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수갑(The Invisible Handcuffs Of Capitalism)'이 원제인 이 책에서 마이클 페럴먼은, 자신이 일을 잃고 가난해진 원인을 무능 때문이라고 여기는 노동자들의 자책을 강하게 부정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로 좌파 경제학자인 저자는 '노동자의 삶'에 초점을 맞춰 자본주의 시스템과 주류 경제학의 모순을 끄집어내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데 주력한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250년 전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무한 신뢰를 은유하는 이 표현은 지금도 경제학 교과서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공정하고도 효율적인 경제를 창출하는 쪽으로 작동한다는 게 스미스의 생각이다.
후대 주류 경제학자들은 어려운 물리학 수식을 빌려 이 같은 생각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 과학으로 격상시켰다. 경제 위기가 빈번해지면서 자신들의 과학에 허점이 노출될 때마다 똘똘 뭉쳐 더 어렵고 복잡한 수식을 만들어 자신들의 학문과 자본주의를 지켰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러나 노동에는 무관심했다. 노동자를 노동력(혹은 기술 등)을 파는 상인이라는 관점에서만 주목했다. 스미스는 "사람들이 교환함으로써 살아가거나 상인으로 변해가고, 사회 그 자체는 적절하게 상업사회의 형태로 진화한다"고 했다. 경제가 돌아가는 핵심이 생산보다 교환(거래)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노동'이라는 개념을 '거래'로 대체함으로써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태생적으로 불온한) 노동의 가치를 아예 거세해 버렸다. 이런 편협한 시각이 지금도 경제학계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팽배해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경쟁에서 도태된 노동자는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다. 경쟁에서 뒤처져 일자리를 잃거나 처음부터 아예 일할 기회를 부여 받지 못한 사람들은 '무능한 자'라는 낙인이 찍혀 노예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페럴먼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 시장만능주의의 구호를 '보이지 않는 수갑'으로 풍자하면서, 보이지 않는 수갑이 어떻게 노동자를 무능한 존재로 전락시켰는지 낱낱이 고발한다. 긴 세월 동안 노동자들을 줄곧 사지(死地)로 내몬 자본 세력을 주류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방조하고 교묘하게 옹호해 왔는지를 조목조목 규명해낸다.
페럴먼이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는데 사용한 키워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상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아테네 부근 마을 사람들을 잡아와 강철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버렸다. 이처럼 자본에 경도된 획일적 시장주의가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진단이다. 이 획일주의가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무능한 존재로 전락시킨다고 주장한다.
익히 아는 대로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자신이 저지르던 악행과 똑 같은 방식으로 죽는다. 저자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노동 부문을 질식시켰던 획일적 시장주의가 끝내는 자기 자신마저 비운에 빠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 페럴먼은 "노동에 대한 지나친 통제를 멈춰 지금껏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게 경제 활력을 키우는 데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노동자의 시각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염원이 보인다.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
미국 좌파가 파헤친 자본주의체제의 한계
당신의 무능력 때문에 해고당했다? 천만의 말씀!
실업·가난은 노동자 책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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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만 일하면 페라리를 살 수 있다. 30분만 더 일하면 노후 보장도 가능하다. 딱 하루만 일해도 일반 가정에서 179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챙길 수 있다!
이처럼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미국의 최상위 헤지펀드 매니저들이다. 그들의 막대한 '돈 놀이'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 원인으로 평가받는다. '싹쓸이 경제학'의 저자 레스 레오폴드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부당행위도 서슴치 않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면모를 낱낱이 까발린다.
이 책은 초반부터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방법이 세련됐다. 1장에서 미국 연예인, 영화감독, 스포츠스타, CEO(최고경영자), 의사, 변호사 등의 시간당 소득을 먼저 밝히고 마지막 부분에 최상위 소득 헤지펀드 매니저의 시간당 소득을 밝히는 식이다. 2010년 기준으로 오프라 윈프리가 시간당 13만9423달러를 벌어 각종 분야의 명사 중 가장 높은 소득을 올렸으나 당시 금값 상승을 주도하며 헤지펀드 매니저 중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린 존 폴슨은 시간당 235만5769달러를 벌었다.
저자는 시간당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버는 헤지펀드 종사자들이 경제에 무슨 가치를 창조하는지 되묻는다. 저자는 헤지펀드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주장에 "그들은 실물 경제에 대한 가치 창출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시장이 유동성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도 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존재"라고 반박한다. 또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업과 달리 헤지펀드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박성 투기만 조장해 빈부격차를 늘릴 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헤지펀드가 막대한 자금과 영향력으로 시장을 교란한다며 날을 세운다. 한때 헤지펀드계에서 유명세를 떨친 짐 크레이머는 2007년 더스트리트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시장 조작을 위해 루머를 만들고 유통시켰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조지 소로스는 1989년 환투기 세력과 결합해 파운드화를 투매하는 등 영란은행의 파운드화 절하를 이끌어냈고 결국 10억 달러의 차익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과제인 '규제혁파'에 대해 시사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저자는 카르멘 라인하트 메릴랜드 대학교 교수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지난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진 금융안정이 '엄격한 자본규제 덕분'에 이뤄졌다고 말한다.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서구 세계 대부분을 휩쓴 탈규제의 물결이 금융 시장을 카지노 도박판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전후 근로자들이 누리던 경기호황의 결실이 최상위 부자들에게로만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책은 읽기 쉽고 재밌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읽다보면 지나치게 한 쪽 시각만 반영됐다는 느낌도 떨치기가 힘들다.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헤지펀드와 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알고싶은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싹쓸이 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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