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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4년 5월 2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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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지결>(日用指訣)이라는 책이 있다. 고종 17년인 1880년에 윤최식이라는 선비가 쓴 것으로 일동무 선비들과, 선비가 되려고 막 첫 발짝을 뗀 뒷사람들을 위하여 지은 길라잡이 책이다. (…) 이 글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해야 될 일을 적어 놓은 것으로, 하루를 12시각으로 나누어 그때그때 지켜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적바림(=기록)하였다.”(‘비롯하는 글’)

먼동이 틀 무렵인 인시(새벽 3~5시)에서부터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축시(새벽 1~3시)까지 하루 24시간을 두시간 단위로 나누어 각 시각에 해야 할 일과 그 시각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을 적은 것이 <일용지결>. 소설가 김성동이 새로 낸 산문집 <외로워야 한다>는 <일용지결>을 현대화하고 자기 식으로 소화한 책이다.

가령 오후 1~3시를 가리키는 미시에 선비가 해야 할 바를 <일용지결>은 이렇게 쓴다. “오래도록 앉아서 책을 읽되, 몸과 마음이 고단하면 정좌(靜坐), 곧 팽댕이(=반가부좌)를 치고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갈고닦는다. (…) 때로는 겨를을 즐긴다. 퇴계는 말하기를, 학자가 너무 공부에 빠져들다 보면 마음에 근심이 생길 수 있으므로 옛 그림을 보거나 꽃나무와 같은 자연의 갖가지 경치를 보고 즐김으로써 공부에 싫증을 느끼지 않게 하고 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하였다.”

미시에 해당하는 김성동의 글에서는 다섯살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에게 <명심보감>을 배우던 이야기가 회고된다. “달소수 만에 <천자문>을 떼고 <통감> 또한 얼음에 박 밀듯 읽어 나가는 것을 보고 갸륵하게 여긴 할아버지는 곧장 <보감>을 가르쳐 주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붓글씨를 쓰게 하시는 것이었다.” 이 책에는 당시 김성동이 놀랍도록 반듯한 붓글씨로 베껴 쓴 <명심보감>이 사진으로 실려 있다.

“내가 지니고 있는 거의 모든 알음알이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할아버지 가르침이다. 아버지가 안 계시므로 나는 곧장 할아버지와 동무가 되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당신 할아버지, 그러니까 내게는 고조부한테 배우고 들었던 것을 죄 쏟아 냈던 것이니, 거의 백오십 년 안팎의 시간과 공간을 꿰뚫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지혜와 가르침으로 책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책 제목은 ‘되묻고 바로 세우다’라는 제목을 지닌 유시(오후 5~7시)를 다룬 대목에서 비롯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외로워야 한다. 외롭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하물며 예술이겠는가? 외로움을 견뎌 내야 한다. 그 길밖에 길이 없다.”

외로워야 한다
김성동 지음/내앞에서다

김성동 작가, 에세이 ‘외로워야 한다’ 출간
고조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온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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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사회적 책임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기업, 미국의 유기농 공정무역 음료회사 '어니스트 티(HONEST TEA)'의 이야기를 그린 비즈니스 만화.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오프라 윈프리가 사랑하는 건강하고 정직한 음료로 유명하다. 공정무역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착한 기업으로도 잘 알려졌으며, 2008년 코카콜라가 인수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1998년, 음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그 제자가 주방에서 직접 차를 우려내 보온병 5개에 담은 시제품을 들고 유기농 슈퍼마켓에 찾아간 것이 어니스트 티의 시작. 설탕 범벅 제품이 판치는 치열한 음료산업에서, 어니트스 티는 설탕을 줄여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고, 공정무역 거래로 생산자를 지원하며, 화학원재료의 총량을 줄이고 재활용에 힘써 자연 생태계까지 지키는 정직한 비즈니스를 고수해왔다.

2008년 코카콜라의 자회사가 된 이후로도 어니스트 티의 정직한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사실 어니스트 티와 세계적인 자본주의 기업 코카콜라와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코카콜라에게 인수되는 모습에 '배신감'을 토로하는 고객도 있었다. 이때 창업자 세스 골드먼(Seth Goldman)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판단해주세요. 유기농, 건강한 제품, 지속가능성이라는 사명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보이면 알려주십시오." '음료 진열대에서 시작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코카콜라의 강력한 유통력을 빌어 어니스트 티의 정직한 가치를 더 널리 퍼뜨리겠다는 것.

