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는 1939년 8월 소련과 일본의 만주 전투에 일본군으로 참전했다가 소련군에게 붙잡혀 붉은 군대에 소속됐다. 그러나 그는 독일군 포로가 되었고 이후 대서양 전선에 투입됐다가 미군에 의해 다시 붙잡혔다. 누구도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다.'(출처=www.worldwar2database.com)
소설에서 신길만은 스무 살 나이에 일본군으로 징집돼 관동군에 배치된다. 그러나 국경 전투에서 다른 조선인들과 함께 포로가 돼 소련으로 끌려간다. 이후의 일은 사진 설명과 얼추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결말이다. 사진 설명보다 소설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 파란만장한 삶을 산 조선인 청년 신길만은 다시 소련 땅으로 소환된다. 거기서 그는 총살당한다.
'만주군 → 붉은군대 → 독일군' 이렇게 이어지는 '신길만'의 굴곡의 세월에 어찌 '꺼비딴 리'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일인가? '친일 → 친소 → 친미'로 이어지는 '이인국박사'의 굴욕적인 삶. 신길만과 이인국은 비슷한 삶의 굴곡이 느껴진다. 하지만 둘의 삶은 전혀 다르다. 한 명(신길만)은 강제징집으로 인한 타의에 의한 삶이고 또 다른 한 명(이인국)은 구차한(?) 삶을 영위하고자 굴욕의 삶을 영위한다.
이 사회에는 제2, 3의 이인국박사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 사회에서 지도층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꺼비딴 리 - 전광용
시대와 상황에 따라 능란하게 변신하는 기회주의자 이인국 박사의 모습을 통해 일제강점기 말에서 6․25전쟁에 이르는 격동기의 현대 한국사에서 출세하는 사회지도층의 위선을 폭로한 풍자 소설이다. 외과 의사이면서 종합병원 원장인 이인국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을 했다가 광복 후에는 소련인에게 아부를 하고 1․4 후퇴 때 월남한 이후로는 미국인에게 접근하여 자기만의 영달을 꾀하는 카멜레온 같은 기회주의자로 한국 현대사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의술 덕택에 극적으로 삶의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그 와중에 그의 부모가 죽고 아들과 헤어지는 비극적인 일이 닥친다. 그러나 그는 한순간도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는다.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은 그에게는 염두에도 없다. 그러한 그이지만 식민지 시대 제국대학 출신의 일류 의사로 명망을 얻고 한국 사회에서 지도층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여기 한 장의 사진. 모든 건 이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영문 설명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 남자는 1939년 8월 소련과 일본의 만주 전투에 일본군으로 참전했다가 소련군에게 붙잡혀 붉은 군대에 소속됐다. 그러나 그는 독일군 포로가 되었고 이후 대서양 전선에 투입됐다가 미군에 의해 다시 붙잡혔다. 누구도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다.'(출처=www.worldwar2database.com)
이 정도라야 수긍할 수 있겠다. 독일군 복장을 한 조선인이 2차대전 당시 프랑스 해변에서 발견된 까닭을 달리 풀이할 방법은 이 말고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이토록 기구할 수 있을까 싶지만, 사실 우리네 역사가 바로 이러했다.
소설가 조정래(63.사진)씨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는 이 한 장의 사진이, 다시 말해 이 조선인의 어처구니 없는 삶이 우리 민족의 격정 어린 현대사를 대변한다고 믿었다. 급기야 그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조정래 신작소설 '오 하느님'(문학동네)은 이리하여 시작되었다. 원고지 600여 장의 적은 분량이지만 소설이 담아낸 이야기는 묵직하다.
소설에서 신길만은 스무 살 나이에 일본군으로 징집돼 관동군에 배치된다. 그러나 국경 전투에서 다른 조선인들과 함께 포로가 돼 소련으로 끌려간다. 이후의 일은 사진 설명과 얼추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결말이다. 사진 설명보다 소설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 파란만장한 삶을 산 조선인 청년 신길만은 다시 소련 땅으로 소환된다. 거기서 그는 총살당한다.
"소설은, 강대국이 약소국에 저지른 비인간적인 잔혹한 행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행위란 건 영원한 환상인가를 묻는 것이지요."
소설에서 약소국은 물론 조선이다. 강대국은 일본이며, 소련이고, 독일이었다가, 미국이기도 하다. 약소국 조선 앞에서 이른바 '선한 존재' 연합군은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채우려는 강대국만 있었다. 이를 테면 소련은 본국으로 돌아온 포로들을 죽였다. 신길만도 그렇게 해서 죽었다. 역사에 따르면 스탈린이 1000만 명을 숙청할 때 500만 명이 전쟁에서 돌아온 포로였다.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이 고려인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인을 징집해 최전방으로 내몰았던 건 여러 기록이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그 인원이 300만 명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그들은 동방대대 795부대 소속이었지요. 동방대대 출신 고려인을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쟁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우체국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았죠."
그런데 소설 제목은 왜 '오 하느님'일까. 작가는 "가장 오랫동안 제목을 고민한 작품"이라며 입을 뗐다.
"제목 '오 하느님'은 '오 하느님,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를 줄인 것입니다. 절규이자 비명이지요. 인간이 인간에게 벌인 잔혹한 행위를 제목을 통해 고발하려고 했습니다. 제목을 정하는데 꼬박 7개월이 걸렸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기막힌 삶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결국 앞으로는 이렇게 살지 말자는 각오일 터이다. 작가는 "소설을 읽고 이제부터는 단 하루라도 허투루 살지 말자, 정신 차리고 살자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때, 그의 목소리, 자못 비장했다.