좋겠다. 원래 마일스는 소리로 들어야겠지만, 활자로 듣는 마일스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
장정일이 이 책에 관해 적은 글이다. 굳이 장정일이 권하지 않더라도 읽어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마일스 데이비스’이기 때문이다.
흑인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퀸시 트루프와 마일스 데이비스 간에 이루어진 오랜 대담과 방계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이기도 하지만 ‘재즈계의 재즈’ 그 자신의 저서전이기도 하다. 까닭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의 온갖 사조를 섭렵하고 창도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며, 이 책은 마일스 데이비스 개인의 신변잡사를 떠나 흑인 음악인 재즈와 재즈 음악인이 예술로 대접받기까지 미국의 사회를 어떻게 헤쳐 나왔던 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일스가 재즈계의 황제가 될 수 있었던 필요 조건은 첫째, 그의 아버지가 흑인으로서는 드물게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열두 살 때부터 트럼펫 주자가 되기 위한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며, 둘째,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여덟 살부터 “거의 신이나 마찬가지였다”던 찰리 파커는 물론이고 디지길레스피 등등 당대 최고의 선배와 함께 연주하며 재즈의 모든 것을 익히고 흡수할 수 있었다는 것. 셋째, 한 2년 정도 다니다가 자퇴하긴 했지만 음악 명문인 줄리아드에 다니면서 재즈라는 감성 혹은 즉흥을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체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황제가 되기에는 충분조건에는 못 미친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 여정을 살펴보면 그의 주변에는 항상 최고의 연주자가 있었다. 그만큼 잘 들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또 그는 항상 남보다 앞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그만큼 창이적이었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번역자는 역자 후기의 마지막에 이젠 번역도 끝났으니 음악이나 들어야지. 무거운 짐을 벗은 느낌이다. 하지만 무거운 짐이 없었던 독자는 줄곧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3권이다. 절판이다. 책이야 어떻게 구하겠지만 마일스를 소리가 아닌 활자로 읽을 자신이 없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제 먼저 책을 구하는 것이 먼저이고 읽는 것은 그다음 문제로다.)
덧_
'마일스 데이비스'는 아마도 외래어 표기법을 위배한 표기이다. 그들에 의하면 '마일즈 데이비스'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제목은 《마일스 데이비스》이다. 저자도 마일스 데이비스이다. 단지 네이버의 책 소개에는 저자가 '마일즈 데이비스'라 되어 있다.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한 게 문제인지 아니면 현실을 무시한 외래어 표기법이 더 문제인지.
덧붙임_
[5월 26일] 재즈의 흥망성쇠 - 마일스 데이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