코카콜라 CEO 무타 켄트 역시 "어니스트 티를 코카콜라처럼 만들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코카콜라를 어니스트 티처럼 운영해보기 위해서다"고 했다. 현재까지 둘의 동거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창업 첫해인 1998년, 고작 25만 달러 매출을 올렸던 어니스트 티는 코카콜라에게 완전 인수된 지 2년 후인 2013년에 매출 1억 달러를 넘어섰다. 물론 둘의 관계가 늘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이들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 역시 착한 기업의 미래를 가늠해 볼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어니스트 티의 기적
세스 골드먼 & 배리 네일버프 지음, 이유영 옮김, 최성윤 그림/부키

코카콜라가 인정한 '정직한 성공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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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만큼 논쟁적인 책도 드물다’는 문장은 진부하다. ‘살인적인 마키아벨리’(셰익스피어), ‘악의 교사’(리오 스트라우스)라는 저주에서 ‘공화주의의 대변자’(스피노자·루소)라는 찬양까지, 양극단의 평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군주론>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더구나 2013년에는 <군주론> 집필 500주년을 기념한 행사(마키아벨리 탄생 500주년이 아니다!)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열려,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아직 <군주론>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사용해온 ‘마키아벨리스트’(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의미)라는 표현를 쓰는 데 머뭇거리게 된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여기저기서 마키아벨리를 들먹이는지 알고 싶은 독자라면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이 훌륭한 길잡이가 될 법하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액자소설 구조를 띠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80쪽이 넘는 서문을 썼고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번역한 마키아벨리의 원문에 박 대표의 족집게 해설이 곳곳에 배치됐다. 군주론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해설을 곁들인 원문을 먼저 읽고 최 교수의 서문을 읽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군주론을 이미 읽은 독자들은 마키아벨리의 현재적·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는 최 교수의 서문에서 시작해도 좋겠다.

박상훈 대표의 해설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이를테면 군주론의 주요 개념인 비르투(주체적 의지·힘)와 포르투나(운명의 힘), 네체시타(불가피성), 그리고 프루덴차(실천적 이성)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박 대표는 이들 개념이 원문에서 출현할 때마다 각각의 개념이 사용된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을 여럿 보여주며 개념의 속뜻을 거의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마지막 개념인 프루덴차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제대로 된 신생 군주란, 국가를 장악하고 개혁하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불가피성(네체시타)이 요구하는 과업을 실천적 이성(프루덴차)을 통해 이해하고, 운명의 힘(포르투나)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대신 비르투를 가지고 그 과업을 완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제후국이 난립하고 ‘제자백가’들이 ‘백가쟁명’하던 시기였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고 세운 피렌체 공화국의 고위공직자였다가 메디치 가문의 복귀 뒤 반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스트라파도’라는 모진 고문을 받고 나서 농장에 은둔하며 장작을 만들고 새를 잡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군주론을 집필한,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오해와 논쟁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마키아벨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최장집 교수의 서문에서 찾을 수 있다. 최 교수는 마키아벨리가 한국 정치를 바꾸는 해독제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서문에서 “이상주의·도덕주의의 전통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과 그 실천의 내용 속으로 깊숙이 침윤되면서 정서적 급진주의를 창출하고, 쉽게 교조주의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고 진단한다. 정치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상주의·도덕주의적 접근이 현실을 도외시하는 정서적 급진주의와 교조주의를 낳았다는 해석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갈등을 조절하는 현실적 수단으로 정치를 바라본다. 이에 반해 (이상주의·도덕주의에 침윤된) 한국의 정치는 (존재하는) 갈등을 부인하고 (존재하지 않는) 통합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 갈등 조절에 실패하고, 국민들을 냉소주의나 급진주의로 빠뜨린다. 이상주의·도덕주의의 역설인 셈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있어야 할 것’의 당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바로 이런 현실주의적 접근이야말로 정서적 급진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해석은 케임브리지학파의 공화주의적 관점(“마키아벨리는 정치를 권력 게임이나 자기 이익의 추구로 본 것이 아니라, 시민적 덕을 중심 가치로 삼아 정치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다”)을 거부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특히 케임브리지학파가 마키아벨리를 귀족주의적 공화주의자로 잘못 해석했다고 통렬히 비판한 존 매코믹을 인용하면서 “민주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를 강조한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귀족보다 민중을 중시한 민주주의자였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학파의 공화주의적 해석이든, 매코믹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적 해석이든 마키아벨리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마키아벨리 이론의 전모는 민주주의적 통치 체제를 구성하는 두 측면, 그러나 두 측면이 정태적으로 병립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상호 관계를 통해 하나로 통합되는 것, 그러나 그 통합은 어디까지나 동태적으로 결합·재결합되는 실천의 영역, 정치적 행위의 영역에 위치할 때 일시적으로 포착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 점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위대함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박상훈 옮김/후마니타스

마키아벨리, 한국 정치의 해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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