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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올재 클래식스》 열두 번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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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특집으로 꾸며진 《올재 클래식스》 열두 번째 시리즈가 나온다. 예전과 달리 인터넷 교보문고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10/16(목) 오전 11시부터, 10/17(금) 오전 11시부터 전국 교보문고 매장에서 판매한다. 세 권 모두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이다. 매번 올재에서 나오는 책은 사두지만 정작 읽은 책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 책도 쌓아두기만 할지 걱정이다.

《난중일기》 이순신 저, 이은상 역
《징비록》 유성룡 저, 구지현 역
《쇄미록1, 2》 오희문 저, 이민수 역



《쇄미록 瑣尾錄》 _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오희문이 한양을 떠난 1591년(선조 24) 11월 27일부터 환도한 다음 날인 1601년 2월 27일까지 만 9년 3개월간 임진 · 정유 양란을 피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지내던 일을 기록한 일기이다. 책의 명칭을 《쇄미록 瑣尾錄》이라 한 이유는 《시전 詩傳》 모구장(旄丘章)에 있는“瑣兮尾兮 遊離之子(쇄혜미혜 유리지자: 무엇보다 누구보다 초라한 것은 여기저기 객지를 떠도는 사람)”라는 문구에서 취한 것으로 유리기(遊離記) 또는 피란록(避亂錄)이라는 뜻이다.

전쟁에 관련된 기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와 민중들의 생활 상태를 엿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는 데에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예컨대 전란으로 말미암은 피란민의 유리, 군사 징발과 군량 조달 탓에 백성의 도산(逃散), 처와 자식을 버리고 도망한 아버지, 자식을 버리고 달아난 어머니, 죽은 어머니의 젖을 만지면서 우는 아이 등을 기록하였다.

비단 임진왜란에 관한 사료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징비록 懲毖錄》 _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인 유성룡이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해 있을 때 집필한 것으로, 제목인 '징비'는 《시경 詩經》 소비편(小毖篇)의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첫 장에서 유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면서,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저술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징비록》은 우리나라의 여러 기록문학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물론 임진왜란을 다룬 유일한 기록문은 아니다. 하지만 유성룡이 전란 당시 전황이 돌아가는 매우 급한 사정을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기록문학의 일차적 자료가 되는 조정의 여러 공문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임진왜란에 대한 총체적인 기록으로서의 《징비록》이 갖는 가치와 매력은 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전쟁의 경위와 전황에 대한 충실한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에서 매우 급하게 펼쳐지는 외교전을 비롯하여 전란으로 말미암아서 극도로 피폐해진 일반 백성의 생활상, 전란 당시에 활약한 주요 인물에 대한 묘사와 인물평까지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실로 임진왜란에 대한 입체적인 기록으로 평가할 만하다.


《난중일기 亂中日記》 _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뜻밖에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지만, 이순신(李舜臣)은 한 번도 《난중일기 亂中日記》라는 제목의 책을 써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일기가 그런 제목으로 알려지고 이처럼 고전의 반열에까지 오를 것으로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다만 13만여 자에 이르는 자신의 일기를 묶어서 《임진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등의 표제를 붙여놓았을 뿐이다.

그런 그의 일기가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200년이나 지난 뒤였다. 정조(正祖)는 임진왜란 발발 200주년이 되는 1792년(정조 16)에 이순신을 영의정으로 가증(加贈)했다. 아울러 이순신의 글과 그에게 준 글을 모아서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했다. 이때 편찬자가 그의 '전란 중의 일기'를 묶어 편의상 《난중일기》란 이름을 붙였다.

이은상은 이 책을 고전의 반열을 넘어 "민족의 성전(聖典)"이라고까지 극찬했으나, 정작 이름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읽지 않아 그야말로 '고전의 조건'을 딱 갖춘 책인 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징비록 [懲毖錄] - 눈물과 회한으로 쓴 7년의 전란의 기록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006.9.18,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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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볼 문제

1. 일본에서 이순신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나?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 장수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조선 수군과 싸운 와키자키 야스히루의 무훈담인 《와키자카키(脇坂記)》 등에는 이순신이나 거북선에 대한 묘사가 없다. 단지 호리 세이이의 《조선정벌기》에는 이순신을 이통제(李統制)로 호칭하고 있다. 즉, 그가 철퇴하는 시마즈와 고니시군을 섬멸하기 위한 해전에서 명나라의 무장인 등자룡을 구하려다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살해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해 도고 헤이하치로나 시바 료타로 등 일본인은 이순신을 '군신(軍神)'으로까지 극찬하고 있어서 대조를 이룬다.

2. 이순신을 '국가적 영웅'으로, 원균을 '간사한 소인배'로 이분화하는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러한 이분법은 이순신의 어려운 처지와 그 극복과정을 극화하는 효과는 있으나,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 당시의 조정을 동인과 서인의 극한 대립으로 묘사하는 것이나, 이순신과 원균을 선악으로 양극화하는 것은 역사의 실제 모습이 아닐뿐더러 이순신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에도 장애가 된다.


덧붙임_
글을 옮겨 적을 때 맞춤법이 틀리거나(틀리다고 생각하거나), 읽기 거북한 영어 투, 특히 복수로 사용하는 '~들'은 모두 수정했다. 맞춤법에 능하지 못한 내가 수정한 내용이니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원문 링크로 이동하기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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